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타이타닉호와 조난자
버큰헤드 정신을 기억하자
"당시에 여객선들은 정시에 도착하기 위해 경쟁하는 시대였는데 석탄을 때는 증기선인데도 그 큰 배가 시속 20노트로 달렸다네. 지금 우리 배가 벙커 C를 써서 평균 15노트로 가는 거에 비하면 백여 년 전에 대단한 거였지. 타이타닉 호가 여길 지날 때 달도 뜨지 않았고 바다는 죽은 듯이 고요했대요. 만약 달이 떠 있었다면 망루에서 전방을 견시하는 갑판원이 떠다니는 빙하를 미리 볼 수 있었을 테고, 게다가 바람이 불었으면 파도가 빙산에 부딪혀 물보라에 빙하가 쉽게 눈에 띄어 역사가 바뀌었겠지.
우리는 같은 선원 입장에서 많은 고귀한 생명이 사라진 바다 앞에서 침울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장님이 말을 이어갔다.
잠시 쉬었다가 캡틴이 말을 이어갔다.
"그럼요.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게 아~ 인간들이 단골집에서 돈이 없어 외상을 할 때 안면 바꾸거나 외상 안 주면 스트레스야 받겠지만 그런다고 장애까지 온답니까?"
이럴 때 웃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캐퍼시아호 선장은 자다가 통신사로부터 타이타닉호가 조난신호를 보냈다는 것을 보고 받고, 27년 항해 경력에서 구조는 처음이었지만 매뉴얼대로 철저히 준비하면서 사고 현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대요. 우선 속력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승객의 양해를 얻어 선내 모든 난방을 꺼 배의 속력을 14노트에서 17노트로 올렸답니다. 전속력으로 항해하면서 빙산 충돌을 대비해 전방 견시원을 더 배치했고, 승객 중 생존자를 응급처치하고 도와줄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승무원을 식당과 복도 곳곳에 배치하고, 승객들을 이동 시켜 객실을 확보하고 담요, 커피와 따뜻한 물, 수프 등을 준비하고, 복도로 들어오는 모든 문을 열어 놓고, 생존자들이 타고 올라올 줄과 사다리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구명보트를 내렸다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캡틴이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표류하는 구명보트들은 파도가 점점 거칠어지고, 특히 접이식 보트들은 이미 물이 차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구조하러 오는 캐퍼시아호의 불빛이 보여 생존자들이 환호했지만, 모든 생존자를 인양하는 데는 몇 시간이 더 걸렸지. 캐퍼시아호 선원과 승객들은 생존자들을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고 다른 승객들도 옷, 세면도구 등을 빌려주며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해요. 그때 캐퍼시아호의 선원들과 승객들은 바다에 20개가 넘는 거대한 빙산과 타이타닉호의 잔해들이 떠다니는 것을 보았답디다. 오전 8시 반에 705번째 마지막 생존자를 구조하고 나서야 다른 배들이 도착했는데 이미 추가 생존자는 발견할 수 없는 상황종료였다네. 구조 작업이 막바지였을 때 가장 가까이 있었던 캘리포니아호가 다가왔는데 그들은 생존자는 물론 단 한 구의 시신도 찾지 못했대요. 캐퍼시아호에는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들을 구호할 충분한 의약품과 양식이 없어서 출발지였던 뉴욕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네. 원래 목적지는 헝가리 쪽이었다는데 생존자들을 위해 손해와 불편을 감수한 것이고, 승객들 모두 이해해줬대요."
캡틴도 긴 이야기를 하며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진저리를 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뉴욕으로 돌아가는 항로도, 애초 배 자체가 썩 빠르지 못한 데다 빙산, 폭풍, 안개 등 악천후에다 침몰 사고를 겪은 직후라 조심해서 항해하니 하루면 도착할 거리를 나흘이나 걸려서 뉴욕항에 입항했대요. 뉴욕항은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수만 명의 가족과 인파로 북적였고 취재하려는 기자들도 상당히 많았지만, 로스트론 선장은 생존자들의 휴식과 안정을 위해 기자들에게 취재를 자제할 것을 요구했대요."
