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항해일지 중 젊은 우리들의 이야기

부에노(조운엽) 2019. 7. 28. 05:56

  


 

상선을 호위하는 대한민국 해군 함정과 헬기

 


해적 소굴 말래카 해협

 

 

중국 칭왕따오 항에서 독일로 갈 사료용 콩가루를 한배 가득 선적한 ‘HAPPY NINA’ 호는 싱가포르항에서 급유를 받기 위하여 밤낮없이 항해하고 있었다. 

싱가포르항은 중계 무역항으로 수출입 화물 외에도 면세 기름, 주 부식, 선용품 등을 선적하고 선원 교대를 하기 위해 많은 배가 기항한다.  

벙커링과 주 부식을 선적하는 짧은 시간 동안 선원들은 2교대로 통선을 타고 상륙을 나갔다. 

일단 어디든지 배가 기항하면 땅도 밟아보고 육지 공기도 마시면서 관광과 쇼핑을 하기 위해 나간다.

 

싱가포르는 공원 속에 도시를 건설한 것같이 아름답다. 

적도에서 137Km밖에 안 떨어져 엄청 더운 나라지만 많은 숲과 가끔 내리는 소나기 덕분에 체감 온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쇼핑몰이나 식당에 들어가면 에어컨이 시원하게 틀어져 있어 언제 가도 쾌적하고 좋은 느낌이다.

 

서울시만한 나라에 인구 삼사백만 명이 사는데 그중 반 이상이 화교란다. 

이 나라는 거지도 세금을 내고 영업(?)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길거리에 담배꽁초, 껌, 침 등을 뱉어도 적발되면 만만치 않은 벌금을 내야 한다. 

도시의 쾌적한 환경을 위하여 버스나 전철 등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도록 유도하고 상대적으로 자동차에 각종 규제와 높은 세금이 매겨져 찻값이 엄청 비싸다고 한다.

 

나는 일부 선원들이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선원수첩에 계약 연장 공인을 받기 위해 대사관에서 영사 업무를 보고 난 뒤, 쇼핑몰과 야시장이 있는 People's Park로 향했다. 

이곳 택시는 대부분 Benz이고 운전석이 일본과 같이 오른쪽에 있다.

 

남희에게 줄 예쁜 액세서리를 하나 사고 화교가 운영하는 Sea Food Restaurant에서 맛있는 블랙 페퍼 크랩과 해물 볶음밥에 맥주 한잔하다가 시간이 남아 센토사 파크에 놀러 갔다.

나비공원과 곤충 왕궁을 둘러보다가 통선 시간에 맞추어 통선장으로 갔다.


적도의 후덥지근한 바닷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주었다.

통선장에는 우리 선원들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앞바다를 가득 채운 선박들로 돌아가려는 선원들로 붐비고 있었다. 

간혹 하룻밤 풋사랑을 찾아나온 듯한 화사한 아가씨들도 보이고...

 

뱃고동을 길게 울리며 연료와 선용품을 선적하고 출항하긴 했지만, 아직 화물을 풀어 줄 항구가 확정되지 않아 선주로부터 경제 속력으로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콩가루를 살 유럽 바이어들과 밀고 당기는 중인 모양이다.

싱가포르를 빠져나와 말래카 해협을 통과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이 지역에 자주 출몰하는 해적들 때문에 전속력으로 항해하면서 비상 근무 체제로 들어갔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선미에 소방 호스를 설치했다.

해적들이 쫓아오면 강력한 물대포로 퇴치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배보다 빠른 스피드 보트를 타고 총을 쏘며 추격해 오면 별 재간이 없겠지만.

 

말래카 해협에서 해적들에게 털린 배는 밝혀진 것만 해도 수없이 많다. 

