원목을 가득 실은 화물선
넓고 넓은 태평양의 일엽편주
캐나다의 아름다운 항구 밴쿠버에서 일본으로 갈 북미 산 원목을 갑판 위에까지 가득 실은 화물선 ‘HAPPY NINA’ 호는 밴쿠버 아일랜드의 좁은 수로에서 뱃고동을 길게 울리며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좌우로 보이는 미국과 캐나다 땅에는 쭉쭉 뻗은 침엽수가 울창하게 보이고 멀리 보이는 높은 산 위로는 만년설이 뒤덮여 있었다.
군데군데 보이는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집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저런 예쁜 전원주택을 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이 원목도 일본 어디에선가 저런 예쁜 집을 짓는 데 사용할 수도 있겠지.
나는 연가 중에 독일에 자주 들어가는 배를 물색하다가 독일 선주 배인 이 배에 승선하게 되었다.
배가 좀 낡고 급료도 적지만 남희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좁은 수로에 여러 척의 화물선이 빈 배로 또는 화물을 가득 실은 채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고 있는 것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저 멀리 한진해운의 컨테이너선 ‘한진 인천’ 호가 따라오는 것이 보이고, 한국 선원들이 타고 있는 일본 송출선인 SANKO LINE의 벌크 캐리어가 앞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미국 포트 엔젤레스 항에서 승선한 파일럿이 호수같이 잔잔한 협수로에서 도선을 마치고 태평양의 한바다가 시작되기 전에 하선하자마자 북태평양의 거친 바람과 파도가 휘몰아쳤다.
출항하기 직전에 받은 팩시밀리 기상도에는 북태평양 저기압이 크게 발달하고 있었다.
애고, 타자마자 이번 항차는 고생깨나 하게 생겼다.
선박 무선 전화인 VHF 채널 16번에서 본선을 호출하는 소리가 들렸다.
“‘해피 니나’ 호. 여기는 한진 인천 호. 감도 있어요? 오버.”
당직 2항사가 대답하는 소리가 ‘치~’하는 잡음과 함께 들렸다.
“네. 여기 ‘해피 니나’ 호. 감도 좋습니다. 오버.”
통신실에서 본사와 용선주, 그리고 대리점에 보낼 전문을 보내고 있는 동안, 선교에서는 당직 항해사들끼리 아는 사이인지 서로 신나게 이야기했다.
‘한진 인천’ 호는 세계 메이저급 컨테이너 선사인 대만의 에버그린이란 회사로부터 인수한 중고선인데 톤수보다 폭이 좁고 선체가 길어서 잘 나가지만, 조그만 파도에서도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을 많이 한단다.
그래도 컨테이너선답게 엔진 출력이 높아 일반 화물선보다 속도가 훨씬 빨라서 금방 앞서갔다.
전문을 모두 타전하고 멀어지는 밴쿠버 아일랜드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선미로 나갔다.
앞으로 일본에 도착할 때까지 보름 동안 육지라고는 알류션 열도가 멀리 보이는 것밖에 수평선 이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말 그대로 그저 망망대해이다.
한 바다로 나오니 파도가 더욱더 거칠어졌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쳐서 입에 물고 있는 담배가 금방 날아갈 것만 같았고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캡틴이 방송하는 소리가 선내를 울렸다.
“어이, 1항사! 파도가 자꾸 거세지니 원목 묶은 라이싱 한 번 더 확인하고 조여요. 그리고 부서별로 파도에 움직이거나 깨질 물건들은 잘 챙기고, 주자(조리장)는 주방 단도리(단속) 잘하소. 밥통 깨졌다고 선원들 굶기지 말고.”
여유가 느껴지는 캡틴의 우스갯소리에 모두 미소를 머금었다.
한겨울에 북태평양을 항해할 때 파도가 치든 말든 대부분의 배는 항로가 짧은 대권 항해를 선호한다.
만 톤이 안 되는 작은 배들은 하와이에 가깝게 항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대형선들은 알류션 열도에 붙어서 북위 50도 전후로 항해한다.
태풍이나 허리케인같이 강한 저기압에서는 당연히 피항하지만 북태평양 저기압은 위력이 그것만 못하기에 기상도를 보고 바람 방향을 예상해서 뒤바람을 받을 수 있게 항해한다.
앞바람을 받으면 배가 잘 안 나가고 심하게 흔들려 밥도 제대로 먹기 힘들다.
반면에 뒤바람을 받으면 배가 좀 흔들려도 속도는 잘 나간다.
어떨 때는 목적지에 하루나 이틀 일찍 도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엽편주라는 말을 다 알지 않는가.
아무리 큰 배라 할지라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코딱지만큼 작게 보이고, 저 넓은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제가 커봤자 한낱 티끌에 불과하지.
