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자화상, 야간 출신
작가 신경숙 씨가 갓 주목받던 1990년대 초, 문인들 자리에서 동갑 작가가 말을 걸었다.
"영등포여고 나왔다며? 내 친구도 거길 나왔거든."
신경숙은 대답을 얼버무리다 자리를 떴다.
그녀는 70년대 말 구로공단에서 일하며 밤엔 영등포여고에 다녔다.
여공을 위한 야간 특별 학급이었다.
신 씨는 그런 내력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어느 날 옛 야간반 친구가 전화를 걸었다.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그때가 부끄러운 건 아니지?"
신경숙은 94년 '외딴 방'을 썼다.
"다른 친구 사귀면 토라지고 나뭇잎 말려 그 애 이름 써넣고…. 우리 사이엔 그럴 틈도 없었다. 봉제·전자 공장 생산 라인만 존재했다."
주간반 아이들이 깔보는 것도 싫었고 주산·부기도 재미없었다.
그녀는 학교를 빼먹었다가 반성문을 썼다.
글재주에 놀란 담임 선생님이 '소설을 써보라.'며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건넸다.
신 씨는 그 소설을 베껴 쓰며 작가의 길에 눈 떴다.
열다섯 살 김원중은 1·4 후퇴 때 대구로 피란 와 홀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했다.
대학도 영남대 야간을 나왔다.
그는 포항공대 교수에서 은퇴해 시 '이력서'를 썼다.
'서울대를 안 나왔습니다.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살았으니까요.
기독교 장로도 못 됐습니다.
일요일도 하루 종일 일했으니까요.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12년 꼬박 야간에만 다녔습니다….'
야간고·야간대는 가난에 무릎 꿇지 않고 악착같이 일어서던 젊은이들의 돌파구였다.
배고픔을 벗어나겠다는 마음 하나로 낮엔 일하고 밤엔 졸린 눈 부릅떴다.
야간고나 야간대 나와 입신한 인사는 얼핏 꼽아도 손가락이 부족하다.
대통령, 대법관, 지사, 차관 등 몇 명….
이제 대한변협 61년 사상 처음 야간고·야간대 출신 변호사가 회장에 당선됐다.
86년 9.3%, 21만 명이던 야간고 학생이 열네 학교, 12,000명으로 줄었다.
먹고살만해졌고 대학 진학률이 워낙 높아서다.
가족 돌보느라 '공순이, 공돌이'라는 손가락질을 이겨낸 누이들과 온갖 궂은 일 마다치 않은 형들.
그러면서도 배우겠다는 열망이 '야간'이라는 단어에 배어있다.
'못 배운 한'이 낯설어진 시대, 오늘 우리는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
The poet and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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