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항해일지 중 쿤타킨테의 후손들

부에노(조운엽) 2019. 7. 30. 05:32

 



Ivory coast(상아해안)의 아비잔항에서 하역하는 쿤타킨테의 후손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대

 

 

어느 일요일, 햇살이 따사롭고 미풍이 살랑살랑 불며 대체로 잔잔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희망봉 앞을 지나고 있는 ‘HAPPY NINA’ 호의 선원들은 당직자를 제외하고 나른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선주로부터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항을 향해 전속력으로 가라는 통보를 받고 닻을 올리고 아프리카 희망봉 앞을 돌고 있었다.

수에즈 운하 통행료를 주고 가는 것보다 화물 스케줄 상 비싼 기름을 더 쓰더라도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경제적인 모양이지.

미리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어도 톤당 지불하는 항만세를 비롯해 각종 경비가 지출된다.

 

통신실 옆 갑판의 라이프 보트 그늘에 의자를 놓고 앉아 전혜린의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에 머리가 날려 귀를 간지럽게 했다.

아스라이 희망봉이 우람하게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에도 만족한다. 맛있는 음식, 진한 커피, 향기로운 포도주, 생각해보면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것들이 너무 많다. 따스한 햇볕 아래 길을 걷는 것, 살아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또 하루 무사히 잘 살았다고 하고 잠들기 전에 생각할 때 몹시 감사한 마음이 우러난다. 그리고 나는 잔잔한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말했던 혜린이 누나는 31살의 애늙은이로 왜 세코날 40알 묵고 수유동 숲길에서 객사하여 우리 곁을 떠나 내비도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냐고.

우린 그녀가 당당하게 쓴 글처럼 이렇게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E 좋은 세상에서 모든 것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고, 살아서 술 한잔이 죽어 술 석 잔 보다 좋다는 말도 있는데 말이지.

 

항해 중에 남희에게 몇 번 전화해서 겨우 연결되어 목소리를 들었는데 졸지에 1호봉 진급을 하게 됐다고 아주 기뻐했다.

본에서 뉴스 촬영 중 갑자기 카메라가 작동이 안 되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남희가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나.

이상 없이 잘 쓰던 카메라가 작동이 안 되어 일단 전원 부분을 뜯어 보니 선이 하나 떨어져 있어서 얼른 장비 차에 올라가서 납땜해서 동작시켰단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지사장님이 그 자리에서 자기 재량으로 1호봉 진급을 시켜주겠다고 했다나.

그래 봤자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독일 지사에서 자기가 인정받는 계기가 되어 아주 기쁘다고.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문과 출신들이야 다 기계치들이니까 여자가 이런 거 수리하는 것이 무척 신기하게 보이는 모양이지 하면서 재잘댔다.

나미가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그 전에 그렇게 씩씩하던 아가씨가 요즘 왜 이렇게 아주 상냥해지고 말이 많아진 거지?

‘짜샤’ 소리 들은 지도 꽤 된 거 같다.

 

아까부터 수평선 멀리 점 같은 것이 하나 보이는 것 같더니 손을 마구 흔드는 것 같았다.

궁금해서 슬리퍼를 구두로 갈아 신고 브리지로 올라갔다.

당직 2항사와 망원경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캡틴이 보였다.

 

“어, 국장 어서 오게.”

“네, 안 쉬시고 올라와 계셨네요. 저거 뭡니까?”

내가 묻자 2항사가 먼저 대답했다.

“아, 웬 연탄이 하나 보이는데요.”

“어허! 연탄이라니. 2항사 그리 안 봤는데...”

캡틴의 힐난조의 낮은 말에 2항사가 움찔했다.

“일단 가까이 가보세. 어선은 아니고 밀항자일 가능성이 큰데...”

 

가까이 가서 말을 건네보니 더반항에서 밀항을 하려고 유럽으로 가는 화물선에 숨어 탔다가 선원들에게 발각되어 바다에 버려지게 되었단다.

패스포트를 보여주며 사정을 하는 흑인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캡틴이 제안했다.

일단 상아해안까지 태워줄 테니 배에서 먹고 자며 주방에서 일하고 그다음에는 알아서 하라고.

 

밀항자를 태우고 유럽 항에 들어가서 적발되면 벌금에 소요경비며 귀국경비까지 전부 선주가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고 바쁜 스케줄 때문에 배를 돌려 출항한 곳으로 다시 갈 수도 없고 해서 많은 배의 책임자들은 밀항자를 그냥 바다에 던져 버린다.

이 친구는 그래도 뗏목에 먹을 거라도 챙겨서 내려주었으니 다행인 편이다.

거기다가 캡틴의 배려로 상아해안까지 가면 삼 분의 이는 간 거 아닌가?

쿤타킨테 같이 양손을 들고 기뻐 날뛰는 그니를 당직 타수가 목욕하게 데리고 갔다.

 

“안 선장님, 잘하셨습니다.”

“우야노. 그냥 놔두고 가면 평생 잊지 못 할 낀데... 국장은 이제 며칠 안 남았네, 애인 만날 날이.”

