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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ur defendu(Romance), Mireille Mathieu y 바다 사진

부에노(조운엽) 2016. 7. 16. 12:05

 

 

 

 

 

 

 

 

 

 

 

 

 

 

 

 

 

 

 

 

 

 

 

 


 

 

 


Amour defendu(Romance), Mireille Mathieu

 

 

새처럼 노래하는 '아비뇽(Avignon)의 참새'라고 불리는 '미레이유 마띠유'는 프랑스 아비뇽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가난한 집 14명의 형제, 자매 중 맏딸로 태어나 마치 현대판 신데렐라처럼 동화 같은 삶을 살았다.
그녀의 재능은 어렸을 때부터 알려져 처음으로 무대에 출연한 것은 4살 때였다.
그녀의 꿈은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처럼 유명한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15세에 아비뇽의 샹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하였다.

 

프랑스 국영 TV방송국은 1963년에 세상을 떠난 에디뜨 삐아프의 대를 이을 가수를 발굴하는 텔레 디망쉬(Tele Dimanche)라는 아마추어 샹송 콘테스트를 열었다.
19살, 작은 체구의 '미레이유 마띠유'는 '에디뜨 삐아프'의 명곡 'L’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를 불러서 우승을 했다.
매스컴에서는 '에디뜨 삐아프'가 다시 탄생했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그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가수 조니 할리데이의 매니저가 그 프로를 보고 미레이유 마띠유와 바로 계약을 맺고 4주 만에 그녀를 모든 샹송 가수들의 꿈인 올랑피아 극장 무대에 서게 하였고,
그가 죽기 전까지 그녀와 함께 하였다.

 

 

 

그녀는 다음 해 '사랑의 신조'가 히트하면서 스타가 되었다.
폴 모리아가 작곡한 데뷔곡 'Mon credo(나의 신조)' 란 그녀의 샹송 모음집이 무려 17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녀는 하루 사이에 애수에 젖은 아름다운 목소리의 가수로서 성공의 길을 걷게 된다.
이로 인해 '미레이유 마띠유'는  프랑스의 노래하는 대사 역할을 하게 되며 최고의 가수로 성장한다.

그녀는 9개 국어로 1,200여 곡을 불렀는데, 그의 공연은  Tom Jones 등 세계적인 가수가 따라다녔고,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1억5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도 남겼다.


프랑스에서는 '미레이유 마띠유'를 '샹퇴뢰즈 아 브와(Chanteureuse A Voix)'라고 부르는데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는 게 목적인 가수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게 불리는 가수들은 마이크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한 오페라적 발성을 하는 공통점이 있는데 '루이스 마리아노(Luis Mariano)'와 '에디뜨 삐아프'가 들었던 그 호칭을 '미레이유 마띠유'가 이은 것이다.

 

 

 

 

 

Amour defendu(Romance), Mireille Mathi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