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아르키메데스의 시칠리아를 지나며

부에노(조운엽) 2019. 8. 23. 06:56



현대와 기아차를 전 세계로 실어나르는 유럽과 합작회사 EUKOR Car Carriers의 자동차 전용선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이, 초사! 나폴리 도착하기 전에 선창 카 데크 다 내려서 조립하고 라이싱 와이어와 조임 볼트, 너트 부족한 거 청구해요. 이번 화물은 중장비와 차량 사천여 대 홀드에 싣고, 컨테이너와 홀드에 안 들어가는 중장비는 데크에 싣고 라이싱할 거니까.”

선교에 있는 캡틴이 데크에서 작업하고 있는 1항사에게 마이크로 지시한다.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동그랗게 만들며 알았다는 시늉을 하는 1항사.

Car & Bulk Carrier는 일반 화물을 실을 때는 선창 뚜껑 아래에 카 데크를 접어놓고, 차를 실을 때는 내려서 8층으로 조립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산을 신성시해 온 나라다.

그래서 산신령과 곰이 나오고 산에 맥이 흘러 그 맥이 동네나 사람의 운명까지 바꾼다고 믿었다.

풍수지리설과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들이 다 산에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산이 운명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 이탈리아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산이 많은 반도의 나라이다.

산 정상에는 성이나 성당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등 유독 로마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은 것은 그만큼 로마제국의 국력이 강했고 역사가 깊다는 것을 방증한다.


HAPPY LATIN’ 호는 아름다운 시칠리아섬을 지나간다.

넋을 잃고 쳐다보니 배가 가는 것이 아니라 코발트 블루 빛 바다와 아름다운 시칠리아 섬이 지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시칠리아의 왕은 자신의 왕관이 순금으로 만든 것인지 아닌지 알고 싶어 당대의 석학인 아르키메데스에게 이 문제를 주었다.

그렇지만 왕관을 망가뜨리지 않고서야 무슨 도리로 알아낼 수 있을까?

목욕하던 중, 아르키메데스는 탕에 들어가자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순금과 왕관을 별도로 물속에 넣어 넘치는 물의 양을 비교해보면 순금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발견에 흥분한 나머지 그는 ‘유레카(알았다)!’라고 외치며 알몸인 채 쌍방울 흔들며 거리로 뛰쳐나갔다고 한다.

자유인 맞네.

부력의 원리라 하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가 이렇게 남들도 다 아는 일상생활에서 집중하다 보니 이천 년 넘게 교과서에 나오는 위대한 발견이 되었다.

난 뭘 해서 위소한 발견이라도 할까나.

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에 그리스의 도시 국가였던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태어났다.

지레를 발명하고 시라쿠사가 포위되었을 때에는 거울에 태양 빛을 반사해 로마 함선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나중에 도시가 함락되었을 때, 아르키메데스는 수학 문제 푸는 데 정신이 팔려 피하지 못하고 로마 군인에게 찔려 죽었다고 전해진다.

로마군이 쳐들어왔을 때 그 긴박한 상황에서 나중에 하면 될 것을 왜 피하지 않고 수학 문제만 풀고 있었는지, 승자들이 쓰고 승자만을 위한 역사에서 피할 수 있는 것을 왜 피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개죽음을 당했느냐고, 머지않아 위로 올라가면 똑똑한 알키 할배에게 맛이 간 내가 감히 묻고 싶다. 

어느 게 바쁘고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를...


때가 되면 또 밥 묵어야지.

어둑어둑 해가 지려 할 때 일과를 마친 사관들이 당직자 빼고 식당으로 모인다.

당직자는 한 30분 먼저 밥 먹고 교대하러 간다.


배가 로마 신화의 나라 이탈리아로 가니 처음 가는 선원들은 기대가 컸다.

나폴리의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피자와 스파게티가 전 세계를 정복했다 해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뉴욕 거리에서 팔던 피자가 미국 전역을 장악했다.

그런 원조 피자도 맛보고 아름다운 경치를 인증샷으로 남길 생각에 모두 기분이 들떴다.


캡틴이 식사 중에 한마디 꺼냈다.

이탈리아에 가니까 단테의 신곡이 생각나는데 읽어들 봤는지 모르겠네. 그의 작품이 베아트리체를 찬미하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네.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우연한 만남으로 맺어졌을 뿐인데 중세의 궁정식 연애, 즉 다른 사람에게 비밀스럽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찬양과 존경을 바치는 것에 부합되었다네. 베아트리체가 먼저 죽자 상심한 단테는 글 쓰는 거로 위안을 찾았고, 그의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인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내 마음의 영광스러운 여주인’이라 묘사했어요. 어째 국장은 특파원 아가씨를 우찌 생각하노?”


우씨, 남희 이야기를 하니 좋긴 한데, 어려운 이야기를 듣느라 정리가 안 되는 판에 또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전생에 무슨 인연인지 고래 잡으러 갈 때만 해도 웬수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