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절실
노인 숫자는 계속 증가하는데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젊은이들마저 취업하기가 쉽지 않고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시대다.
정부는 노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자하지만, 실속이 별로 없고 빨라지는 고령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오전 9시에 가게 문을 열자 아주머니 손님들이 삼삼오오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외관만 보면 시내 고급 카페 못지않다.
내부에 들어서니 갓 구운 향기 좋은 빵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직원이 환한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직원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시원한 커피를 놓고 간다.
웬 젊은 남자가 아침부터 혼자 노트북을 켠 채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생소한 풍경인 양 아주머니들의 시선이 모였다.
민망한 마음에 먼저 신원을 밝혔다.
“카페 취재차 온 기자입니다.”
“아, 잘 왔네. 이 동네에서 여기 모르면 간첩이야. 가격도 싸고 맛있어.”
지역주민에게 적어도 시내 고급 카페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이곳은 성남시 노인 일자리사업의 일환인 시니어 바리스타 카페 1호점 마망 베이커리 & 카페다.
수시로 근무하는 68명 직원 대부분이 예순 살 이상 여성인 마망은 1호점 외에 2~3호점도 성남시에서 운영 중이다.
커피뿐만 아니라 주스, 팥빙수, 각종 차는 물론 다양한 빵을 싼 가격에 판매한다.
오전 취재는 뜻밖의 난관을 맞았다.
아침 손님을 맞으면서 영업 준비 등으로 어르신들이 너무 바빴다.
취재 때문에 그들의 업무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중간중간 짬 날 때마다 말을 붙이는 방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에휴, 우리 같은 늙은이 취재해서 뭐하게.”
심순식 씨(여·68)는 바리스타 경력만 팔 년 차인 베테랑이다.
안양시에서 복지프로그램을 통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심 씨는 마망 1호점을 팔 년째 지키는 산증인이다.
“이 나이에 우리가 어디 가서 일 할 수 있겠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지. 가족들도 다 좋아해.”
마망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1교대 근무자, 오후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2교대 근무자가 출근한다.
1교대 근무자인 심 씨는 일주일에 2~3일 출근한다.
근무일 배정도 자유스럽고 하루 6시간씩 월 60시간 근무기준으로 월 36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많지 않지만, 근무 자율성과 일의 강도 면에서 어르신들에게 비교적 합리적인 금액인 듯했다.
오전 11시에 기자의 코를 자극하던 고소한 빵 냄새가 나는 생산팀을 찾았다.
생산팀 직원 역시 노인복지프로그램을 통해 제빵 기술을 배운 예순 살 이상 여성들이다.
빵 만드는 현장이다 보니 깔끔한 시설과 하얀색 복장이 눈에 띄었다.
열 명 내외의 사람이 일하고 제빵 기계의 소음까지 더해져 대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주뼛주뼛 서 있던 기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기자 가까이에 있던 어르신께서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해줬다.
“주변에서 다 부러워하지. 비슷한 동년배가 모여 함께 일해 외롭지도 않고 재밌어. 여기 빵 맛? 그 뭐야. 파리 머시긴가 거기보다 훨씬 맛있지.”
생산팀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최고령자 조혜도 씨(여·84)다.
조 씨는 육십 대 생산팀원들 사이에서 뒤지지 않는 실력으로 열심히 빵을 만들었다.
빵 만드는 게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조 씨는 ‘아유, 왜 안 힘들어. 힘들지. 그래도 지금은 익숙해져서 괜찮아. 육십 대에 뒤지지 않는다우.’라고 말했다.
오전 11시 30분이 넘자 점심식사를 마친 고객의 발길로 카페 내부는 북새통을 이뤘다.
바리스타팀과 생산팀의 손놀림이 더욱 바빠진다.
하지만 절대 대충하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기쁨에 커피와 빵에는 정성이 더해진다.
고객들은 그 정성으로 맛있는 커피와 빵을 먹을 수 있다.
교대근무를 마친 심 씨가 퇴근준비를 하며 ‘두 발로 서 있을 힘이 있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웃었다.
어르신에겐 이곳이 은퇴 후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웃음을 잃지 않고 일하는 어르신들의 표정 속에 노인 일자리 문제의 해답이 보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높은 급여도 좋지만, 단지 늙어서도 집에서 그냥 노는 것보다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권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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