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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무 장사의 속임수에 우린 총각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부에노(조운엽) 2008. 10. 23. 20:10

 

  • 무 장사의 속임수에 우린 총각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2] | 유빈
  • 번호 774 | 200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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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장사의 속임수에 우린 총각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전화위복이란 옛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 내가 사는 페루에서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우습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한 그렇게 아주 복잡한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며칠 전에 있었다.

내가 사는 이 도시의 재래시장은 화요일과 금요일에 산지에서 야채며 과일이 도착하면 싱싱한 것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나오기 때문에 그야말로 시장은 완전히 왁자지껄 활기찬 삶의 현장이다.

 

얼마 전에 불미스런 일이 있어 한동안 시장을 멀리했었다.

화요일 오후에 몇 가지 필요한 야채가 있어서 한 손에 지갑을 들고 시장을 걷고 있는데 늦은 오후 시간이라 사람은 별로 없고 한가했다.

과일가게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갑자기 손에서 지갑이 달려나가는 느낌과 함께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럼과 동시에 그 소매치기의 티셔츠 자락을 힘껏 끌어당기며 소리 지르니 그도 순간 당황했는지 내 지갑을 땅에 떨어뜨리고 도망쳤다.

그 많은 상인들이 보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방인의 불행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시장 가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시장 보는 일은 일 하는 아줌마의 몫이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아마 몇 개월은 흐른 것 같다.

김치를 담겠다고 무, 배추를 사려고 시장에 가니 무 장사가 그날도 어김없이 자기 자리에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니 무를 사라고 자꾸 부르는 것이었다.

어차피 무를 사야 했기에 가격을 물으니 1킬로에 50센티모인데 그 한 자루를 다 사면 12솔레스에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거기서 조금 더 깎아달라고 하니 10솔레스에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그 많은 무를 사고나니 뭘 해야 하나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모토택시에 이것 저것 산 물건들을 가득 싣고 집에 돌아와서 그 자루를 내려서 집으로 끌고 들어오는데도 얼마나 무거운지 혼났을 정도니 그 양이 엄청 많았다.

 

집에 가지고 들어와서 포대자루의 무를 쏟아 놓으니 아뿔싸, 글쎄 눈에 보이는 윗부분만 그럴싸한 큰 것으로 넣었고 나머지는 완전히 손가락만한 무가 대부분이었다.

한국도 겉에 보이는 것과 속에 들어있는 것이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확연하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나 황당하던지 당장 다시 시장으로 달려가서 항의를 하고 싶었지만 따갑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그곳까지 다시 갈 생각을 하니 저절로 힘이 빠져서 포기하고 말았는데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아, 이 무로 총각김치를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참고로 이곳은 총각김치 담을만한 무를 구경하기가 힘들다.

리마에 있는 식당들은 자기들이 심어서 김치를 담그는지 어쩌는지 가끔 볼 수 있는데 이 지방 도시에는 그런 행운이 없다.

그래서 그 많은 양의 무를 다 다듬어서 소금에 절여놓으니 족히 큰 대야로 하나 가득해서 뜻밖의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그 소리를 주변에 있는 사람한테 하니 깔깔거리며 그 무 장사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라고 해서 나 또한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아마 그 무 장사는 내게 바가지 씌웠다고 흐뭇해 할 텐데 내가 이렇게 요긴하게 그 무를 쓰고 있는지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 무 장사의 속임수 덕분에 나는 모처럼 맛있는 총각김치를 먹고 있으니 이런 경우를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웃음이 다 나왔다.

 

지금도 냉장고에는 아주 맛있는 총각김치가 매일 우리 가족의 식사에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주변에 있는 한국 사람들한테도 나눠주니 아주 좋아해서 이런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내게 사기친 것에 대해서는 내가 다음 장에 가서 항의를 하겠지만 덕분에 총각김치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글 유빈)

 

 

 

 

 

 

 

부에노 
유빈님의 마음이 넘 착하시니까 속은 것도 전화위복이 되는 모양입니다. 뜻하지 않은 총각김치로 식사의 즐거움을 더하고 계시면서 이웃분들과 감동을 함께 하시니 무장수에게 무챠스 그라시아스!' 하셔야겠네요. ^^ 0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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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정
정말 전화위복입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한테는 그런 행운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도둑을 잡아주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고 또 보복이란 것도 있으니 당연히 경찰이 아니면 여기도 타치를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0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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