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레

아! 옛날이여, 이선희 y 만주 개장시

부에노(조운엽) 2016. 7. 12. 11:58

 

 

 

 

만주 개장시

 

 

학교 수업을 마치면 전철을 타러 청파동 숙대 정문을 지나 남영동으로 내려갔다.

금성극장 뒷골목에는 만화가게나 대폿집들이 곳곳에 있었다.

구름과자가 먹고 싶으면 친구들과 만화가게에 들어가서 한 가치에 십 원인가 주고 사 먹었다.

그때 명승 담배 한 갑에 오십 원할 때다.

학교 댕기는 게 고달플 땐 알량한 주머닛돈 다 털어 4홉들이나 됫병 막소주를 사서 새우깡이나 생라면을 안주로 먹고는 힘든 학생시절을 달랬다.

 

 

 

 

 

그때 짱짱이 님을 알게 됐다.

그 형이 군대 가기 전 용산 짱짱이 파 짱이라고 했다.

당시 나이 한 살만 많거나 학년이 높으면 절절맬 때에 육군 말년 병장이었으니 하늘같이 보였다.

못 하는 공부하느라 지친 고딩들이 골목 안에 둘러앉아 신세타령을 하면서 깡소주를 마시고 있는 것이 짠해 보였는지 쥐포 몇 마리를 사 와서 우리 술을 축냈다.

그리고 가여운 청춘들에게 재미있는 무용담을 들려줬다.

만주, 아니 군대에서 맨손으로 들개, 멧돼지 잡던 이야기며, 포탄이 날아오고 총알이 핑핑 귓전을 스치는데 잡은 개 잃어버릴까 봐 꽉 업고 뛰던 거며.

 

 

 

 

어린 나이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손에 땀을 쥐고 가슴이 뛰었다.

뭐 나중에 나도 군대 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짱짱이 형이 방배동 공군 교육사령부 돼지 키우는 데서 근무했다면서 어찌 만주가 나오고 포탄 이야기가 나오겠나.

다 뻥이지.

그래도 배운 도둑질이라고 나도 술 한잔하면 짱짱이 님처럼 자연스럽게 만주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이 긴가민가하면서도 또 장단을 맞추게 된다. ^^

 

 

 

 

짱짱이 님과 그렇게 막소주를 마시던 청춘도 지나가고 각자 생업을 위해 나는 오대양 육대주를 갈고 다니고 짱 형은 무역 하니라 뱅기 타고 쌩쌩 날아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에서 연락이 닿으면 남영동으로 내달렸다.

다들 돈 번다고 술과 안주가 업그레이드되어 닭똥집이나 어묵 국물 정도는 앞에 놓고 2홉짜리 로진스키를 마셨다.

요즘은 짱짱이 형이 약주를 안 하시는데 한 때는 그 독한 마오타이주에 칭다오 피주를 대접에 부어서 중국 꾸냥들과 술시합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호주가였다.

그렇게 소주 몇 병 마시고는 어깨동무하고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싸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이란 군가를 부르면서 남영동 옥탑방으로 향했다.

선물 사 들고 오랜만에 나타났을 때나 이쁜 시동생이지 허구한 날 밤, 술이 거나해서 들어가니 형수님 눈에 쌍심지가 돋았다.

"붸노 도련님이 짱짱이 오빠와 또 술 마셨구나, 오빠 술 좀 적게 마시게 하지."

그러면서도 짱 형과 잘 지내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우리 세 사람은 다들 피난민의 자식이었기에.

 

 

 

 

가을비가 추적하게 내리는 어느 날 밤이었다.

남영동 마포갈비집에서 짱 형을 만나기로 해서 빗길을 뚫고 도착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매캐한 담배 연기와 함께 돼지갈비 익는 냄새가 술맛 땅기게 했다.

구석에 앉아 있는 짱 형과 반갑게 합석해서 모처럼 좋은 안주에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짱 형 혀가 빨리 꼬부라지는 것 같았다.

또 형수에게 조 터질 것 같아 꾀를 냈다. 

형수님 어조를 흉내 내어 '짱짱이 옵빠, 또 술 처묵읐나, 내 몬 산다카이...'라고 말하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번쩍 드는 것이었다. 

 

 

 

 

프놈펜에는 어제저녁부터 지금까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이래저래 짱짱이 님과 만주에서 개장시할 때가 생각나는 날이다. ^^

 

 

 

아! 옛날이여,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