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다에서 컨테이너선과 조우한 요트
대서양에서 만난 대한의 딸
내리쬐는 태양 아래 코발트 빛 물살을 가르는 ‘HAPPY NINA’ 호는 서아프리카의 볼록 나온 Ivory coast 앞에 도착하여 공해상에 쿤타킨테의 후예를 내려주었다.
먼 옛날 아프리카 흑인들을 미국과 유럽으로 실어 나르던 노예해안 위에 코끼리 이빨을 실어 나르던 상아해안이라고 불리는 그 바다에서 뗏목은 튼튼하게 수리하고 선원들이 모아준 약간의 돈과 함께 먹을 것과 식수를 넉넉히 실어주었다.
그동안 정들었다고 양손을 흔들며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순박하게 생긴 그를 뒤로한 채 갈 길을 재촉하는 ‘HAPPY NINA’ 호.
멀리 노 젓는 어선 한 척이 뗏목으로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이제 우리 영역을 벗어난 쿤타킨테.
Buena suerte(행운을!)!
그를 내려주고 한바다로 나가니 큰 걱정 하나를 던 후련함에 가슴이 확 트이는 듯하다.
아름다운 Atlantic Ocean 위에 스크루 뒤로 긴 물 꼬리를 남기며 독일을 향해 앞으로 달려가는 화물선.
간간이 배 주위 상공을 선회하는 하얀 갈매기와 높이 나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스의 후예들.
그리고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기라도 하듯 검은 돌고래가 떼로 수면 위로 솟구친다.
육지 방향을 쳐다보며 통신실 옆 데크에서 담배 연기를 흩날리고 있는 내 어깨를 누가 툭 친다.
돌아보니 1항사다.
“어이, 국장님. 만 날 여기서 뭐해요? 통신실에도 없고 방에도 없어서 찾아다녔구먼.”
“아, 그래요?”
잔잔한 대서양의 상큼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저 앞에 하얀 점 같은 것이 햇볕에 반사되어 점점 가까워진다.
“어이, 국장님. 저거 요트 아니요? 한 바다까지 나온 모양인데.”
“어어~, 정말 손을 흔드는 거 같네요. 브리지 한번 올라가 봅시다.”
1항사의 말에 내가 대답하며 같이 선교로 올라가 망원경으로 요트를 본다.
당직 이등 항해사도 눈여겨보더니 ‘여자도 있는데요. 동양사람 같아요.’라고 말한다.
내가 선박 무선전화 국제 공용 주파수인 채널 16번으로 호출해본다.
“YACHT EURAS! YACH EURAS! THIS IS MOTOR VESSEL HAPPY NINA! HAPPY NINA! DO YOU READ ME, OVER?”
잠시 후 VHF에서 어눌한 여자 음성이 들려온다.
“여기 요트 오이라스호인데 거기 혹시 한국 선원 아니세요?”
“네, 아니 웬 한국 여자분이 한 바다까지 요트로 나왔대요?”
“아이, 반가워라. 저희는 독일에서 세계 일주하려고 요트 타고 파나마로 가고 있어요. 태평양 건너 부산 거쳐서 인도양으로 갈 거예요. 한국 선원들 만나긴 처음이에요.”
울먹이며 띄엄띄엄 말하는 한국의 딸!
“와우! 독일이라고라? 제 애인도 독일에 있어요. 참 반갑습니다. 저희 배 쪽으로 좀 가까이 오시죠.”
잠시 후 ‘HAPPY NINA’ 호와 조우한 아담하고 예쁜 요트.
수염이 덥수룩하고 건장한 서양 사람이 손을 흔들며 키를 잡고 있고, 우리 대한의 딸은 너무 반가워서 눈물, 콧물을 닦을 생각도 안 하고 펄쩍펄쩍 뛰면서 양손을 흔들어댄다.
어느새 브리지로 올라온 캡틴이 윙 브리지에서 마이크로 묻는다.
“반갑습니다, 대단한 여자분! 도와 드릴 게 있나요?”
아니라고 손을 흔들며 웃는지 우는지 말도 못 하고 좋아하는 대한의 딸.
그리고 작열하는 태양 빛 아래 번쩍이는 안 선장님의 금빛 견장.
나는 다른 선원들 사이를 뚫고 요트에 가까이 가서 말을 걸었다.
“정말, 대단하세요. 두 분만 타고 계세요?”
“네, 훌쩌~억. 한국말을 몇 년 만에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 독일 남편이에요.”
다시 한번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독일인.
“뭐, 필요하신 것은 없어요?”
내가 묻자,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젖는 한국의 딸.
“그럼 라면하고 김치, 고추장 그리고 한국 부식 좀 내려드릴게요.”
괜찮다고 손을 젖다가 조리장이 가져온 한국 부식에 감격해 펑펑 우는 그녀.
“저희는 오래 지체할 수 없거든요. 무사히 세계 일주하시고 TV 방송국 독일 특파원으로 나와 있는 나미라는 아가씨가 있어요. 나중에 연락되면 인터뷰 한 번 하세요.”
뱃고동을 길게 울리며 ‘HAPPY NINA’ 호는 아쉬운 작별을 하고 오이라스호를 뒤로 한 채 제 코스로 선수를 돌린다.
큰 배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오이라스호를 흔들어 대고 금방 침몰시킬 듯한 파도 위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계속 미친 듯이 손을 흔드는 대한의 딸!
나중에 요트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일주를 성공리에 마친 대한의 딸 이야기를 들어보니 간호사로 취업해 독일에 간 그녀는 독일인 남편과 함께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기 위해 독일에서 출발했다가 대서양에서 우리를 만난 것이다.
작은 요트의 돛 하나에 몸을 맡긴 채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들의 도전정신은 어느 탐험가 못지않다.
일반인들은 정신이 나가기 전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한 파도, 예고 없는 태풍, 상어 떼의 위협, 무풍지대에 갇혀 한 달이 넘도록 오도 가도 못하는 목숨 내놓고 초인적인 생활을 이겨낸 그들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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