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끼께 항
칠레 이끼께항과 모비딕
까야오항에서 상륙 나갔다 오니 하역이 끝나간다.
대리점 직원이 독일 본사에서 텔렉스로 보낸 용선 계약서를 갖고 왔다.
칠레 이끼께항에서 비료를 싣고 브라질 비토리아항으로 가란다.
칠레는 한때 초석 비료 최대 수출국이었다.
정어리 황금어장에서 배터지게 먹은 갈매기와 다른 새의 배설물 등이 침전되어 오랜 세월 만들어진 천연자원인 초석은 비료와 화약의 원료로 쓰였다.
당시 유럽은 늘어나는 인구로 식량난이 심각하였다.
초석은 비료로서의 가치가 커서 칠레 경제에 막대한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화약의 원료로서 초석의 가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연합군은 칠레의 초석이 적국인 독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상을 봉쇄하였다.
화약을 더 만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독일은 오랫동안 버텼다.
그 까닭은 초석 없이도 화약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독일 과학자는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질소를 합성하여 화약을 만들었다.
나중에 많은 나라에서 자체적으로 화약과 함께 비료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볼리비아, 페루 연합군과 칠레 간의 초석 쟁탈 전쟁이라고도 하는 남미 태평양 전쟁으로 페루는 이끼께항을 볼리비아는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목인 안토파가스타항을 칠레에 빼앗긴 지 백여 년이 지났지만, 볼리비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이 땅이 자기네 땅으로 남아 있다.
초석이 없었다면 아타카마 사막과 태평양 연안의 안토파가스타항은 여전히 볼리비아의 영토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현재하는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이지만 언젠가는 바다로 나갈 생각으로 티티카카호에 해군과 군함을 보유하고 있다.
칠레는 초석으로 인해 발발한 남미 태평양 전쟁 이후 볼리비아 사람들이 가장 미워하는 나라가 되었지만,아직 반도 파지 못한 초석과 구리, 리튬 광산 등을 갖게 되었다.
브라질은 대두 등 세계 최대 농산물 수출국 중 한 나라이다.
그런데 브라질에서 사용하는 비료의 75%를 수입해서 쓴다.
브라질에서 비료공장 하나 차릴 수만 있으면 노가 나겠다.
반나절 넘게 자동차와 중장비를 다 풀어주고 'HAPPY LATIN' 호는 한바다로 나왔다.
비료를 실으려고 더러워진 덱을 물청소하고 카 덱을 올려 선창 위에 고정했다.
이틀 정도 항해하면 이끼께 항에 도착한다.
날씨가 맑을 때 한바다는 짙은 푸른색으로 보인다.
이런 바다색을 네이비 컬러라고 한다.
해군을 상징한다고나 할까.
멀리 유영하는 돌고래 떼와 숨쉬러 나와 큰 물살을 일으키는 커다란 고래도 보인다.
고래가 뛰는 이유는 부레가 없는 포유동물이기에 숨을 쉬기 위해 올라오고, 동료들과 교신하고 기생충이나 따개비 등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란다.
항해 중에 큰 고래는 어쩌다 볼 수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알던 백경이라는 소설은 허먼 멜빌이 쓴 모비딕이고 미국 문학의 대서사시라 평가한다.
세계 곳곳을 여행했던 방랑자이자 작가였던 멜빌은 남태평양에서 작살잡이로 일하면서 식인종을 목격하고 선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모비딕을 썼다.
19세기 경 칠레 모카섬 인근에 난폭하기로 악명 높은 향유고래가 있었다.
일반 고래와는 다른 행동거지를 보였다는데 포경선을 보면 도망가지 않고 꼬리지느러미나 몸통 박치기로 배를 공격하여 침몰시키기도 했고 몸길이는 21m가 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오래전 보안사령부가 민간인 사찰을 위해 서울대학교 근처 신림동에서 운영했던 카페의 이름이 모비딕이었다.
장교는 카페의 지배인으로 사병은 웨이터로 근무하는 등 보안사 관계자들이 직접 운영하며 정보를 수집하였다.
하지만 언론의 추적으로 이 사실이 알려지며 국방부 장관과 보안사령관이 경질되고 보안사는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미국의 스타벅스는 모비딕에 나오는 커피를 좋아하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고래에서 철학을 보았으며, 고래기름과 향유를 생각하며 현존하는 최고의 글이 나왔는지 대단한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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