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은퇴 이민

아름다운 충격 y 나 가거든, 박정현

부에노(조운엽) 2016. 11. 20. 06:48

 

 

 

 

 

 

 

아름다운 충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던가.

최근 큰 성공을 거둔 젊은이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꼭 나이 탓만은 아닐 것 같다.

묵묵히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쳐온 내 또래 이상의 사람들에겐 어떻든 특별한 행운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삼사십 년 이상 평생 일해서 모은 재산이 저들의 연봉에도 못 미친다 해도 그냥 쓸쓸한 미소와 함께 다른 나라 얘기처럼 흘려버릴 수도 있다.

 

나는 이사를 참 많이 했다.

팔십 년대부터 무려 열두 번이나 이사했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수원으로, 다시 서울로 옮겨오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아직 그곳에서 그대로 사는 이들의 소식을 들으니 그들의 형편이 별로 나아진 게 없다고 한다.

모를 일이다.

그곳을 벗어난 사람들은 그래도 좋아졌다는 이가 적지 않은데 남아있는 저들은 왜 그대로일까.

그들이 하던 일까지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그런 소식을 접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아파져 온다.

그들의 삶이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짐이 없다는 것에 안쓰러운 생각마저 든다.

너무 착해서 자기 몫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대개 그런 이들이었다.

현기증이 날 만큼 급하게 변하는 시대, 거기에 따라 변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죄가 될까?

호수의 물과 바다의 물을 보면서 같은 물인데도 같지 않다는 걸 느꼈었다.

 

변화의 수용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에겐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실패도 하지만 대단한 성공을 건져 올리기도 한다.

젊은이들의 힘이다.

하지만 꼭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닐 터인데 내 경우만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해보자는 생각이 주저하는 마음에 늘 눌리고 만다.

행동도 마음도 적극적이지 못하다.

결국, 덤벼들 용기도 의욕도 그들만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어찌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라고 하랴.

'미국의 샤갈'이라 불리는 '리버만'이란 화가는 일흔일곱 살에 그림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폴란드 출신으로 아홉 살 때 단돈 오 달러를 들고 미국에 이민 가서 맨해튼에서 과자가게를 하던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흔네 살에 은퇴를 한 후 줄곧 노인정에서 체스를 두며 소일했다고 한다.

그런 어느 날 체스 파트너가 나오지 않아 혼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 젊은 봉사자가 '그림을 한 번 그려보시지요.' 하더란다.

리버만은 망설이다가 화실에 가서 십 주간의 교육을 받은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게 되었다고 한다.

늙어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던 리버만은 일약 '원시의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로 불리게 되었고 그의 그림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게 됐다.

그는 백한 살에 스물두 번째 개인전을 열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낙엽을 보며 황혼을 생각하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새 일을 시작할 기회라지 않던가.

그렇지만 그것도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할 일이다.

 

언젠가 피리 연주를 보면서 삶도 피리 불기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속이 빈 막대 하나, 그걸 대롱으로만 생각하면 한갓 대롱일 터이지만 그걸 불어 소리를 내니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이 되던가.

사람의 삶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젊은이들의 성공은 내겐 부끄러움이면서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살아온 날의 자존심이 망가지는 충격을 흡수해야 했고 그것에 적응도 해야 했다.

나이의 결과가 아니라 변화된 생각의 몫이었다.

백 살이 넘어 스물두 번째의 개인전을 연 리버만 할아버지야말로 진정 젊은이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의 나이 겨우 절반이 넘어 벌써 상실의 병을 앓고 있는 나는 무언가.

 

성공은 아름답다.

그래서 누구나 탐낸다.

하지만 아름다운 성공은 오히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 출발을 시도한 용감한 사람들의 몫이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못한다고 지레 주저앉을 일도 아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 삶의 여행을 쉬지 않는 것, 주어진 도화지 한 장과 크레파스로 자기 삶의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게 바로 삶이지 않을까.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지금부터 내가 그려낼 그림이 궁금해진다.

과연 어떤 그림이 될까.

나도 무언가 아름다운 충격 하나쯤 그림 속에 그려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창문을 여니 난향이 바람에 밀려 들어온다.

살아있다는 신호인가.

그러고 보니 살아있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감격이요, 감사할 일인 것 같다.

 

 

최원현

 

 

 

 

나 가거든, 박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