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Merchi cherie'는 MBC FM 심야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의 시그널 음악에 사용되었던 시그널 뮤직의 대표작이다.
청아하면서도 몽환적 매력을 뿜어내는 빼어난 멜로디가 감성을 사로잡으며 국내에서 대히트 했던 명작품으로 원래는 70년대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서 입상곡으로 알려진 칸쵸네이다.
라디오 DJ 프로그램 가운데 최장수 프로로 꼽히는 별밤은 1970년에 인기 DJ 이종환이 제작과 진행을 맡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심야 음악 프로로 등장하게 된다.
“제가 프로그램을 맡게 된 그 당시 팝송 말고는 젊은이들에게 호응을 얻을 만한 우리 가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요를 좋아 하도록 이끌기 위해 청취자와 같은 또래인 학생 가수들을 직접 스튜디오로 불러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프로그램이 생방송으로 진행, 밤늦은 시간까지 악단을 대기시킬 수도 없고… 가장 손쉬운 악기가 기타 아닙니까?”
그 무렵에 등장한 통기타 가수들은 이장희, 윤형주, 송창식, 양희은, 서유석 등으로 결국 별밤은 젊은 통기타 가수들의 등용문이 된 셈이다.
통기타 가수들의 등장으로 별밤의 파문은 급속히 번져나갔다.
장안의 젊은이들은 늦은 밤까지 라디오에 매달렸다.
텔레비전과 FM 매체의 인식이 비교적 약했던 70년대 초반에 AM의 인기, 특히 심야 방송은 젊은이들의 문화를 새롭게 형성하고 그들만의 대화가 있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별밤의 열기가 심야 시간을 거의 휩쓸자 다른 방송사들도 '0시의 다이얼,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의 프로그램을 앞다투어 제작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심야 방송의 열기는 심한 경쟁에 말려든다.
이러한 경쟁의 열기는 1973년 정부가 유신 헌법을 제정하고 방송의 교양화를 앞세워 아나운서가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게 하면서 다소 진정되었다.
아나운서 차인태가 최초로 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맡게 된 때가 이 무렵.
그러나 새로운 분위기로 차츰 자리를 잡고 있던 방송가는 ‘대마초 사건’ 회오리로 한때 초토를 방불하는 물결에 휩쓸려 버렸다.
심야 방송은 ‘청소년에게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친다’ 는 지탄의 대명사가 돼버리고 생방송, 전화 희망곡 접수가 금지되는가 하면 연예인 출연도 규제되는 등 진행자에서 선곡까지 까다로운 제한을 받게 된다.
이 중에서도 차인태 아나운서는 젊은 대학생, 야간 근로자, 간호원 등으로 청취 대상 폭을 넓히고 자칫 건조해지기 쉬운 프로그램에 교양과 오락을 적절히 조화시켜 오랫동안 착실히 인기를 누려왔다.
그 후 별밤은 청취자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젊은 DJ로 옮겨진다.
인기 가수 이수만이 바로 그 사람.
이때부터 본격적인 스크립터가 등장하고 또 교복 자율화로 청소년의 정신 연령이 높아지자 청취 대상도 중고등학생으로 좁혀진다.
통행금지가 해제되기 전인 1982년까지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서대문 경찰서, 치안 본부, 서울 시경에서 3일 유효 기간의 야간 통행증과 차량 통행증을 발급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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