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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기다리는 마음 y La Golondrina, Caterina Valenti

부에노(조운엽) 2018. 4. 27. 10:10




새 중에서 가장 큰 날개를 갖고 먼바다에서 사는 신천옹이라 불리는 앨버트로스



한바다를 항해할 때 여러 종류의 나는 것들이 배에 날아든다.

갈매기는 기본이고 거대한 앨버트로스는 북태평양의 망망대해를 항해할 때 배에서 짬밥을 버리면 어디선가 귀신같이 알고 날아온다.

언젠가는 다친 올빼미가 선미 창고에 날아와 젊은 선원이 며칠 먹이를 주고 같이 산 적이 있다.

어느 날 보이지 않는 것이 기력을 회복하고 제 갈 길로 날아간 모양이다.

동남아나 중남미 근처 바다를 항해할 때 왕매미나 왕잠자리가 불빛을 보고 날아오기도 하고 간혹 파리가 날아들면 육지가 가까워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무튼, 바다에 살지 않는다고 여기는 조류, 곤충들도 바다를 거쳐 어디론가 이동한다.

어느 봄날에 말레이시아에서 원목을 싣고 남지나해를 씩씩대고 한국으로 올라가는데 갑판에 가득 실린 원목 위에 제비 떼가 까맣게 앉아있는 장관을 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듣던 강남 갔던 제비가 봄이 되어 한국 등 제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면서 잠시 쉬는 모양이었다.





원목을 가득 실은 삼만 톤급 화물선



해마다 때가 되면 셀 수 없는 동물이 장거리 이동을 한다.
아프리카 영양, 북미산 순록, 고래, 연어, 메뚜기 등 포유류에서 곤충까지 다양한 동물이 지구 전체를 이동한다.
이 가운데 새들의 이동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생태 신호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기러기가 오면 가을이 깊었음을 알고 제비가 날면 여름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이처럼 동물의 이동은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먹이 부족을 피하거나 적절한 기후를 찾아 떠나는 것이 흔한 이유이지만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겨울 철새는 추위를 피해 찾아와 겨울을 난 뒤 봄에 번식지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여름 철새는 왜 아열대 지역을 떠나 온대지역으로 오는 걸까.
떠나는 곳에 겨울이 오는 것도 아니고 먹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러기가 오는 건 이해가 가는데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건 이해가 쉽지 않다.

이런 궁금증을 풀 단서를 제공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스웨덴 생물학자 등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에 실린 논문에서 ‘여름 철새는 질병을 피해 이동한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연구자들은 참새목의 조류 1,311종의 계통 유전학 자료를 분석해 면역체계가 새들의 이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펼쳤다.






질병을 옮기는 병원체는 더운 지역으로 갈수록 다양하고 많아진다.
아프리카 텃새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다양한 면역체계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가 온대지역 텃새만큼 단순하다는 것을 연구자들이 밝혔다.
특히 번식기에 그 부담은 크다.
어미 새는 번식기 때 생리적 부담이 극한에 이르기 때문에 질병에 대처할 에너지가 거의 없다.
어린 새도 일생 중 이때 병원체에 대한 저항력이 가장 약하다.
따라서 번식을 병원체가 적은 곳에서 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일리가 있다.
이번 연구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텃새와 철새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아시아에서도 같은지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그 제비의 추억에 대한 잘 쓴 수필이 있어 옮긴다.





맘씨 고운 흥부는 제비 다리 고쳐주고, 심술궂은 놀부는 제비 다리 부러뜨리고,

박씨 하나 얻어서 울 밑에 심었더니 바가지가 주렁주렁 열렸다는...



제비를 기다리는 마음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겨우내 움츠렸던 아이들이 봄 햇살 아래 나와서 이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할 때쯤이면 노래에 맞추기라도 하듯 제비가 돌아왔다.

해마다 그렇게 삼짇날(음력 3월 3일)을 전후해서 제비들이 돌아오는 것은 계절이 바뀌는 것만큼이나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먼 남쪽 나라로 날아갔던 제비들은 생사를 건 긴 여정 끝에 고향 집에 돌아온 감회가 벅찬지 마당의 빨랫줄에 앉아 한동안 숨 가쁘게 지저귀곤 했다.  
 
제비는 철새임에도 유달리 귀소성이 강하다고 한다.

지난해 머물렀던 곳이나 태어난 집을 다시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암수 한 쌍이 2회에 걸쳐 서너 마리씩 번식하니 가을이 되어 남쪽으로 떠날 때는 다섯 배가 넘게 식구가 불어나는 셈이다.

그러나 오가는 중에 절반가량이 죽고 늙어서 더 번식을 할 수 없는 제비들은 오지 않아서 매년 일정한 수를 유지하는가 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는 제비가 둥지를 틀지 않는 집이 거의 없었다.

가축이나 애완동물이 아닌 야생조류가 사람들과 한 지붕 밑에서 산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언제부턴 지는 몰라도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제비와 한 가족처럼 살아온 셈이다. 

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를 틀면 사실 귀찮은 점이 없지 않다.

새끼들이 태어나면 적잖이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수시로 떨어지는 배설물을 치우는 일도 쉬운 노릇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날짐승일지라도 사람을 의지하고 찾아든 것을 박절하게 내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옛 인심이었다. 

텃새인 까치나 참새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과는 달리 제비는 오히려 농사에 해로운 벌레를 잡아먹는다.

새끼를 가진 암수 한 쌍이 하루에 수백 회나 벌레를 잡아 나른다고 하니 그 수가 실로 적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제비를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제비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지금은 90% 이상이나 감소하였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얼마 못 가서 아예 제비를 볼 수 없게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제비가 줄어드는 이유로는 농약이나 각종 공해로 인한 먹잇감의 감소에다 요즘 사람들의 주거 환경이 제비가 집 짓고 살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대부분의 인심이 제비를 반기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 것이다.

농작물의 해충쯤이야 농약으로 간단히 해결될 것인데 집안을 어지럽힐 뿐인 제비를 반길 이유가 있겠느냐고.

물론 제비들과 함께 살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나 정서가 없는 세대로서는 당연한 반문이다. 

제비가 날아들어 보금자리를 틀던 초가집들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가난한 시절을 거쳐 우리나라는 참 눈부시게 발전을 했다.

하지만 그래서 얼마나 더 행복해졌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제비들이 더 살 수 없게 된 땅이 우리에게 과연 행복한 세상일 수가 있을까.

언제부턴가 솔개와 두꺼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짇날에 제비를 기다리며 멀리 남쪽 하늘을 쳐다본다.



경북 매일 글쓴이 무울 님






La Golondrina(제비), Caterina Valen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