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은퇴 이민

남의 나라에서 잘사는 방법? y Donde voy, Tish Hinojosa

부에노(조운엽) 2017. 1. 15. 12:25




푸껫 까따 비치에 놀러 온 영국 여학생들




 남의 나라에서 잘사는 방법?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아니, 뭐야?"

"필요하신 거 주문하시라니까요?"

 

한 유럽인 은퇴자가 노후 생활을 즐기기 위해 좀 덥지만, 기후 좋고 공기 좋은 타이에서 동거녀 명의로 바를 차렸단다.

유럽인답게 나름 잘 판단해서 안전장치를 철저하게 한다고 허가, 등기 서류들을 변호사에게 맡겨 처리해서 바를 열었고, 모국인들이 매일 찾아와 그럭저럭 성업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니 가게 일을 돕던 동거녀 식구들이 주인인 유러피안에게 안면을 바꿔 '당신 누구세요?' 하면서 손님 대접하는 것이었다.


기가 막혀서...

말로 해서 쉽게 해결될 일 같지 않아서 소송을 냈다.

그러나 완벽하리라고 생각했던 서류도 법원에 들어가니 여의치 않았다.

결국 판사는 현지인 손을 들어주었다.

자고 나니 웬 날벼락이라고 졸지에 타이에 투자했던 노후자금이 어이없이 날아가자 열 받은 다혈질 유러피안 영감은 담당 판사를 쏴 죽이고, 가게를 날로 먹으려는 동거녀 식구를 살해하여 인생 종쳤다.

 

이 보다는 덜 하지만 타이 북부에서 정부의 허가를 받아 특용작물을 재배하던 한 독일인은 사소한 일로 관리와 마찰을 빚다가 농사지은 것이 돈이 될 만하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강제추방 당했다고 한다.

 

타이 살 때 카페 회원인 교민 짬롱 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물론 이런 일이 타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남의 나라에서 살다 보면 별 희한한 일을 겪을 수 있다. 

 

오래전 칠레에서 아무 이유 없는 모든 한국인 강제 추방령.

그때 우리 정부와 교민회 등이 여러 경로를 통해 잘 수습해서 강제 추방까지는 당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국가 부도 사태 때 은행예금 동결 및 달러 환율 고정제.

이때 십여만 명 가까이 되던 교민들이 무지막지하고 또라이같은 아르헨티나의 공권력에 환멸을 느끼고 그곳을 떠나, 지금 교민은 이만여 명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지금 사는 캄보디아에서도 많은 자본을 투자한 유럽인이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감방에 가 있다.

그게 재산을 노린 공무원과 주변 사람들이 꾸민 일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 나라에선 일이백 불만 주면 서른 살 된 아줌마도 미성년자 나이로 서류를 조작할 수 있다 하고, 캄보디아에서는 아동이나 미성년자 성 매수 경우 15년까지 징역을 살 수 있다.


또, 최근 한국인 목사 한 사람이 미성년자 성 매수로 잡혀갔는데 현지인 명의로 된 수억 원 되는 교회 땅과 건물을 노리고 사건을 조작했다는 루머가 있다.

거짓인지 어떤지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물론 위의 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어디에 살든 재수 없으면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남의 나라에서 보는 일본이나 중국 이민 공동체는 서로 돕고 잘 사는 것 같다.

일본 친구들은 대체로 국민성이 정직하고 친절하니까 지들끼리 잘 돕고 사는 것 같고...
남미에서 중국인이 이민 오면 먼저 온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가게를 차려주는 걸 봤다.
이민 오느라 빚 많이 내고 왔을 테니 빨리 벌어서 갚으라고...
그런 와중에 그들도 살기 힘들면 사기 치는 사람도 없잖아 있겠지만, 우리는 정직하지 않은 한국 사람들이 종종 있어 유독 외국에서 같은 한인끼리 경계하는 경향이 많아 안타까운 현실이다.


 

 

 

탐스럽게 열린 자트로파 열매

 

 


푸껫에서 일 년 넘게 바이오 디젤이 나오는 자트로파 나무를 시험 재배해 보니 땅과 농작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기가 되니 제 혼자 무럭무럭 잘 자랐고, 건기가 되면 가뭄에 대비해서 자기 잎을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열매를 수확하고 있는 나무는 놓아두고 가지치기를 해서 꺽꽂이를 해보았다.

물을 주니 무럭무럭 잘 자랐다.

두 그루는 시험 삼아 거꾸로 심었다. 

그랬더니 못 살 줄만 알았던 나무에 아주 서서히 짙은 갈색, 아니 핏빛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내부의 진통을 겪고 거꾸로 서서 살아가는 것일까?

 

 


 

같은 날 거꾸로 심은 나무에 핏빛의 싹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

 

 

이 나무를 보고 외국에 사는 교민들도 마치 이런 삶을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 안 통하고 물설고 문화가 다른 남의 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려면 저런 통과의례를 겪어서 현재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죽을 때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남의 나라에서 어떻게 하면 저런 무지막지한 일들을 피해서 잘 묵고 잘살 수 있을까?

 

답은...

없다.

  

다만, 배고프다고 누가 돈 달라고 하면 작은 거에 목숨 걸지 말고 주머니에 있는 푼돈 얼른 꺼내 주고 갈 일이다.

길 가다가 어린놈이 담배 한 개비 달라고 하면 웃으면서 얼른 세 개비 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절대 남의 나라에서 구설에 오르거나 다툴 필요가 없다.

언제 어디서 누가 뒤통수를 칠지 모르니까...

 

그렇다고 해외 사는 것이 다 살벌한 것은 절대 아니다.

반대급부로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자유로움과 넉넉함이 있다. 

남의 나라에서 현지인에게 피해 안 주고 작은 거나마 베풀고 살면, 어디 가나 대우받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야 지구촌의 다채로운 삶을 보며 여유 있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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