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한숨 외로움에 파도만 출렁인다

 

 

리버풀 항구 전경

 

 

긴 한숨 외로움에 파도만 출렁인다

 

 

“짠!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편~지가 왔어요~.

방송을 들으신 분은 통신실로 오삼! 이상, 선장 명 국장!”

 

콜롬비아의 아름다운 까르따헤나 항에서 선적한 원유를 하역해주러 대서양을 쉬지 않고 건너서, 짙은 안개와 매연 속의 영국 리버풀 항에 도착한 유조선 ‘NAMMI SPIRIT' 호는 입항 수속을 마친 후 대리점으로부터 본사 서류와 함께 선원들 편지를 한 다발 받았다.

 

방송 끝나자마자 통신실이 시장 터 같았다.

“우와! 울 마눌님이 편지를 세 통이나 보냈네. 야가 약 묵었나? 크크크.”

“하이고, 내 새끼가 벌써 이렇게 컸다냐? 사진 봉께 섰네! 섰어!”

“흐미야, 우리 앤이 디게 이뻐졌네! 역시 한국 물이 좋긴 좋은 모양이네여.”  

늙으나 젊으나 팔도 사나이들이 모두들 싱글벙글하며 어쩔 줄 모르며 편지를 보다가 사진을 봤다가 감정을 억제 못하고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덩치가 남산만한 3타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한쪽 눈에 아직도 파란 멍이 가시지 않은 채로 황소만한 눈을 끔벅이며 들어섰다.

갑자기 사랑방, 통신실이 더 좁아진 느낌이었다.  

“국장님, 제 편지는 없어라?”

“어디 봅시다, 아이고~ 네 통이나 왔네요. 여기 있어요.”  

갑자기 입이 하품하는 소보다 더 커졌다.

 

시끄럽던 통신실이 조용해지자 한 통의 편지가 남아 뜯어봤다.

 

야, 기뻐해라.

나 독일로 발령 났다.

우리끼리 이야긴데 우린 통신 영어밖에 못 하잖아.

그래서 짬짬이 회화 공부하고 고등학교 때 배웠던 독일어 공부를 다시 했는데 팀장님이 날 눈 여겨 봤나 봐.

여자가 남자들 틈에 섞여서 오퍼레이팅 엔지니어를 하는 거보다 특파원으로 나가볼 의향이 없느냐고.

이번 인사이동 때 미국과 독일에 여자 특파원 자리가 난다고 해서 미국보단 독일이 좋을 거 같아서 지원했더니 팀장님이 밀어주었나 봐.

 

그리고 네가 강의실에서 혼자 보던 책, 전혜린인가 하고 린저 있지.

너한테는 이야기 안 했는데 나 고등학생 때 그 언니들 때문에 죽도록 앓았다.

독어를 제2 외국어로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고.

그런 네 모습보고 화도 나고 안타까웠어.

남자면 좀 남자답게 굴어야지 말도 안하고 구석에 처박혀서 그런 책이나 보고 멍때리고 있으니.

 

나 너한테 처음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어렸을 때 엄마하고 병원 갔다가 내가 어쩌면 평생 아이를 못 가질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듣고 미치는 줄 알았어.

이유를 알 수 없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불같은 화를 참느라고 내색 안하고 남자들 틈에서 그렇게 선머슴같이 살았던 것 같아.

이 글을 보면 네가 나를 조금은 이해할 거 같아.

하긴 동기들 중에서 내 도라이 같은 짓을 다 받아준 애는 너밖에 없었던 거 같아. 

 

너 기억나니?

눈 올 때 동숭동에서 너하고 단 둘이 남았던 거.

내가 다른 애들보고 먼저 가라고 했던 거야.

눈도 오고 그 때 무슨 이야기든 너한테 하고 싶었어.

왠지 너라면 들어줄 거 같아서.

근데 네가 먼저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나도 모르게 막 화가 났어.

너한테 못되게 군 거 다 잊었지?

나 지금 너 생각하면서 웃고(?) 있다.

씩씩한 남희답지 않게 시리…

난 내 삶의 마지막 날까지 정말 멋지게 살고 싶어.

