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은퇴 이민

이민 가서 산다는 것​

부에노(조운엽) 2016. 12. 23. 06:58







외국에서 산다는 것​

뜻하지 않게 외국생활을 많이 했다.

철이 들고 인생의 1/3 이상을 외국에서 살고 있다.

처음엔 부모님 따라, 결혼 후에는 남편 따라 이국을 떠돌며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전문가(?)로부터 내 팔자에 '역마살'이 확실히 붙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곳에 정착하기보다 여러 곳을 떠돌며 살 팔자라는 거다.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무렵 사귄 가까운 친구들도 전부 외국에서 알게 됐다.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라 여전히 일 년에도 몇 번씩 여기저기를 떠돌거나, 아예 다른 국적의 남자를 만나 결혼해 그곳에 둥지를 틀고 산다.


가족들 상황도 다르지 않다.

불과 삼 년 전 우리 가족은 나는 서울에, 부모님은 평택에, 큰 오빠는 아프리카에, 남동생은 호주 시드니에, 언니는 중국 웨이하이에 거주하고 있었다.

가족이 한 번 모이기 위해선 지구촌 대륙과 대륙을 넘는 대이동을 해야만 비로소 한 끼 식사가 가능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친척들마저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비행기 한 번 타는 일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던 이삼십 년 전부터 외국에서 살았다.

큰 고모네는 대만 타이베이에, 작은 고모네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우리 가족은 또 중국과 정식 수교를 맺기도 전부터 베이징, 셴양 등지를 자주 드나들며 지냈다.

지금도 가족들이 모이면 '우리는 왜 이렇게 희한하게 사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결론은 매한가지.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기도 때문이라는 거다.

할머니는 아빠 형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 자식들이 커서 세계를 두루 다니며 사는 인물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살아계셨더라면 여든이 넘으셨을 할머니 세대엔 '외국을 돌아다니며 사는 것'이 곧 '성공한 삶'의 증표 같은 것이었다.

꿈은 이루어져 온 가족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길든 짧든 외국생활을 경험했다.

그냥 5박 6일 여행 같은 게 아니라 아예 정착하여 그곳에서 집 구하고, 직장 다니며 돈 벌고, 먹고 살아가는 '이민' 말이다.

나는 염원이 참으로 무섭다는 걸 할머니를 통해 느낀다.

간절한 꿈은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진다.

 

어쨌든 나는 외국을 돌아다니며 살아서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 같은 건 없다.

그게 사람이든 장소든 음식이든 마찬가지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도 잘 붙이고 잘 논다.

처음 가는 장소도 두려움보단 호기심과 설렘으로 간다.

처음 보는 음식은 어떤 재료든 상관없이 일단 먹고 본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이민에 대한 로망이 현실과는 정말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나처럼 외국생활을 쉽게 하는 사람도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할 때가 있다.

'나는 누구지, 여긴 어디야?'라며 정신줄을 놓게 될 때가 있다.

다 때려치우고 한국 가서 한국 음식 잔뜩 먹으며 한국어만 쓰며 편하게 살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 어떤 식으로든 그저 한국에서 뜨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다.

어디로 가서 살고 싶냐 물어보면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참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그 이유에 관해 물어보면 세상천지 그렇게 간단명료할 수가 없다. 

"캐나다가 그렇게 살기 좋다네요, 중국엔 돈 벌게 천지라면서요, 미국 시민권 따서 노후는 좀 편하게 살려고요."

 

'풍문'으로 들은 '카더라 통신'만 믿고 온 가족을 데리고 그 나라로 이민 간다고?

"외국 생활 정말 쉽지 않아요."

얘기를 해주면 이런 식으로 답하는 사람도 많다. 

"뭐든 바닥부터 시작할 각오가 되어 있어요. 일단 부딪치고 보는 거죠."

 

글쎄, 스무 살 젊은이도 아니고, 뭐든 부딪친다고 쉽게 된다면 세상 살기 참 쉽겠지.

의욕과 열정은 좋지만, 의욕과 열정만으로 움직였다가 실패한 사례를 너무 많이 봐왔기에 염려가 된다.


젊은 시절, 가족과 함께 외국에서 몇 년간 살아보는 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다.

장점을 꼽으라면 수도 없이 많다.

기회만 된다면, 누구든 한 번쯤 외국생활을 경험해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좋은 경험을 얻기 위해선 치러야 할 대가도 많다.

일단, '외로움'과 친하지 않은 사람은 외국생활이 힘들다.

처음 일이 년은 외로울 시간도 없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그 나라 언어를 배우러 다니고, 주변 여행도 하고, 새로운 사람도 사귀고, 하루하루가 신나고 재밌다.

