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가르침
살면서 때로는 내게 붙은 호칭이나 직함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중 늘 쑥스러운 단어는 단연 '선생님'이다.
분에 넘치게 20대부터 선생이 되어 스스로 맘 졸이고 책망했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래도 제자 복은 있는지 수석 입학, 졸업하는 제자를 둬 보기도 했고, 스승으로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고마운 학생들도 생겼다.
열심히, 독하게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며 대견하기도 하고 늘 고마운 생각이 든다.
말과 땅이 모두 설던 러시아 유학 시절 나의 가장 큰 스승은 누구보다 지도 교수님이셨던 지나이다 이그나체바 교수님이다.
내가 무대를 두려워하자 교수님은 자주 연주 기회를 만들어 공포심을 없애 주었고, 늘 웃는 얼굴과 재치로 레슨 시간을 이끌며 결국 음악도 청중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이그나체바 교수님은 내게 음악가로서, 미래의 선생으로서 '기다림'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 분이다.
중요한 작품 독주회를 앞두고 있을 때도, 레슨 시간 동안 내 연주에 대해 별말씀 없이 침묵을 지키시다 독주회가 끝난 뒤 오랫동안 기다려온 칭찬 한마디를 가슴 깊이 새겨 주던 분이었다.
그리고 그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지침으로 학생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음악을 하는 학생들은 콩쿠르나 여러 실기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워낙 변수가 많아 오래 준비한 만큼 상응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단 한 번의 기회란 부담감에 평소에 못 미친 실력이 나올 때, 학생들은 크게 낙담해 무대에서 내려온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지만 나는 그런 학생들에게 별다른 말을 않는다.
긴 위로의 말이나 따끔한 질타의 말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늘 기다림으로 바라보던 스승이 떠올라서다.
'기다려 봐라. 잘될 거다.'라는 짤막한 이 한마디로 많은 걸 대신한다.
음악은 어디까지나 자각이기 때문이다.
음악가의 삶이 늘 고민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야 비로소 그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다는 것을, 오랜 기다림 속에 스스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자기가 느끼고 받아들일 때까지 말을 아끼고 지켜볼 뿐이다.
진정한 교육은 시간과 함께 무르익어 가는 것이라고, 스승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피아니스트 김주영 님
Libera boys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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