난 나로서 끝나는 인생일 수 있거든.

그게 무어 큰 의미가 있겠느냐만.

 

아, 그리고 선미 시집간대.

학교 일하면서 연극하는 사람한테.

계집애가 너한테 편지 몇 통 보내고 답장을 못 받으니까 자존심이 많이 상했었나 봐.

예쁜 것들이 꼴값한다고 배타고 있는 사람한테 어떻게 답장을 금방 받아보냐?

너 섭하니?

 

야, 근데 내 편지 구겨서 바다에 버리는 건 아니겠지?

꼭 물고기 밥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독일서 만나게 되면 내 편지 다 갖고 와.

검사할 거야.

그리고 처음으로 뽀뽀해줄게.

Nina의 흔적을 따라 네가 엽서 보냈던 키일 운하의 그 레스토랑에서 만나자. 

 

남희가 ^^

 

편지를 다 읽고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내 눈에는 긴 한숨 외로움과 함께 출렁이는 파도가 아지랑이처럼 겹쳐 보였다.  

 

 

 

부에노 poison 님, 님의 글에서 새벼왔습니다. 용서해주실 거죠? OTL     04-18

poison 멋져요!! ^^ 부에노님... 아무래도 요 며칠 글발이 받으시나 보다.ㅋ.ㅋ.ㅋ.. ^^ 연달아 올라오는 재미있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윤시내 이 노래 정말 오랫만에 듣네요. ^^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부에노님의 사랑 이야기... 감동이닷!! ^^*   04-18

부에노 정말요. 글발 받네요. 여러 님들이 격려해주시니까... 더군다나 항상 뒤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라틴방의 Capitan poison 님이 칭찬해주시니 더 힘이 나네요. 하나 마치면 항상 뒷글이 걱정되면서 남미방에서 푼수짓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ㅋ ^^     04-18

David 국장님! 늘 글을 열때 마다 야그 상자를 여는 기분으로 열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근데 조금 전에 별로 반갑지 않은 사건을 접하고 나니 가슴이 갑갑해지는군요. 대체적으로 한인들의 관심은 돈버는것에 있고, 좋은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것에 있죠.   04-18

David 도대체 자신이나 그 자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또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에 관심이 없죠. 자녀와 대화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 촛점을 맞추어야 되는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드는군요.   04-18

바다 우연히 라틴방에 들렀다가 이제는 매일 안 오면 허전한 사람입니다. 부에노님, 사치 님, 쁘아종님, 박우물님, 유빈님, 이반꼬님, 파울로님, 토마토님, 알젠의봄님... 그 외 몇 몇 분들... 글이나 꼬릿글이 안 보이면 허전해요. 저 혼자 착각해요. 친한 거 같다고. ^^   04-18

바다 부에노님은 그저께 비로소 배를 타신다는 걸 믿었습니다. 글 쓰는 작가신 줄 알았어요. 욕설 없는 따듯한 라틴방에 항상 응원 보낸다는 거 잊지 마시고 모두들 좋은 글 보여주세요. 한국에서 응원할게요. ^^   04-18

부에노 David 님, 바다 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ㅜㅜ     04-18

juang 부에노님덕분에 이곳이 더욱 즐겁습니다. 님과 다른 분들 덕에 배움과 즐거움을 가지는 바 이 은혜를 갚아야할낀데...... 뒷글 걱정하시지 마셔요. 아주 멋있습니다. 부에노님 글 읽으면서 부에노님과 소주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커집니다... 어찌할까요?...   04-18

피곤zz 저는 귀차니즘이 심해서 댓글을 쓴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는데 (솔직히 댓글은 아예 보지도 않았었는데...) 이곳에 와서 정겨운 글들을 읽으면 나도 꼭 한 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바다님처럼 나도 이곳을 지켜주시는 많은 님들과 친해진 것 같고   04-18