우리 정부가 발주한 삼천여 톤의 알루미늄 괴를 인도네시아에서 싣고 인천으로 가던 ‘텐유’ 호가 출항 3시간 만에 이 해역에서 실종되었는데 나흘 뒤 미얀마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때 선명이 ‘빅토리아’ 호로 둔갑하여 있었고 화물은 이미 다 팔아먹고 필리핀을 거쳐 말레이시아에서 야자유 삼천여 톤을 싣고 선명을 다시 ‘산에이 1’ 호로 바꾸어 중국 상하이항에 입항했다가 장물 취득 혐의로 억류되었는데 이 야자유도 해적질로 탈취한 화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와 함께 삼천 톤이 넘는 알루미늄 괴, 그리고 한국인 선장과 기관장을 포함한 14명의 선원이 순식간에 사라진 말래카 해협.

이곳은 밀수를 비롯해 해상 강도, 선박 탈취 등 사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며 해적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무장한 채로 항해 중인 선박에 기어 올라와 선원들을 위협하고 배와 화물을 강탈한다. 

최근에는 쾌속정과 중무장을 하고 심지어 군인으로 위장하여 해적질한다고 했다

며칠 전에도 한국 국적선 씨케이 블루벨호가 브라질에서 옥수수 칠만여 톤을 싣고 싱가포르에서 연료 보급 후 인천으로 항해하던 중, 해적 7명이 스피드보트를 이용해 배에 올라타 선원들을 폭행하고 총과 칼로 위협해 현금과 휴대전화기 등을 빼앗아 30분 만에 달아났다.


말래카 해협은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석유의 주 수송로이고 수출입 물동량의 거의 절반이 통과하는 생명선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한 말래카 해협의 연안국들이 합동으로 순찰과 단속을 강화하고 있어 해적 사건의 발생 건수는 감소세라고 하는데 지금은 주무대가 아프리카의 소말리아로 바뀌었다.


‘HAPPY NINA’ 호는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말래카 해협을 통과하여 인도양으로 들어섰다.

잔잔한 인도양의 푸른 바다를 보며 싱가포르에서 남희와 전화 통화한 것이 생각났다.

내가 해준 김치찌개가 그렇게 생각난다고?


과 친구들과 휴일에 도봉산에 올라갔을 때였다.

젊은 남희는 여기서도 산을 얼마나 잘 타던지 거의 앞장서다시피 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뒤쫓아 갔는데 희한하게 남희 청바지 엉덩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라인이 안 보여서 저 가시나가 속에 아무것도 안 입었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정상에 올라갔다가 인근 계곡에서 밥을 해 먹자 해서 모두 남희 얼굴을 쳐다보자 그녀가 한 말이 야무졌다.

“야! 왜 날 쳐다보냐? 여기까지 와서 내가 밥할 군번이냐? 야. 짜샤들아! 대한제국 건국 이래로 엠티 와서 여자가 밥하는 거 봤냐? 난 땀 좀 식힐 테니 내비도. 은여비 니가 식사 당번해라. 참치 캔 넣고 김치찌개 맛있게 해 봐.”

“뭐라고라?”

눈을 크게 뜨고 대꾸하자 앙쥔 주먹으로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예쁜 언니가 하라면 해, 짜샤!’ 해서 할 수 없이 식사 당번을 했었지.


성냥갑보다 작게 보이는 도시의 건물과 점점이 보이는 차를 내려다보며 세상사 높은 곳에서 보니 다 별거 아닌데 E 좋은 세상에 뭔 근심 걱정들이 그리 많은지...

그렇게 밥을 먹을 때 남희가 한 말.

“야, 짜샤! 주긴다 주겨. 디따 맛있는데. 언니 소주 한잔 더 받아라!”

“네, 언니. 감사!”

돌도 소화할 거 같고 날아가는 새만 봐도 웃음보가 터지던 젊은 우리들이 아름다운 산속에서 동기들과 땀 흘린 후 먹는 밥맛이란...


전화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그 김치찌개와 파전이 먹고 싶다고?

외국 오래 살면 아무래도 한국 음식이 생각나기 마련이지.

한국에선 그 흔한 파전, 콩나물조차도 그립고, 신라면 끓여 남은 국물에 찬밥 말아먹고 싶어 목이 멘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래~ 내가 한 찌개 하지.

독일에서 만나면 내 사랑스러운 동기 나미를 위해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여줄게...



