뻬루의 한 바닷가
전설은 사라지지 않았다
C 형은 해양계통 학교나 해군 출신이 아니면서 법학을 전공한 후에 당시 한국에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 배를 타면 잘 먹고 돈도 많이 번다하여 선박 통신사 양성 기관을 거쳐 상선을 탄 특이한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일 년 배를 타면 한 달간 유급 휴가를 받았다.
그렇게 파도와 고독과 싸워가며 긴 세월을 뒤로하고 나이가 들어 은퇴하였다.
일 년 만에 만났던 가족들은 신혼이요, 화목한 가정이었는데 나이 들어 집에 틀어박혀 있으니 차츰 가족들의 눈치가 느껴졌다고 했다.
부인은 아이들이 자꾸 커 가는데 C 형이 벌어오지는 않고 쓰기만 한다고 신경질 섞인 타박을 주고, 다 큰 자녀들도 해상생활에 잔뼈가 굵은 아빠와 대화가 통하지 않아 말하면 잘 듣지도 않고 무시하기를 밥 먹듯이 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육상에서 뭔 일을 해보려고 했지만, 평생을 바다에서 산 사람이 젊고 똑똑한 젊은이들과 경쟁하여 돈 벌겠다고 투자하는 것은 그냥 갖다 바치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하는 일 없이 탑골 공원에 출근하여 나이 드신 할아버지들과 시간 보내다가 그것도 체질에 맞지 않아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였다고 한다.
은퇴하여 귀국한 자기 집은 돈 버는 기계 역할이 끝나니 안식처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다 놓아두고 홀연히 옷 가방 하나 메고 배 탈 때 친구들이 있는 여러 나라 중에 남미를 향해 떠났다고 했다.
아르헨티나에 도착해 옛날 배 탈 때 알던 화주나 선박 대리점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지내면서 브라질 등 여러 나라를 거쳐 뻬루의 작은 항구에 도착해서 지내다가 가지고 있던 돈도 떨어져 가고 해서 어디 한적한 어촌에 가서 고기나 잡아먹고 살다가 삶을 마칠 생각을 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 들어간 곳에 혼자 살면서 고기나 어패류를 잡아서 먹기도 하고 쌀로 바꿔 먹었다고 했다.
사실 남미 시골에서 허름한 방 하나 얻어 하루 두세 끼 때우는 거야 몇 푼 들어가나.
그렇게 신간 편하게 지내다가 그곳 어민들이 상어를 잡아 이빨만 잘라내고 몸통을 버리는 것을 보고 지느러미를 모아 말려서 홍콩에 사는 친구에게 팔아보라고 보냈단다.
다들 알다시피 중국 요리에서 상어 지느러미로 만든 스프인 샥스핀이 고급 요리로 알아주지 않는가.
좋은 가격에 얼마든지 팔 수 있으니 많이만 보내라는 답을 받은 C 형은 상어를 잡을 고리와 체인 그리고 튼튼한 밧줄을 사서 상어 낚시를 만들어 현지 어민들을 동원하여 아주 적은 수고비만 주고 상어를 잡아 그들이 잘라서 팔 이빨은 기분 좋게 다 주고 지느러미만 잘라 말려서 홍콩에 수출하여 몇 년 동안 엄청 벌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태평양 바다에 상어가 얼마나 많은가.
그때 수출을 하면서 알게 된 통관사 여직원과 마음이 맞아 같이 살게 된 C 형은 사실상 부인이 된 현지인 아가씨와 상어 지느러미를 자르고 말리고 담는 작업을 같이 하면서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았다고 했다.
삶을 포기하다시피 고국을 떠났던 그에게 하루하루 즐겁게 살면 됐지 그까짓 돈이 무슨 큰 의미가 있었을까?
돈이 남아돌자 어렵게 살던 이웃집 꼬마를 한 명씩 데려다 먹이고 학비도 보태주면서 여러 명을 친자식처럼 키웠다고 했다.
세월이 지나 상어 지느러미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조업하게 되어 그 일에 손을 떼고 지금은 그때 모아놓은 돈으로 남의 아이들 공부를 시키며 유유자적하게 살아왔는데 그중 몇 아이는 고등학생 때 공부를 잘해 미국 장학생으로 유학을 간 아이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서 직접 담가 먹던 김치 맛에 길든 아이들이 장성해서도 양아버지의 김치 맛을 보기 위해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부인도 자기 나라 아이들을 돕는 고마운 남편에게 불평 한마디 없이 잘 살림을 꾸려나가다가도 나이 고하간에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라고 어쩌다가 화가 나면 평상시 ‘뚜(너)’로 친근하게 말하다가도 ‘우스뎃(당신)’이라고 정색을 하고 말할 땐 되게 귀엽다나.
배를 탈 땐 돈을 많이 벌었어도 아이들 등록금 한 번 직접 줘 본 적이 없었는데 남의 나라에 살면서 남의 애들 생활비며 학비를 챙겨주는 자기 팔자도 ‘웃기는 짬뽕’이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 보람도 있고 행복하다’며 말을 마쳤다.
술잔을 든 손을 떨면서 담담히 말을 끝낸 C 형 이야기를 들으며 이것을 글로 남겨도 될까 고심하다가 단숨에 써내려갔다.
우리 마도로스 출신들은 육상에서 만나면 금방 친해지게 된다.
그리고 말을 다 하지 않아도 그 말 속에 담긴 기쁨과 아픔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가 있다.
이 이야기를 알려주고 C 형과 만나게 도와준 세계엔n 라틴방 친구 hanky 님과 카페 회원 다담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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