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쿠바의 연인' 정호현 감독
쿠바는 먼 나라다.
직항 노선이 없어 가는 것만 1박2일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가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 길거리에서 쿠바인을 마주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쿠바는 또한 가깝다.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의 평전이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라 있고, 피델 카스트로의 이름도 익숙하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흥겹고도 애잔한 쿠반 재즈에 쉽게 매혹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빔 벤더스 감독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기억하고 있다.
카리브해와 시가의 낭만으로 쿠바는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정호현 씨는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다.
몇년 후 캐나다 밴쿠버로 유학을 떠났다가 잠시 여행 갔던 쿠바의 매력에 반했다.
다시 쿠바를 찾았을 때 10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한 달 정도 연애를 하다 한국에 돌아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사랑을 키웠다고 했다.
6개월 뒤에는 아예 짐을 싸 들고 다시 쿠바로 갔다.
오는 13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쿠바의 연인'을 찍은 정호현 감독의 이야기다.
그녀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쿠바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면서 자신과 남편 오리엘비스가 한국에서 함께 지내면서 결혼하기까지의 다양한 갈등을 그렸다.
"오리엘비스와 살아보고 결정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촬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쿠바에 미친 여자'가 가제였죠. 쿠바가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생각했는데 환상은 결국 깨졌죠. 관료적이고 모순이 많은 쿠바가 싫었어요."
20달러 내외의 월급을 받는 쿠바인들에겐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강박도 덜 하다.
때문에 행정 업무는 도대체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지 알 수가 없다.
쿠바인들도 보다 합리적이고 능률적인 행정처리를 원한다.
정치적으로도 많은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들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 감독은 그러나 더 살아보니 매력이 보였다고 했다.
그는 쿠바 사람들이 궁핍하게 살면서도 낙천적이고 정이 넘치며 웃음이 살아있다고 했다.
"출산하고 나서 아이를 안고 버스를 탔어요. 창문은 못 열게 돼 있는데 기름이 부족하니 에어컨은 가동을 안 하고 사람은 많고 해서 미치겠더라고요. 애는 땀을 막 쏟죠. 그런데 술 취한 사람이 타서 헛소리하기 시작해도 사람들은 막 웃으면서 얘기하더라고요. 우리 같으면 벌써 치고받고 싸웠을 텐데 말이죠."
쿠바에서 살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했다. 혼인신고를 하는데도 국제결혼센터, 외무부, 지역결혼센터를 오가면서 8개월이나 걸렸다고 했다.
"'어느 관료의 죽음'이라는 유명한 70년대 쿠바 영화가 있어요. 한 사람이 죽어서 관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서류가 필요하다, 저 서류가 필요하다 해서 한참 시간이 걸리죠."
쿠바는 관료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닫힌 사회도 아니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그녀는 "'되는 것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다"면서 "인내를 가지라는 뜻의 '파시엔시아(Paciencia)', 쉽지 않다는 뜻의 '노 에스 파실(No es facil)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이 '쿠바가 우리가 아는 로망만 있는 나라는 아니라는 것을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두 사람이 결혼식을 하는데서 끝이 난다.
결혼과 출산 등을 담지 않은 데 대해서는 '바로 임신을 했고 힘에 부쳤다'면서 '아쉬운 건 좀 있지만 계속 찍었다면 끝이 안 날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쟁이 없는 사회에서 온 남편과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고 했다.
"여전히 남편이 느릿느릿한 것 때문에 많이 싸워요. 7시 약속인데 7시에 샤워를 하기 시작할 정도죠. 저는 그러면 한국에 왔으니 맞추라고 강요하는 편이죠."
정 감독은 다음 작품에서 쿠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다룰 작정이다.
첫 경험을 하는 어린 커플부터 이혼한 커플까지 다양한 모습의 사랑을 보여줄 예정이다.
"거긴 13살, 14살 때 첫 섹스를 다 해요. 중학교를 넘기는 애가 있을까 싶어요. 제 시 동생은 고등학생이었는데 부모 집에서 중학생과 동거하고 있었어요. 둘이 좋아하면 그냥 같이 있는 거죠."
쿠바의 교육에 대해서도 다뤄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동안은 쿠바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살다보면 또 무슨 얘기가 나올 것 같다'면서 '지금 끝내기에는 나도 아직 쿠바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어떤 체제나 경제적 상황에서 살든 인간은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모습이 쿠바에 아름답게 있다고 생각하니 그걸 찍어서 보여주고 싶은 거죠."
'빨리 빨리'를 외쳐대며 줄곧 시계를 훔쳐보는 한국인을 오르엘비스는 이해하기 힘들고,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나치게 자유롭고 느긋한 쿠바인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조금씩 양보해 가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영화는 연애담인 동시에 차이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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