 

 

 

 

saci 당연하지... MT 가서 여자가 밥하나...... 오늘은 안 올라오겠거니... 하도 라틴방이 조용해서... 했는데...... 고마워요... 근데 돼지고기가 산에 있나? 참치 깡통 아니었나요? 물론 김치찌게는 돼지고기지만... 진짜 우루과이를 가야지... 아~ 김치찌게, 파전...   05-01

saci 싱가폴의 블랙페퍼크랩... 진짜 맛있는데... 그것도 먹고 싶고... 싱가폴과 말레이시아는 참으로 사사건건 말이 많죠... 저 석유 수송을 싱가폴에서 하지 않고 말레이에서 정유관을 통해서 어찌어찌 한다고 개발중이라고 읽은 것 같은 데...... 아마 그렇게 된다면   05-01

saci 한국과 말레이 관계에 커다란 변혁이 일어나겠죠. 이미 지난 정부 한국에서 상당한 투자를 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프로젝트가 공중 분해 되었다가... 전 수상이 한국에 볼 낮이 없어서... 다시 새 수상을 부추켜서 조금 다른 모양새의 프로젝트가   05-01

saci 나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면 그 악명 높은 말라카 해협의 위험에서도 벗어나고... 싱가폴을 안 거치게 되는 새로운 해양시대가 열리려나... 부에노님 덕분에 별 생각을 다 해봅니다... 하하하... 늘 그렇듯이 난 이미 부자 나라보다는 덜 부자 나라 편이니까......   05-01

saci 아... 그 한국영화 '태풍'인가에서 말라카 해협이 잠깐 나왔었죠? 맞나? 그 잘 생긴 배우가 북한에서 탈출해서 해적이 되어 있던데...   05-01

쌈바소녀 그 옛날 학교 후문 후줄근한 식당에서 먹던 그 참치 찌개가 참 그리운 밤입니다......   05-01

David 윤형주 노래 참 오랜만에 듣네요. 예전에 어제 내린 비라는 그의 노래를 혼자서 많이 흥얼거렸는데, 그 영화도 몇 번 봤구요. 부에노님 글과 노래를 들으면 자꾸 학생 때 생각이 떠오르네요. ^^ 글 잘 봤습니다.   05-01

부에노 saci 님, David 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쌈바소녀 님. 반갑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독일에서 뵙겠네요. ㅋ ^^     05-01

부에노 싱가포르의 블랙페퍼 크랩이 맛있을까, 히파티아와 같이 알렉산드리아 해변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빅 랍스터가 더 맛있을까요? 답 기둘립니다. ㅋ 푼수 영감 ^^     05-01

바다 반가워요~~, 부에노님 글 있길래 다른 글들은 다 건너띄고 클릭했어요. ^^  낯선 닉 글은 안 읽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요.   05-01

이반코 부에노님의 항해일지는 늘 즐겁습니다   05-01

Zapata 참으로 수도 없이 지나다녔던 말라카 해협을 이렇게 글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한국의 군함이 한국 유조선을 호위를 할 정도가 되었군요, 미국 상선에는 무장이 잘 되어 있어서 해적이 아예 건들지를 못하는데, 소련 배도 그렇고, 갸들은 기관단총으로   05-01

Zapata 무장을 해서 위험 수역 지날 때에는 선원 전부가 전투원이 됩니다, 얼빵한 해적 올라왔다가 걸레가 되었다 하더군요. 예전 이승만 시절에는 상선에도 엠원이 있었는데, 이승만이가 미국 똘만이가 되어서 그건 잘 따라했던건데, 박정희가 배에 총을 없앴지요.   05-01

saci 이승만이가 미국 똘만이가...... 하하하, 이 단어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그 넘의 똘만이 밑의 똘만이도 너무 많아서... 부에노님... 그거야 크랩하고 랍스터를 같이 좋아하는 사람한테 물어야 공정할 텐데... 난 랍스터 안 좋아하거든요... 당연 크랩...   05-01

momo0506 이 노래의 원곡은 피지 원주민들이 부르는 이별가라더군요. (ISA LEI) 센토사로 가는 케이블카에서 항구의 수많은 배들을 내려다보던 기억이... 싱가폴은 뭐랄까, 너무 인공적이라 정 붙일 곳이 별로 없더군요,   05-01