캡틴이 빙긋이 웃으며 묻는데 나는 가슴이 뛰고 할 말이 없었다.

 

“내 아버님이 일본에서 음악을 했는데 유진 올만디인가 미국에 같이 가자는 것을 못 가서 평생 후회하시다가 돌아가셨다네.”

“네...”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아. 전에 Voice of America 한국어 방송 들으니까 1항사와 자네들 월급이 대한민국 월급쟁이 중 일 퍼센트 안에 들던데.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판자촌 출신에 마도로스라고 기죽지 말고 잘해보소. 그동안 지켜보니까 그만한 아가씨도 1% 안에 드는 걸세.”

“네...” 

나는 캡틴에게 수고하시라는 인사를 하고 내려오면서 조리장에게 김치 좀 삭혀놓으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독일이 가까워질수록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문득문득 솟아오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 초조 그리고 울렁임... 

나미가 ‘남에게 보여서 부끄럽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라면 마땅히 대낮에도 부끄러울 리가 없다.’고 했지.

 

1항사는 빤쓰 색깔이 궁금하다 하고 남희는 김치찌개 같은 거나 관심 있는 것 같고, 아~ 난 뭐에 관심이 많아 이렇게 가슴이 설레는가?


 

 



 

 

 

 

saci 근데... 저런 밀항자들은 주로 어디서 오는 것이고 어디를 가기 위한 것인가요? "남 에게 보여서 부끄럽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라면 마땅히 대낮에도 부끄러울리 없다."......겠지요..   05-03

saci "문득문득 솟아오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 사랑 맞네...... 김치를 삭혀서 독일까지 들고 가려고요? 기회는 많지 않지요. 하지만 막상 기회가 올 때 주춤주춤 물러서는 사람도 있지요... 두려워서... 부에노님은 어땠을까?   05-03

부에노 기본 틀은 아프리카 자기 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로... 배 곪지 않으려고... 주로 유럽이나 북미 가는 배에 밀항을 많이 하죠. 배에서 일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고... 옛날 우리가 일본으로 밀항하듯이... saci 교주님의 말씀에 더 이상 영감은 할 말이...     05-03

David 나미씨도 대단하네. 부에노님, 앞으로 못질이나 가전제품 고장난 거 문제가 없겠구만요. ^^; 꽉잡으세요! 예? 전 백령도 여자 분을 한 번 봤는데, 남자보다 못질을 얼마나 잘 하는지... 옥상에까지 올라가 설치작업을 하고 내려오더라구요!   05-03

별지면-내리는비 우연히 라틴방에 들어왔다 saci 님의 팬이 되어 짬날 때마다 왔다 갔다 하는데 또 멋진님의 글을 만나네요... 남자 여자라는 구분은 이진법적인 분류에 지나지 않구요. 사실은 남자도 그 남자 안에 여자가 있고 여자도 그 여자 안에 남자가 있고...   05-03

별지면-내리는비 부에노님 반갑구요. 앞으로 향해 일지 즐겨찾기 할게요.   05-03

saci David형... 그럼 나도 대단한 거네... 내가 왠만한 가전제품은 내 손으로 고치거든요. 뭐 부에노님 말대로 보통 고장은 아이씨 회로에 문제 있으니까... 그것만 납땜해주면 주로 되거든요. 물론 모터가 망가진 것은 나도 손 못 대지만......   05-03

부에노 아이씨(IC)회로가 아니고 전원회로입니다. saci 박사님. 그래도 그만하시길 대단하십니다. 전공도 아닌 분이... ^^ 별지면-내리는 비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님, 님 말씀마따나 저 여잔디요... ㅋ 좋은 하루... ^^     05-03

David 샥시님! 대단혀요. 집에 비디오가 두 개씩이나 고장나서 텔리비 옆에 모셔 놓고 있는 디, 그쪽으로 보내야겠다. 지금 이메일로 보내겠습니다. 공짜로 해 주실꺼죠. ^^; 설마 형의 부탁을 거절하진 않겠찌~~~~~~~~~~~~~~~~~~~~~여. ^^*   05-03

saci 근데... 형... 보통 비디오 플레이어는 헤드가 문제 거든요... 열심히 닦아줘도 문제가 있다면 헤드를 갈아줘야하는데... 그 값이 하나 사는 값이랑 거의 비슷해서... 나도 버린 비디오 플레이어가 세 개가 되는데... 하하하...   05-03

유빈 기계치는 내가... saci 님 얘기 듣다보니 음매 기 죽어. 나는 아예 고치려 생각을 안 하는데 용감히 그걸 하다니 역시 우리의 박사님이다. ㅎㅎㅎ   05-03

saci 하하하... 그게요... 맡기면 하도 오래 걸리고... 일 주일, 찾으러가면... 또 일주일... 그러다보니...거기 앉아서 시다해주면서... 음료수 사다주며 기다리며 눈썰미로 배웠지요... 그리고 가만히 보니까... 1$도 안 들것을 맡기고 나면... 50$은 나오더라고... 하하하...   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