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달리 부자인 일본 노인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자 빌 그로스는 '만약 몇 년간 외딴 섬에 격리된 채 단 한 가지 정보만 얻을 수 있다면, 인구 구조 변화에 관한 정보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경제 예측에서 인구 구조만큼 실효성 있는 지표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가 20년 전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결정적 이유는 인구 구조가 과거 일본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4년에 인구 7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인 '고령 사회'가 됐다.
한국은 올해 이 지점을 통과한다.
일본은 2006년에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노인 파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것은 이 시점부터다.
한국은 8년 뒤 초고령 사회로 들어선다.
최근 한국 특파원을 역임한 일본의 경제 전문 기자가 쓴 책에 놀랄 만한 사실이 있다.
일본 노인들은 한국 노인과 비교하면 엄청난 부자들이라는 점이다.
일본 정부 자료를 보면, 일본 60대 노인들은 평균 저축액이 2,484만 엔, 한화 약 2억5100만 원에 이른다.
빚은 213만 엔, 한화 2,150만 원에 불과하다.
이런 물적 토대 덕분인지 일본 노인들은 대체로 행복하다.
일본 내각부가 만든 '고령 사회 백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경제적 형편'에 관해 물었더니, '걱정 없다.'고 답한 사람이 71%에 달했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은 어떤가.
통계청 2016년 조사를 보면 60세 이상 가구의 평균 저축액은 5,608만 원인 데 반해 부채는 4,926만 원에 이른다.
노인 2명 중 1명은 월 소득 100만 원 미만의 빈곤층이다.
한·일 노인 간 자산 격차는 왜 이렇게 큰 것일까.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병역 의무가 없는 일본 남성의 경우 대략 22~23세에 취직을 해서 40년 정도 일한 뒤, 63~65세에 은퇴한다.
반면 한국 남성들은 20대 후반에 취업해 25년 정도 일한 뒤 50대 초반에 은퇴한다.
더 짧게 일하고, 더 긴 노후를 버텨야 하니 우리나라 노년층의 재무 상태가 열악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결정적인 차이는 가계의 '비용 구조'에 있다.
원흉은 사교육비다.
월급쟁이 생애 소득 사이클을 보면 40대에 가장 많은 자산을 축적해야 하는데, 한국의 40대 가장은 과도한 사교육비 탓에 자산 축적이 안 된다.
한국과 일본 40대 가구의 소비지출을 비교한 NH투자증권 보고서를 보면, 한국 40대 가장은 소비 지출 중 18%를 교육비로 쓴다.
반면 일본은 7%에 그친다.
한국의 40대 가장이 가처분소득을 사교육에 털어 넣을 때, 일본 40대 가장들은 해외투자 등 재테크를 한다.
그 결과가 한·일 노인 간 자산 격차다.
일본 베이비붐 세대, 1947~49년생의 은퇴 열풍이 20년 장기 불황에 일조했듯이, 한국에선 베이비붐 세대, 1955~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노후 준비가 부실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대거 중산층에서 탈락하면서 내수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면 교육 개혁이 절실하다.
사교육비 부담에서 벗어나야 중산층의 구매력이 살아나고, 노후 파산도 피할 수 있다.
나라님 하시겠다는 주자들을 평가할 때, 교육 개혁 청사진부터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난 정말 몰랐었네, 최병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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