멀리 앨버트로스 여러 마리가 배를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신천옹이라고도 불리는 이 갈매기들은 일본에 다다를 때까지 배에서 버리는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으며 쉬지 않고 쫓아온다.
큰 놈은 족히 삼사 미터도 넘는다.
좀처럼 배에 가깝게 붙지 않고 높은 데를 날다가 배에서 잔반을 버리면 어떻게 알고 사방에서 수십 마리가 쏜살같이 날아와 쪼아 먹는다.
그렇게 보름을 쫓아오는데 잠은 어디서 자는지 모르겠다.
그 큰 갈매기가 배에 앉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전에 어디 다쳤는지 갈매기가 갑판에 앉은 적이 있었다.
당직 서던 2항사가 웬 떡이냐고 잘 날지도 못하는 이놈을 잡아다가 털을 벗겨서 된장을 발랐다.
다른 선원들에게 같이 먹자니까 모두 고개를 흔들고 인상을 찌푸리며 나가 버린 모양이다.
같이 먹을 사람이 없으니 나에게 좋은 안주가 있다고 식당으로 오라고 해서 뭔지도 모르고 고맙게 잘 먹었는데 좀 질기고 맛은 별로였던 기억이 난다.
그 후 항해 중에 기상이 안 좋아 파도라도 치면 캡틴이 어느 놈들이 배에 날아온 갈매기를 잡아 처먹어서 이렇게 파도가 치냐고 핀잔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배에서는 제 발로 날아 온 맛있는 날치도 좋은 데 가라고 다시 바다에 던져준다고 한다.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는 흔들리는 배 안에서 속이 메스꺼운 가운데 남희가 보낸 편지가 떠올랐다.
뮌헨에서 슈팅하러 가면서 슈바빙 거리를 솔로가 아닌 카메라맨을 동반하고 나와 전혜린을 생각하며 당당히 걸어갔다고.
우리가 때로는 절망할지라도 모든 걸 걸고 열심히 살며 사랑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은 생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걸…
그래, 나미야. 네가 말하는 것은 다 하나의 음악이고 한 편의 시였던 거 같아.
‘야, 쨔샤!’ 하는 것조차도.
북태평양의 차가운 날씨와 거친 파도에 속이 메슥거리는 데다 계피가 든 따뜻한 와인을 몇 잔 마셨더니 목이 따갑고 눈이 감겨왔다.
RailArt박우물 박인희 낭독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거기에 부에노님 글, 잘 어울리네요. 04-26
세인트 예전에 러시아 해군의 1만 톤급 미사일 순양함이 북해의 파도에 완전히 파묻히면서 항해하는 동영상을 봤는데... 정말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의 기술력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1만톤급 전투함이면 꽤 큰데 말예요.;; 04-26
David 히야! 영감님! 이거 어디서 구했어요???? 정말 너무 오랜만에 듣는 박인희의 목마와 숙녀 낭독 시군요. 형님이 이 테잎 셋트를 구입해서 고등학교 내내 들었었는데... 무차스 그라시아스. (시 감상하느라... 글을 잘못읽었는데... 내일 감상문을 적으리다.) 04-26
알젠의 봄 올만에 듣는 것에 글이 잘~안 보여요... ^^ 다시 맨 위로 올라가야 하네요~~ 글 읽으러... 04-26
David 이제야 댓글보고, "아이고~ 영감님!이 배경음악... 이거 훔쳐 오신거네요."ㅎㅎ. 전 갈매기를 된장 발랐다는 야그에 갑자기 웃음이 나는군요. 04-26
Zapata 갈매기는 진짜 안 먹는 건데, 날치가 날라와서 갑판에 죽어 있어도 좋은 데 가거라 하고 바다에 도로 넣어 주는데... 04-26
saci 오늘은 David님이 주인공이십니다... 하하하 happynina 호... 그리고 이제 David님이 1항사 안 하시나요? 그 넘의 갈치...그럼 지난번 갈치를 david님 동네 가서 잡은 것 아닌가? 04-26
부에노 다윗 님 '솔아, 솔아'도 아직 빚으로 남아 있는데... 계속 1항사로 출연하실래요? 그넘의 갈치... 파키스탄이면 어떻고 온두라스면 어떤가요... David 님 갈치가 훨 맛있겠죠. saci 님, 비키니 준비하셨죠? 안 선장님이 운전하시고 전 사진 찍어야쥬... ^^ 04-26
saci 난 비키니 있는데... 싸빠따님이 배를 아직 못 구하셨다고... 04-27
부에노 난 노 빤쓴디... 사진 촬영하는 사람은 상관없죠? 검사 안 할 거니까... 04-27
saci 18금... 04-27
David 영감님! 손자가 보고 있어요!!! 04-27
