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페루의 세비체와 마추픽추

부에노(조운엽) 2019. 9. 29. 06:40




리마의 꼬스따 베르데(녹색 해안) 

 

 

 

뻬루의 세비체와 마추픽추

 

 

까야오 항에 입항한 ‘HAPPY LATIN’ 호는 접안하고 입항 수속이 끝나자마자 바로 자동차와 중장비를 부두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카 캐리어는 어디 가나 바쁘다.

잠시 짬을 내어 캡틴과 육지 바람을 쐬러 상륙 나왔다.

초대 총독 피사로가 건설한 스페인풍의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곳곳에 남미 독립의 영웅이라는 산 마르띤과 시몬 볼리바르 장군의 동상이 보인다.

 

뻬루 막회인 세비체가 맛있다 하여 미라플로레스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아직 냉동 냉장 시설이 잘 안 되는 나라라 태평양 앞바다에서 그날 잡은 생선과 해산물을 오전에만 팔고 오후에는 문 닫는다고 한다.

싱싱한 세비체를 한 접시 시키고 뻬루 와인 삐스꼬도 한 병 가져오라고 했다.

삐스꼬는 원래 와인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발효해서 증류한 것이란다.

삐스꼬를 처음 만들 때는 숙성용으로 쓸만한 오크통이 없어서 대신 원주민이 사용하던 옹기 같은 토기 항아리에 석 달 이상 숙성시켰고, 이게 전통으로 남아 지금도 삐스꼬는 소주처럼 무색투명하며 간혹 나무통 숙성을 거쳐서 황금색인 제품도 있고 40도 전후이다. 

뻬루의 노란색 잉카콜라는 코카콜라가 이기지 못한 탄산음료로 유명하다.

결국 코카콜라 컴퍼니는 잉카콜라의 지분을 사 버렸다.

 

뻬루에 있으니 잉카 문명의 고대 도시인 마추픽추가 생각난다.

마추픽추는 원주민 말로 '나이 든 봉우리'를 뜻하는데 우루밤바 계곡의 해발 2,430m에 있으며 밑에서는 보이지 않아 종종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라고 불린다.

 

마추픽추가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일컬어지는 것은 그 옛날에 산 위부터 산 아래까지 물이 고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정교한 수로를 만들었고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웅덩이 하나 생기지 않고 지금까지도 그 수로는 여전히 물이 잘 흐르고 있다.
태양의 신전 경우 거대한 자연석을 거의 손대지 않고 만들었고 철제도구가 전혀 없었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면도칼 하나 들어가지도 않는 정교한 석조 건축, 조각술을 갖고 있었다.
산바람을 이용한 자연 냉장고를 만들어 음식물을 저장한 흔적이 발견되었고 이는 서구보다 몇백 년 앞선 기술로 감자를 6년간 썩히지 않고 보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감자의 원산지로 알려져 있고 자연석으로 만든 오차가 거의 없는 나침반과 해시계가 있었다.

 

마야문명만큼 신비스럽고 미스터리한 문명이 잉카문명이다.
잉카 문명은 태양 숭배와 황금으로 유명한데, 두개골을 수술할 정도로 의학이 발달했다.
안데스산맥의 산복도로가 정비되고 고원의 깊은 골짜기에도 다리를 놓아 잉카의 도로망을 완성했다.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부터 여러 문명이 부침하였으며, 잉카는 그 최후의 제국으로 문자를 사용하지 않아 그들의 역사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잉카제국은 머리에 구멍이 난 것을 금으로 때울 정도로 역사상 가장 황금을 많이 가지고 있던 나라였고, 한때 스페인을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로 만들게 했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는 식량을 구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힘센 정복자들에 쫓겨 산꼭대기에서 어렵게 계단식 밭을 일구어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불쌍한 민족이 잉카 원주민이라는 슬픈 역사이다.

 

라틴아메리카는 잉카와 마야, 아즈텍 기타 중남미 원주민 세력을 멸망시킨 스페인,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고, 식민지 출신 백인 계층이 중심이 되어 19세기 초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과도한 세금 등 식민지 수탈정책, 대영제국을 몰아낸 미국 독립전쟁,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린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의 스페인 점령을 계기로 스페인 식민지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져 1821년 남미 독립 영웅 산 마르띤 장군이 페루의 독립을 선포하였고 시몬 볼리바르 총독의 독립군이 1824년 스페인군을 격퇴함으로써 스페인 식민통치가 끝났다.

그런데 사실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백인 입장에서 본다면 '독립혁명'이지만 원주민 입장에서는 유럽 본토와 식민지 백인 귀족계급 간의 세력 다툼에 지나지 않았다.

독립 후 안타깝게도 신생 독립국은 원주민에 대한 학살, 추방 등이 더 심해지고 인종차별이 극심했다.

 

맛있는 뻬루 회와 와인을 마셔 알딸딸한 기분으로 배로 돌아가려는데 곳곳에 중국 음식점 치파가 보인다.

은근히 중국, 일본인 이민자가 많고 중국 음식이 대중 요리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일본계 후지모리가 대통령을 연임하기도 했고 딸이 대통령 출마도 했다.

여기 중국 요리도 우리나라같이 현지화된 중국 음식이다.

예를 들면 면은 중국 국수가 아닌 파스타 국수를 사용하고 간장, 마늘을 많이 넣은 볶음밥을 일용할 양식으로 많이 먹는다.

값도 저렴해서 짭짤한 동양식 음식이 그리운 이방인들에게는 먹을 만하다.

뱃밥은 늘 먹으니 모처럼 해물볶음밥을 시켜 꾸스께냐 맥주를 곁들여 맛있게 먹고 하역이 끝나가는 배로 귀선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다음 항구는 어디일까?





       

La casa del sol naciente, Alejandra Guzmá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