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레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나훈아 y 그러나 지금은 같이 있어요

부에노(조운엽) 2013. 2. 1. 18:55

 

 

 

 

그러나 지금은 같이 있어요

 

 

잊을 수 없는 오래전 어느 겨울. 

나는 학교 졸업도 하기 전 대기업의 관리과에 입사했다. 

가장 기대되는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학교가 아닌 사회 속에서 갖게 되는 만남은 지극히 사무적이었고 학창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나는 목말라 했으며 여유 있는 시간과 자유로운 위치를 되찾고 싶었다. 

일찍 출근해서 저녁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기계적인 생활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때 내 앞에 그 습관적인 일의 지루함을 깰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같은 부서는 아니었지만 복도를 오가며 눈에 들어왔던 그 사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어느새 우리는 자연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4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로의 장단점은 물론 어떻게 대해야 할 지도 잘 알게 되었다. 

다툰 적은 수없이 많았지만 헤어짐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우리는 깊이 신뢰하고 사랑했다. 

어느 날, 이상하게 말수가 적어지고 여위어가는 그를 보며 무슨 일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무슨 일 있어요?” 
“……나, 결혼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우는 것을 처음 봤다. 

난 정신을 잃은 듯이 집에 와서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밤새 울었다. 

목소리가 다 잠겼을 만큼… 

그는 양가가 오랫동안 알아 오던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 

분명 그자신도 원치 않던 결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이 있던 날, 술에 취한 그가 전화를 걸어 왔다. 
“내가 너무 바보 같아. 나 후회하고 있어. 나 어떡해.” 
그는 이혼할 거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는 정말 후회하고 있었다. 

'조금만 빨리 느꼈어야지.' 

그 후로 그는 계속 내게 전화를 했다. 

그는 이혼할 거라며 아내와 밤에 잠자리도 같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를 사랑했기에 그의 말을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사무실에 들어섰더니 떠들썩했다. 

그의 아내가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슬픔에 못 이겨 가슴이 아파왔다. 

그를 사랑하긴 했지만 늘 그의 아내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는데…. 

그녀의 죽음을 들은 나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 했다. 

그런데 회사 동료들이 조문을 다녀와서 한 말을 듣고 더 충격을 받았다. 

'아파트에 갔더니 100일도 채 안된 딸애가 있던데. 너무 가엾게 보였어.' 

죽은 아내에 대한 연민과 함께 그에 대한 배신감이 머리 끝까지 솟았다. 

그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에 난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한 달 동안 그를 만나지 않았다.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를 향해 품었던 미움이 '용서'로 다가왔다. 

내가 왜 그를 용서해야 할까?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분함 속에 자리한 사랑. 

그래서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백일도 채 안된 그의 딸아이를 생각하는 마음도 조금씩 생겼다. 

나는 그 아이의 어머니가 될 준비를 했다. 

퇴근 후면 2시간이나 걸리는 그의 집을 찾아가서 애를 보고 돌아왔고 휴일이면 같이 지냈다. 

그러면서 일 년 동안 어머니 노릇을 했다. 

집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이대로 지낼 수가 없어 나는 결혼해야겠다는 맘을 먹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의 말에 충격 받을 아버지 어머니를 떠올리자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굳은 결심으로 그가 우리 집에 찾아와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용서해 주시고, 곱게 잘 기른 딸을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는 나의 부모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결혼 허락을 구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속으로 얼마나 앓으셨을지 말하지 않아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얼마간 그를 지켜 본 아버지께서는 결국 결혼을 허락하셨다. 

당신이 아끼던 딸 아이가 짊어져야 할 짐들을 생각했던 아버지는 내가 결혼한 날 밤, 잠 한숨 못 주무시고 어둠 속에서 밤새 우셨다고 한다.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을 잘 살아야만 한다. 절대 후회해서는 안 된다.' 

나는 가족들, 친척들, 동료들의 입김 속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그럴 것이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나를 믿어 준 식구들을 위해서도 행복하게 살아야 했다. 

언젠가 여동생이 내게 물었다. 
“언니, 애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어.”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 내가 그를 사랑하듯 아이를 사랑해. 이 아이도 그의 한 부분이니까.”

그때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결혼 한지 2년이 지났건만 나는 딸아이를 내 자식처럼 키웠다. 

잘못했을 때 매를 아끼지 않으면서. 

결혼 후, 나는 아들을 낳았는데 내 아이를 낳으면 딸아이에게 소홀해질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런데 내 배로 낳은 아이로 인해 나는 딸아이를 더욱 섬세하게 사랑하게 되었다. 

앞으로 딸아이가 아무런 상처 없이 눈물 없이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지금 나는 딸아이와 나란히 누워 있고, 내 남편은 갓 백일이 지난 아들을 안고서 TV를 보고 있다.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서지희 님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나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