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더듬이만 갖고 도로 위를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있다.
도로가 깔리고 차들이 다니기 전까지 달팽이가 가진 두 개의 예민한 더듬이는 생존에 충분한 감각기관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뀌어 8차선 대로가 뚫리고, 엄청나게 많은 차가 무서운 속도로 달린다.
달팽이는 두 더듬이에만 의존해 예전과 같이 길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전에 중견 전자업체를 경영했던 필자는 뉴욕타임스 기자와 식사를 하면서 질문을 받았다.
"요즘 당신 회사는 무얼 잘 만드느냐?"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거꾸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식당이 왜 잘 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머뭇거리며 답을 하지 못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건너편에 있는 그 식당은 한 달 전에 전화해도 예약하기 어렵다고 소문난 곳이었다.
그는 식사 내내 음식이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음식을 담은 그릇의 디자인까지 칭찬하고 있던 터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에 우리가 먹은 샐러드의 채소도 참 싱싱하고 쇠고기도 육질이 참 좋았지요. 하지만 이 식당이 채소와 소를 직접 키웠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가장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겠지요. 한편으로는 요즘 뉴욕 사람들이 무슨 음식을 좋아할지를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조리한 음식을 예쁜 그릇에 담아내니 더 맛있는 것 같네요. 이런 것들이 이 식당의 성공 비결이겠지요."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회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는 무슨 대단한 자체 기술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지금 이 시각에 어떤 따끈따끈한 기술이 세계 어디에서 나오는지, 또 우리가 원하는 기술과 경쟁력 있는 좋은 부품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를 알아내고 구하는 것을 잘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소비자의 취향과 제품의 트렌드가 어떻게 바뀔지를 알기 위해 별도의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지요. 여기에 보태 그런 제품을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에 담아내는 능력, 뭐 이런 것들이 우리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 아닐까 합니다."
며칠 후 뉴욕타임스에 필자의 사진과 함께 꽤 큰 기사가 실렸다.
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구구절절 회사 자랑이나 제품의 경쟁력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다면 이런 기사는 실리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 회사가 세상 돌아가는 트렌드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적어도 당신은 기자가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 잘 아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달팽이처럼 다가오는 거대한 위협을 파악하지 못한 채 익숙한 작은 더듬이에만 의지해 살아간다.
휴대폰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노키아의 추락도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늘 자신이 달팽이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글 이명우 박사, 한양대 교수
I feel love, Donna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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