수영을 못 하는 나는 저런 조난 사고 때 그냥 맥주병이 되어야 하나 불편한 마음이 한 편에 자리 잡았다.
애고, 배 타는 놈이 얼른 수영을 배우든가 해야지 어릴 적 물에 빠진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질 못하니...
어린이와 여성을 먼저 구하고 가라앉는 Birkenhead호
"잘못된 보도에서 다른 이들을 제치고 보트에 억지로 타려는 일본인이 있었다.’라는 증언이 퍼지게 되어 유일한 일본인 생존자는 여자와 아이를 우선으로 구한다.’라는 원칙을 무시했고 사무라이들은 전쟁에서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는 둥 귀국하고도 언론 등에서 온갖 욕을 먹고 직장에서도 해고되어 불운하게 생애를 마감했어요. 하지만 최근에 다른 사람을 밀치고 억지로 탑승한 동양인은 일본인이 아닌 중국인이라는 게 밝혀졌다네. 일본인이 서 있던 보트 근처에 더 여자와 어린이가 없어 항해사가 2명분의 자리가 아직 남아있어 태웠다는 것이 밝혀져 수십 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대요. 호소노는 일본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타이타닉호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하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후에도 오보를 확인하지도 않고 왜곡하여 타이타닉호 이야기를 하거나 방송될 때마다 일본인의 민족성 운운하면서 호소노 씨를 까곤 했다네. 기레기가 애먼 사람 인생을 망친 대표적인 사례라네."
"마지막으로 진정한 마도로스 이야기를 하고 싶네. 배가 침몰할 때 선장이나 승무원의 통제가 안 먹히는 경우 여성과 특히 어린이들의 생존율이 매우 낮아집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아무래도 젊고 힘센 남성이 구명보트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 그러나 타이타닉호 사건 때는 승객들에 대한 통제와 선원들이 사관들의 명령에 복종이 잘 됐소. 이는 승객들이 타이타닉호 같은 큰 배가 설마 금방 침몰하리란 생각을 못 한 덕에 비교적 여유롭게 행동했고 구명정이 부족할 거란 생각을 못 했지. 무엇보다 대영제국군의 버큰헤드 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이었소. 버큰헤드함은 영국에서 남아공으로 병력을 수송하다 희망봉 근처에서 암초에 걸려 침몰하면서, 먼저 살기 위해 보트를 타려고 아수라장이 된 혼란을 막기 위해 영국군 74보병연대의 지휘관인 알렉산더 세튼 중령은 병력을 집결 시켜 단호하게 말했어요. ’ 탑승하고 있던 민간인을 우선 구명정에 태웠고, 장병들은 갑판 위에 부동자세로 도열한 채로 가라앉았다네. 이후 영국에서는 버큰헤드호를 기억하자.’는 분위기가 일어나 영국 사회정신의 뿌리가 되었어요. 타이타닉호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잘잘못을 떠나 그야말로 악조건의 연속이자 총체적 난국에서 승객들을 먼저 구하고 끝까지 배에 남았기에 선장은 배와 운명을 함께 한다.’는 모범적인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네. 긴 얘기 듣느라 피곤하겠네. 시간도 늦었는데 내 방에 가서 여기 수장된 이들의 후예가 만든 스카치 위스키 한잔합시다."
제군들은 들어라. 지금까지 가족들은 우리를 위해 희생해왔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위해 희생할 때가 되었다. 어린이와 여자부터 구명보트에 태워라. 대영제국의 남자답게 행동하라!어린이와 여자를 먼저 살리기 위해 갑판 위에 부동자세로 도열한 채로 가라앉는 영국군 장교와 장병들 모습을 상상하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었다.
노 선장님이 젊은 우리에게 상선 사관과 신사도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이야기하시는데 머리로만 기억하고 입으로만 이야기하면서 그런 상황에서 나는 과연 영국군처럼, 타이타닉호 선원처럼 나를 버리고 승객들을 위해 뛰어다닐지 곱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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