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리마의 관문 까야오 항
항해일지 중 리마항과 코이카
삐우라에서 차와 중장비를 하역하고 나니 밸러스트를 채워도 배가 가벼워져 해수면 위로 더 높이 떴다.
멀리 좌현으로 보이는 끝없는 뻬루의 사막지대.
간혹 안데스산맥의 눈 녹은 물이 흐르는 작은 강 주변에는 어김없이 푸른 숲과 함께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인다.
일항사 당직 시간인 오후 4시쯤 본사와 대리점 전보가 있나 트래픽 리스트를 확인하고 선교로 올라갔다.
일항사와 전방을 주시하던 캡틴이 빈손으로 올라온 나에게 먼저 말을 붙였다.
"아직 다음 화물이 안 정해진 모양이지. 칠레에서 원목, 비료와 광석 등을 많이 수출하니 곧 화물이 수배될 걸세. 참, 일항사 큰딸이 코이카 봉사 단원으로 여기 나와 있다더니 연락됐소?"
일항사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전화 통화는 했는데 우리 배가 하루 만에 출항하는 데다 근무지에서 리마까지 버스로 스무 시간 넘게 걸려서 오기 힘들답니다."
"무척 아쉽겠구먼. 우리나라 정부가 이제 살만하니 코이카 해외봉사단을 만들어 무상으로 못 사는 나라를 도와주는 것은 아주 잘하는 거로 생각하네. 덕분에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돈 주고 못 살 값진 경험을 개도국에서 하고 말이오."
KOICA 자원봉사단원은 여러 못 사는 나라에 가서 기술과 의료, 교육 등 여러 분야의 자원봉사를 평균 2년 동안 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6.25 전쟁 이후 겪었던 빈곤을 극복하는데 세계 여러 나라가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해주던 것과 비슷하다.
국제협력단이라는 국가기관이 나라의 명예를 걸고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을 파견하는 것이므로 NGO 해외 봉사와는 조금 다르다.
NGO 해외 봉사는 짧으면 며칠, 길어봐야 몇 주 기간이고 보통은 참여비를 내는 데다 현지에서 단체로 활동하며 파견 전 교육과 파견 도중 지원이 허술한 편이다.
필리핀과 오세아니아의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파견지에서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현지어를 배워야 한다.
중남미에서는 그나마 익히기 쉬운 스페인어 공부를 뒷전으로 하고, 영어를 잘 모르는 학생들을 상대로 한국어 교육을 현지어가 아닌 영어로 진행하는 바람에 수강생들이 다 그만 두어 폐강된 경우도 있다.
국가기관이 보내는 봉사단원이다 보니 신변안전의 문제가 있기에 TV에서 보는 해외봉사활동처럼 건물 보수나 의자, 책상 만드는 일은 없다.
실제로 치위생사 분야로 파견을 나간 단원이 한국 대사관 근처 병원에 배치되어 대사관, KOICA와 KOTRA 직원들 스케일링만 줄곧 하다가 회의를 느껴 중도귀국한 사례가 있었다.
파견국의 인프라가 너무 나빠 컴퓨터 분야로 파견을 나간 단원은 학교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전원이 꺼진 컴퓨터를 앞에 놓고 2년 동안 자판 연습만 시키고 돌아온 경우도 있다.
사실 그 나라 사람들은 돈과 건강 문제 정도 말고는 우리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에는 가난한 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오히려 한국보다 행복지수가 훨씬 높은 나라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도움 받은 만큼 이제는 우리가 갚아야 하는 게 맞다.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시시피 강 제방을 무너뜨려 범람한 뉴올리언스 지역
어느덧 우리의 'HAPPY LATIN' 호는 리마 관문 까야오 항에 다다랐다.
항구를 바라보니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왼쪽 부두에 탱커 터미널이 있고 더 안쪽에 해군 회색 군함과 군사시설이 보인다.
우리가 접안할 일반 화물 부두는 오른쪽이다.
기름 파이프가 군사 시설을 통과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것이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미시시피강 따라 올라가 뉴올리언스에 곡물을 실으러 가서 상륙할 때 양쪽 둑을 보고 '이거 위험한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항해일지를 썼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후 강력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제방을 무너뜨리고 뉴올리언스 부근을 초토화해 지옥처럼 만든 적이 있다.
때로는 이방인의 직관적인 눈이 매일 일상을 겪는 이보다 객관적이고 도움이 될 수도 있다.
Cancao do mar(바다의 노래), Dulce Pontes
'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해일지 중 칠레 이끼께항과 모비딕 (0) | 2019.10.01 |
---|---|
페루의 세비체와 마추픽추 (0) | 2019.09.29 |
페루의 국민 영웅 맘보 박 (0) | 2019.09.27 |
잉카제국 멸망과 정복자 피사로 (0) | 2019.09.09 |
페루 피우라에서 유빈 누나와의 만남 (0) | 2019.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