부에노 바다 님. 저도 상큼한 님의 덧글이 항상 반가워요. ^^ 이반코 님, 꾸벅! Zapata 대장님, 넙쭈우~욱! momo0506 님, 항상 감사합니다. saci 언니한테 큰 맘 먹고 빅 랍스터 사준다고 하면 돈 굳겠네. 맞나...? 돈 더 드는 건 아니겠지... ㅋ      05-01

RailArt박우물 원곡이 이렇게 단순하게 음악처리가 되었던가요??? 모모님이 말한대로 원곡이 따로 있는 번안곡이지요. 몇 년 전부터 7080 붐이 조성되어 콘서트에라도 가보면 예전 음색과 음역을 구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근데도 관객들은 예전 키와 음색을 요구하니...   05-02

칠레 신면우 부에노님 칠레 안드레스 영감입니다. 부에노씨 보다는 나이가 많은 줄 알고 있습니다. 40년생으로 동포 영감 중에는 내가 컴을 제일 잘 한답니다.ㅎㅎ 부에노씨 좋은 글과 음악 잘 보고 있습니다. 말답게 정다운 닉네임이네요. 위 사진을 보니 찡하네요. 왜냐하면   05-02

칠레 신면우 해사 순양함대가 최신 함대를 이끌고 칠레에 두 번 왔지요. 12년 전 첫 번 왔을 때는 너무 나 반가워 얼싸 안았지요. 자랑스럽더군요. 이럭저럭 고향 떠나온지 20년. 백발만 늘어가네요. 부에노씨 산티아고 꼭 한 번 놀러오세요. 큰 집에 두 내외만 삽니다. 골프도   05-02

칠레 신면우 한 번 나가고... 좋은 이방에 요즘 좀 시끄럽지만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정도로... 진정한 동포애와 타국에서의 우정은 변치가 않지요. 칠레 동포 사회는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내가 있으니 한 번 오세요. - chil2006@hanmail.net-   05-02

부에노 우물 님, 방가요. 신 선생님, 안녕하세요? 정말 그 연세에 컴 잘 하시네요. 칠레뿐 아니라 아마 우리나라 영감님들 중 제일 잘 하시겠네요. 저도 작년에 배웠어요. 글도 웬만한 대학 나온 젊은이보다 낫습니다. 사실 저 큰 조카뻘입니다. 영감 행세해서 죄송     05-02

부에노 합니다. 기회가 되면 어르신 만나러 꼭 갈게요. 처음에 발빠라이소로 이민가려고 준비하다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좀 더 자리가 잡히면 두루두루 돌아다니고 싶은 게 제 꿈이거든요. 칠레에 대한 그리움을 이해하시겠죠? 감사합니다. ^^     05-02

 

라인 없는 팬티도 있다는 것 모르셨구나~~ ㅎㅎ 입어도 표시 안 나는 것 있지롱. 여자들의 속임수를 다 알려고 하믄 안돼요. 떼찌! 07.05.01 16:51
 
애고... 당했당! 역시 Old woman is wise women! 감사합니다. ^^ 07.05.01 22:30
 
ㅍㅍ..... 이런 걸 가르쳐 주는 것은 나이밖에는 없다고 하니 이제 술집에 치부책(酒冊)으로 떠나가야 할 신세인갑네요. ^^ 그러나 씩씩하게 "니들이 알어? 게맛을" ㅎㅎ (탈랜트 신구 버전) 07.05.02 07:54
 
게 맛있겠당... ^^ 07.05.03 10:26
 

푸하하하 고소하다, 영감. 고수한테 한 대 맞았다. 07.05.02 22:23
 
가재는 게 편이라는데... 유빈 누나, 누구 편이유? 나 동숭동에서 열심히 신문 돌렸잖아... 누구 편이냐구~~~ ^^ 07.05.03 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