가련서 이곳에 들어와보니 글들을 너무 잘 쓰느군요. 저는 글쓰기는 고사하고 읽기조차 아무 거나 할수 없는데요. 좌...돌이라 몰매 맞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음악, 시... 이런 것이 가장 좋더라구요. 04-29
알젠의 봄 이제 살아나고 있는 가슴의 출렁거림... 공감이라는 것... 낭만이란 것... 오래 되었지요... 오래 전 추억의 시간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들...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얘기를 들으며 우리 가슴에 남아야 할 것... 남겨져야 할 것... 무엇인지... 청계천으로 가자... 우리... 04-26
알젠의 봄 배오 개다리로 멱 감으러... 04-26
David 님들은 목표를 향해 전투적으로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고 있는 삶에 브레이크를 걸으시군요.... 먼저 쌓이고 메마른 삶에... 04-26
saci 엡... 숨쉬면서 살자고... 가슴이 더 굳어지기 전에... 내가 뭘 사랑하고 어땠던 사람인가를 잊지말고 살자구... 나도 그리고 님들도... 그래도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이고... 또 하늘도 안 무너지니까... 안 싫은 거죠? 04-26
낙사 덕분에 30년은 젊어진 듯 합니다. 부에노님 샥씨님 감사합니다. 고단한 이민생활에 좋은 청량제였습니다. 저 아뒤 만들었습니다. 구 하얀천사... 좋은 날 되십시오. 04-27
부에노 저 샥씨 없는디요! ㅎ 낙사 님, 아뒤 뜻이 어케되죠? 다비드 님, 바쁜갑다. 자기 까메오로 출연한 것도 아직 모르네. ㅋ 어느 '멋쟁이' 도사님이 한 말 기억하시죠? '남미 오래 살면 아무리 심각해도 농담을 잃지 않는다'는 명언!!! ^^ 04-27
별지면-내리는비 saci 님 이글도 그렇고 까뮈의 결혼이란 글도 어제 우연히 읽었답니다. 전 라틴방에는 처음으로 와 보았지만 님 글이 너무 맘에 들어요. 04-28
saci 아... 그랬어요? 참 고마워요. 라틴방에는 원래 참 좋은 분위기랍니다. 시와 음악과 따뜻한 심장과 냉철한 이성이 다 살아있는 곳이지요... 자주 뵙기를 기대할게요... 04-28
별지면-내리는비 궁금한게 있어요. 남자분이세요, 여자분이세요? 님 성별이 어떠하든 상관은 없죠. 지금 아래 글루미 선데이 듣고 있는중이에요. 전 캘리에 있어요. 04-28
고타비아 별지면-내리는비 예쁜 이름이네요. 저도 님의 이름처럼 예쁜 마음으로 살고 싶네요. 04-28
고타비아 서로들 사랑하며...... 04-28
saci 여자분이시죠? 저... 미안해서 어떻게 하지... 저도 여자거든요... 하하하... 04-28
별지면-내리는비 당연히 안 미안해 하셔두 되구요... 저두 여자분일 거라고... 사고할 수 있는 여자분이라 생각했었어요. 까뮈에서 잠시 헷갈려서... ㅎㅎㅎ 반가워요 전혀 미안해 하지 않으셔두 되구요. 04-28
별지면-내리는비 왜 헷갈렸냐구 굳이 묻는다면 학창시절 동성친구들에게 하두 핀잔을 들어서 철학이 어쩌구... 까뮈가 어쩌구해서 무지 맞았다는....... 04-28
saci 예... 학창시절도 아니고 지금도 전 그러고 있으니까... 스스로 좀 맛이 갔다... 그리 느껴집니다... 평생 사춘기... 만나서 반가워요... 저도... 04-28
이까베 박인환의 아름다운 이 시와 가수 박인희의 목소리가 너무 어울리네요. 그리 많지 않은 시와 음악이 있어서 더 좋습니다.때론 단순함이 우리의 맘을...... 이런 라틴방이 가장 편안하며 애정이 갑니다. 아마 첨 이곳을 들러서 그런 것 같아요. 04-29
이까베 첫정이라고 해야 하나요? 04-29
이까베 오래 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제가 제일 아끼는 한 친구가 무척 보고픈 하루였습니다. 04-29
라트라비아타 오늘 이 음악을 듣고 또 듣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편집증적인 기질들을 약간씩은 소유하고 있나 봅니다. 매번 찾던 것만 찾게 되는, 가던 곳만 가게되는...... 04-29
saci 이까베님... 어쩌면 우리는 기억 속에 살지요... 그것이 없다면 현재를 지탱하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그래요...... 편집...... 그래요... 저도 그런 것 같네요... 04-29
라트라비아타 전 saci님을 잘 모르지만 saci님의 편집과 제 편집은 다를 겁니다.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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