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 미라플로레스에서 만난 우리의 맘보 박
페루에서 가장 존경 받는 한국인, 맘보 박
히딩크 감독은 우리에게 월드컵 4강이라는 멋진 선물을 안겨주었다.
그는 선수 시절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잡초처럼 커온 사람이었으나 지도자로서 그의 리더십은 정말 대단했다.
국가 대표 감독으로서 뚜렷한 목표를 제시했다.
다소 무리해 보이는 목표치를 설정함으로써 선수 개개인의 잠재 역량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는 선수들을 끝까지 믿었다.
이길 수 있다는 믿음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기본에 충실했다.
무슨 운동이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체력과 스피드다.
그는 선수들의 체력 향상과 스피드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켰다.
기초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고도의 전술 훈련이 가능하고 세계 최강 팀과 맞붙어도 해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한국 팀이 세계의 강팀과 싸워 이겼어도 어퍼컷을 날리고 'I'm still hungry.'라며 늘 승리를 갈망했다.
놀라운 카리스마를 인정받은 지도자는 히딩크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출신 지도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
그 중 한 분이 바로 페루 여자 배구 대표 팀 감독을 지낸 박만복 씨다.
페루의 히딩크라고 할 수 있는 박만복 감독의 지도력도 가히 신화적이다.
1974년 처음으로 페루 국가 대표 팀을 맡은 그는 빠른 시간 안에 세계적인 강팀으로 조련하였다.
그는 페루 선수들이 강한 체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정신력과 수비 능력을 강화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세계 대회 예선에 참가로만 만족했던 페루 국가 대표 팀을 80년 대에 열린 각종 세계 대회에서 4강 안에 드는 좋은 성적을 꾸준히 올리게 만들었다.
그의 지도력은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88 서울 올림픽 여자 배구.
1948년 에드윈 바스케스라는 선수가 사격에서 메달을 획득한 이래 페루는 40년 동안 올림픽 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페루는 첫 경기에서 중국과 마지막 세트에서 9―14로 밀리며 벼랑으로 내몰렸으나 일곱 점을 연속 득점하며 대 역전극을 펼쳤다.
미국과의 다음 경기도 두 세트를 먼저 내준 뒤 3―2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준결승 상대는 일본.
처음 두 세트를 15―9, 15―6으로 따낼 때만 해도 승리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계를 여러 번 제패했던 일본도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3, 4세트를 15―6, 15―10으로 이겨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거기가 신화의 종착역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그동안 열심히 응원했던 한국 팬들은 더 힘내라고 열화와 같은 응원을 쏟아부었다.
운동을 해 본 사람이나 응원에 미쳐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관중들의 응원 소리는 정말 머리칼이 쭈뼛 서고 가슴이 메지 않던가?
페루 선수들은 자신들의 존재 가치인 감독의 모국인들이 열렬하게 응원하는 것에 감동 먹었다.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어 혼신의 힘으로 코트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5세트 스코어는 15―13.
마침내 결승 진출.
금메달을 앞에 놓고 소련과의 마지막 승부.
지구 반대편 페루 시간으로 새벽에 경기가 열렸지만 장한 페루아나들의 모습을 지켜보려고 수많은 페루 국민들이 가슴을 조아리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다.
1세트 15―10.
2세트 15―12.
3세트 중반까지 페루는 파죽의 기세로 펄펄 날며 12―6으로 이기고 있었다.
결승점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 노련한 소련 감독 니콜라이 칼폴은 이왕 진 게임이라 생각하고, 연속해서 작전 타임을 걸며 페루 선수들을 맥빠지게 만들었다.
쫓는 자보다는 쫓기는 자의 심리가 더 불안한 게 인지상정.
정상을 밟아본 경험이 있고 없고가 이런 대목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가 보다.
페루의 낭자들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큰 경기인 올림픽 결승전에서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세트 15―13, 4세트 15―7로 소련에게 두 세트를 내주고 맞은 마지막 세트.
단 한 점만 더 따면 승리를 확정하는 고비를 피차간 여러 번 무위로 돌린 뒤 15―14 페루의 리드.
그러나 피를 말리던 페루의 연승 신화는 여기에서 막을 내렸다.
소련의 연속 3득점으로 17-15.
세트 스코어 3-2로 소련의 금메달.
소련 선수가 마지막으로 강 스파이크한 공이 페루 진영 한가운데 떨어지자 경기장에는 아쉬운 한숨 소리가 터졌고 경건한 느낌마저 자아내는 적막이 가득 찼다.
연이은 풀 세트 접전으로 승자고 패자고 할 것 없이 완전히 탈진한 양 팀 선수들은 모두 바닥에 널부러졌고, 우리 의료진은 선수 구호에 여념이 없었다.
시상식을 제 시간에 맞춰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중들을 향해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마지막 인사를 한 페루 선수들은 열화와 같은 함성 소리에 묻혀 박만복 감독을 목마 태우고 체육관을 돌고 또 돌았다.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왔던 페루와 우리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 따낸 금메달만큼 값진 은메달이었다.
그 후에도 박 감독은 팀이 어려울 때마다 자진해서 대표팀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당시 페루 대통령 관저에 사전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분이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페루에서는 맘보 박(박 감독의 애칭)이 한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인들에 대한 호의가 대단하다.
맘보 박의 명성은 광고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한국 기업인 대우에서 그를 내세운 광고 덕에 매출이 1년 사이 3배나 급신장했다나.
예전에 필리핀에서 농구의 신동파를 이야기하면 현지인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반겼듯이 페루에서 맘보 박을 언급하면 페루비언들과 금방 친해질 정도로 그가 페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페루 국민들에게 그들도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었던 꼬레아노 맘보 박의 신화는 아직도 페루아노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남아 그들의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을 거라는 믿음에 글쓴이도 무척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리마, 도시 고속도로 곳곳에 서있는 대우 광고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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