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요코하마항
북태평양의 황천항해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HAPPY NINA' 호에 대한 나미의 코멘트
아~, 네가 탄 배 선원들의 차라리 내 몸을 던져서 동료를 살리고 또 배를 살리자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마음에 가슴이 멍하고 많이 울었다.
이러한 전우애를 비롯한 동료애는 남자들에게서 훨씬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정말 대단하고 내가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내가 선뜻 저렇게 나설 수 있었을까?
난 아직 젊으니까 내가 할게요, 이럴 수 있을까?
저 산더미 같은 파도 속으로...
결국 희생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를 던지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나의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명목은 결국 또 가짜였구나.
네 항해일지를 보면서 참으로 생각이 많은 하루였다.
드디어 독일 간대
“어이, 1항사. 그 파도 밭에서 갑판에 나갈 때 기분이 어떻던고?”
“햐, 다른 생각할 정신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우리 배도 배지만 이거 잘못했다가는 나비 엄마 과부 만들겠다는 생각에, 태어나서 그렇게 집중해보긴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
안 선장님이 묻는 말에 1항사가 술잔을 비우며 대답했다.
“그래, 정말 수고했소. 나도 여차하면 우리 선원들 모두 고기밥 되는 거 아닌가 싶어 십 년은 감수했네. 선장이야 배가 침몰하면 어차피 본선과 같이 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상관없지만, 그나저나 기관장, 그 살 떨리던 상황에서 어찌 그런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소?”
캡틴이 묻자 기관장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캡틴. 나도 온통 어떻게 하면 기관부에서 뭔가 역할을 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지. 그 파도에 원목 위에서 걸어 다니기도 힘든데 언제 와이어를 걸고 조인다우. 뫼비우스의 띠와 국장 애인 젓가락질을 생각하다 보니 엑스 자가 팍 떠오르더군. 하하하.”
일본 요코하마항에 무사히 도착한 ‘HAPPY NINA’ 호는 밴쿠버에서 싣고 오다가, 파도를 맞아 상처투성이가 된 원목을 하역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부두 근처 파친코 장에서 손 좀 풀고 다찌노미 집에서 캡틴과 고급사관들이 오사께를 한잔하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리고 국장은 좋겠소. 원목 다 풀어주고 다음 항차가 중국에서 콩가루를 싣고 독일 기점 유럽 다섯 항구에서 하역할 예정이라카니 독일에 간 애인을 만날 수 있겠네. 아예 거기서 만나 같이 배를 타고 다니는 건 어떤고?”
캡틴의 말에 나는 소미 아니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독일 선주 배를 잘 탔네요.”
1항사가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 뭐여. 처녀총각이 오랜만에 만나면 맛있는 것도 먹고 선물도 주고 하는 거 아뇨? 그래야 빤쓰 색깔도 확인할 기회가 생기든지 말든지 하지.”
모두 빨개진 내 얼굴을 쳐다보며 폭소를 터뜨렸다.
“글쎄, 뭐 맛있는 걸 사줘야 하나?”
내 혼잣말에 1항사가 또 나섰다.
“아,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 병 시켜놓고 그대는 별로 안 좋아해도 칼질하는 거 시켜 먹으면서 분위기 잡으면 되지 그래, 작업 한두 번 하요? 그 아가씨는 뭘 잘 먹는다요?”
“글쎄요, 학교 다닐 때는 뭐든지 디따 잘 먹었어요. 한 번은 과 애들 몇이 분식집에 가서 비싼 돌솥비빔밥을 시켰는데 그 애가 제 밥에 있는 김 가루를 가지고 뭐 파리가 빠졌다고 반쯤 퍼가더라고요. 말도 못 하고 그날 배가 얼마나 고팠던지 혼났다니까요. 그때 학생들이 뭔 돈이 있었어요. 그렇게 먹고도 살 안 찌는 거 보면. 하하하.”
“글래머라며? 파전이나 오뎅, 순대 그런 것도 잘 먹겠구먼. 우리 나비 엄마하고 연애할 때는 시장 순댓집에 자주 갔었는데.”
1항사가 북태평양 파도를 맞고 기절해서 쓰러졌다가 살아나니 새삼스레 부인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선주로부터 위로금 받은 거로 일본에서 예쁜 반지와 남희 씨 마이크 잡을 때 입으라고, 좋아하는 보라색으로 정장 한 벌 살까? 지금은 취향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네요. 총각이 어디 여자 옷에 대해 알아야지요.”
“야, 그 아가씨는 좋겠다. 이왕 사주려면 제일 좋은 거로 사 주소. 투자하면 어디 가나. 아가씨 때 기분 맞춰주고 시집올 때는 다 갖고 올 거 아닌가?”
기관장의 말에 모두 웃음보를 터뜨렸다.
캡틴이 앞에 있는 술잔을 비우고 안주를 집으며 말했다.