피곤zz 또 친해지고 싶어서 ^^... 님들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이분은 어떤 분일까?? 머릿속으로 상상도 해보고요. 인터넷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곳이 있다니... 이곳을 알게된 건 정말 제게 있어서는 큰 행운입니다.   04-18

saci 오랜만인 poison님, David님의 댓글도 반갑고... 제 이름까지 불러주시는 바다님... 그리고 juang님, 피곤zz님도 부에노님 덕택에 이리 댓글로나마 만나서 참 기쁘네요... 그러니 부에노님은 더더욱 열심히 푼수(?)를 계속 하셔야겠네요...   04-18

saci 근데... 혹시 부에노님은 남희씨만 드러내고... 본인은 정작 뒤에 숨어 있는 게 아닌가... 4년 넘게 같이 대학생활하고... 오랜동안 글을 주고 받고... 친구까지 소개해준 동기분이 갑자기 저리 다 털어놓은 배경에는... 부에노님의 그 어떤 표현이 있지 않았을까...   04-18

saci 대체 얼마나 자주 편지를 주고 받은 건지... 답장을 받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건지... 망망한 바다에서 하염 없이 시간을 죽였던 부에노님과... 휙휙 돌아가는 서울에서... 부대끼며... 더 많이 시릴 수도 있었던 그녀가... 어떻게 그 오랜 시간들을 그 누구 없이...   04-18

saci 기다릴 수는 없을 테고... 아마 부에노님도... 그분도... 스쳐 지나가는 많은 인연들을 거쳐가면서도... 그냥 가슴 한 켠에 절대 변색되지 않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었지 않을까...... 그러한 상상들을 해봅니다......   04-18

워렌버팡 집에 들어오면 항상 컴을 켜고 라틴방에와서 주요 멤버들의 글을 읽곤 하루의 지침을 달랩니다. 여기 계신 라틴방 님들의 소탈한 일상이 저에겐 항상 청량음료와 같습니다. 특히 부에노님의 항해일지와 토마토님의 소소한 일상 잘 읽고 잘 듣고 있습니다.   04-18

워렌버팡 앞으로도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여정의 글 올려주시길......   04-18

hb6768 본문과 노래가 너무 와 닿네요. 다음 편도 기다릴게요. 아무래도 남희씨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들어있는 먼 추억 같은 무언가인 것 같습니다. 눈 뜨면 보이진 않지만, 눈 감으면 항상 떠오르는. 이 나이에도 아련한 그 뭔가를 느끼고 갑니다.   04-18

부에노 juang 님 소주 감사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소주마니아였는데... ㅋ 피곤zz 님같이 본인을 잘 표현한 닉도 드물겠어요. 워렌버팡 님, hb6768 님 등 수면 위로 부상하신 분들 모두 반갑고 감사합니다. 항해일지가 연애일지로 변질한 것은 아닌지...     04-18

부에노 아, saci 님. 님만 빼놓고 가면 오해하겠네.ㅋ 먼 나라에서 오시는데 잘 계시죠? 님의 격려글에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희 씨가 여기 있듯이 모두의 가슴 속에 한두 명의 남희 씨가 아련한 추억 속에 남아 있는가 봅니다.     04-18

부에노 사이버 라틴방에서 친해지고 싶고 친한 거 같다는 말씀들, 참 훈훈하게 가슴에 와 닿고 기쁩니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신 영령들에게 삼가 조의를... ㅜㅜㅜㅜㅜㅜㅜ     04-18

David 폭력이 난무한 사이버 세상에서 따뜻한 글찾기가 마치 금광을 발견하는것 만큼 어렵고,모래밭에 떨어진 동전찾기입니다. 여기 라틴방에는 금광처럼 빛나는 분들때문에 댓글을 마구 달고 싶어지죠. (마눌한테 오해 받아가면서도 꿋꿋하게...)   04-18

 

saci 느닷없는 남희씨의 직설적 편지가... 참 당황스럽네요... 모든 일에는 과정과 모티브가 필요한 건데... 그것을 다 생략해버리셨나?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런 글을 불쑥 부에노님에게 쓰게 했는지... 설명 기다리겠어요... 난 갑자기 남희씨가 잘 나가다가... 왜 본색을 드러냈는지... 조금 화가 나서 (이제 남희씨가 어찌 될지... 아마 부에노님도 대책이 안 설 것만 같네...) 07.04.18 1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