그런데 외국생활이 잠깐 '여행'이 아닌 '생활'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

혼자 식당에서 밥도 못 먹는 성격은 외국에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때론 전기수리공 한 명 부르는 것도 만만치 않은 '미션'이 된다.

자정이 넘어도 환한 우리나라와 달리, 해 떨어지면 집 앞 슈퍼도 문을 닫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아시아 국가보다는 미주, 유럽 쪽이 그렇다.

차 없으면 밥 한 끼 먹으러 가기도 불편하다.

친구 불러 집 앞 분식집에서 야식을 먹거나, 치맥이나 족발 배달시켜 먹는 건 정말 우리나라나 가능한 일!

말인즉슨, 저녁 7시 이후에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혼자 혹은 가족들과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으면, 무진장 길고 외로운 밤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혼자 잘 노는 사람, 외로움에 무딘 사람,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외국생활도 잘 적응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기에 언급하자면,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오길 권한다.

무작정 지인 따라가는 것은 절대 비추다.

아무리 친해도 매사 남이 다 해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본인이 조사하고, 분석하고, 판단해서 떠나야만 한다.

지인 믿고 갔다가 괜히 사이만 멀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바닥부터 시작해야지'라는 마인드는 좋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의, 어떤 바닥에서 시작할 것인지는 확실히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나이 서른 넘어 접시만 닦으러 이민 가려는 사람은 없다.

미래 비전을 보고 잠깐의 고생도 불사하는 것일 테다.

무작정 접시부터 닦자 하고 떠나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내내 접시만 닦다가 한국에 돌아갈 수도 있다.

처음 육 개월은 접시를 닦더라도, 나머지 이 년은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자세한 시장조사는 기본이다. 


막연한 희망은 금물이다.

해당 국가에서 태어나 쭉 자라지 않은 이상 '언어'로 그들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나는 노력 없이는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데 사업이든 생활이든 '언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업 홍보나 마케팅도 아주 세련되고 정확한 언어를 구사해야 가능하다.

 

생각해보자.

한국에 이민 온 동남아 가족이 들고 온 돈도 한정되어 있고, 한국어는 기본 인사말밖에 모른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도 없이 '바닥부터 하자'라는 마인드로 왔다.

이들이 과연 성공적인 이민생활을 할 수 있을까?

꿈꾸는 대로 돈을 많이 벌고, 사업도 성공시키고, 아이들은 국제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멋지게 생활을 즐길 수 있을까?

나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한국이라는 땅에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한국인 인맥을 갖고 사는 '토종 한국인들'에게조차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외국생활도 마찬가지다.

이십 대라면 무작정 로망만 갖고 워킹홀리데이라도 떠나라고 부추길 수 있다.

이십 대 중반인 남동생에게 시드니든 런던이든 떠나라고 바람을 넣은 것도 나였다.

물론 그는 진짜로 떠났고, 일 년간 혼자 생활하고 돌아와 부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가족을 데리고 떠나는 사람이 로망만 가진 외국생활은 정말 힘들다.

반드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민을 떠나야 한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이국의 멋진 풍경에 넋을 잃다가도 그 풍경을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 부당한 대우에 맞서 언성을 높이다가도 말로는 절대 그들을 이기지 못함을 알고 접어야 하는 것, 토크쇼나 예능 프로그램을 함께 보다가 웃음 포인트가 달라 혼자 웃지 못하는 순간을 맞이해야 하는 것, 어쩌면 외국생활은 이런 '멘탈 붕괴'의 연속이다.


반면, 하루하루 새로움을 깨닫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곳,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 개척자가 되어 사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고, 일상의 매 순간이 공부가 되는 곳, 외국생활은 이런 '두근거림'의 연속이다.

년 후든 십 년 후든 외국생활을 꿈꾼다면 지금부터 준비해서 제대로 떠나자.

언어도 미리 공부하고, 문화도 익히고, 지리도 배우고, 관습도 깨치고, 인맥도 차근차근 쌓아두고, 어떤 인맥이든 막상 외국에 나가면 소중한 금맥이 된다.

사업 아이템을 위한 시장 조사도 최소한 열 번 이상은 해보고, 아이가 있다면 교육환경은 어떤지에 관한 분석부터 생활 물가, 집값, 한인 비율 등등 사전 조사와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해당 지역에서 실제로 몇 달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잠깐 여행 온 것과 실제로 살아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

그런 경비 아끼다가 막상 이민해서 살면 수업료가 더 들어가게 된다.

 

황금 같은 인생 일부를 외국에서 살면서 성장해가는 것은 남은 인생 내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http://blog.naver.com/aeri1211/220213003367 스토리텔러 김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