“일본은 참치가 뭐 이리 비싸노? 혼 마구로도 아닌 것 같은데 한 점에 오백 엔 치면 우리 돈 오천 원 아닌가?”
“정말 비싸네요. 자갈치 시장가면 그 돈이면 펄펄 뛰는 아나고를 근 이 킬로는 잡아주는데, 이거 어디 살 떨려서 안주 집어 먹겠나? 여기서 가격파괴 참치 전문점 하나 차리면 대박 나겠는 걸.”
기관장의 말에 이어 캡틴이 대꾸했다.
“그러니 얘네도 마구로 한 점 갖고 ‘오이시데쓰네~’ 하면서 신주 모시듯이 벌벌 떨며 아껴 먹잖소. 얘들 월급 백만 엔이면 우리 돈으로 얼마요? 그렇다고 얘들 사는 게 물가가 워낙 비싸서 우리 이삼백만 원 받는 월급쟁이보다 별로 나을 게 없을 거요.”
“맞습니다. 전에 다른 배 탈 때 대리점 직원 집에 초대받아 갔었는데 아파트가 일억 엔 한다던데 방이고 거실이고 코딱지만 하더라고요. 우리 돈으로 십억 아닙니까? 저 같으면 그 돈 있으면 변두리에 정원 있는 큰 집에 살고 남는 돈으로 캠핑카 하나 사서 휴일이면 가족 데리고 홋카이도나 오키나와 같은 곳에 구름과 별 보고 놀러 다니면서 온천하고 맛있는 것 사 먹고 ‘내비도~’ 하면서 E 좋은 세상 재미나게 살겠다.”
내 말에 입을 다물고 하품을 참던 캡틴이 말했다.
“그려. 국장 말이 맞지. 그건 그렇고 얘네들 친절하고 성실한 국민성은 세계 최고 아닌가? 그런 건 본받을 만하지. 자~, 오늘 술값은 내가 낼 테니 한잔씩 더 마시고 들어오소. 나는 피곤하니 먼저 들어가네.”
“아니, 같이 들어가세. 내가 반 낼게.”
기관장 말에 내가 웃으며 대꾸했다.
“아~, 술값은 제가 계산했습니다. 오늘 모처럼 파친코해서 몇만 엔 땄거든요.”
잠자코 술을 마시던 1기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니 국장, 그런 거 좋아 안 하잖아. 마작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웬 파친코요?”
“하하하. 우리 선원들이 그 파도 밭에서 모두 집중해서 별 사고 없이 여기까지 왔다시피 저도 마찬가지로 물가 비싼 일본에서 술값 좀 벌려고 시간 투자 좀 했죠. 이 비싼 땅에 시설비, 전기료들을 누가 낸답니까? 돈을 딴다는 생각보다 확률에 승부를 걸었지요. 두어 시간 동안 일본 애들이 앉은 다이를 세부 123 하고 적으면서 유심히 지켜봤어요. 지지리도 안 터진 기계 몇 군데를 점 찍어놓았다가 한 군데 자리가 비어서 앉았더니 얼마 안 있어 쓰리 세븐이 터지데요. 볼일 봤으니 훌훌 털고 일어났죠. 그리고 선원들이 그렇게 목숨 걸고 일했는데 저는 한 것도 별로 없고 해서 딴 돈으로 미리 술값을 냈죠, 뭐.”
캡틴이 고맙다며 말했다.
“국장, 대단하네. 그런데 그 아가씨한테 독일 갈 거라고 연락은 했소?”
“그렇지 않아도 아까 전화를 몇 번 했었는데 연결이 안 되네요. 일하느라 바쁜 모양입니다. 귀선하면서 부두 앞 공중전화에서 한 번 더 해보려고요.”
“그래? 국장 덕에 잘 마시네. 다음에는 내가 한잔 사지. 자 모두 건배합시다. 독일에 있는 특파원 남희 씨를 위하여 브라보!”
캡틴의 선창에 따라 1항사를 빼고 모두 ‘브라보!’를 외치며 잔을 부딪쳤다.
1항사는 종종 하던 대로 ‘브라자!’라고 했던가?
“나미야, 짠!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독일에 간다.”
내 들뜬 목소리에 지구 반대편에서 밝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정말? 그래, 언제 오니?”
“뭐, 일본에서 원목 풀어주고 중국 가서 짐 싣고 유럽 가는 데 두세 달은 걸리겠지.”
“야, 짜샤! 나 성질 급한 거 알지? 너 짱 박아 놓은 돈으로 비행기 타고 와라. 내가 공항에 마중 나갈게. 호호호.”
“뭐라고? 하하하.”
그리고 그녀답지 않게 수줍게 말을 이었다.
“어째, 네가 텔레파시를 보냈는지 오늘 일하면서 온종일 안절부절못했거든, 알아? 그러니까 오늘은 조금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도 돼.”
saci 남자들이란 그런가... 아니면 뱃사람들은 그런가... 아니면 부에노님만 그런가...... 보고 싶다고 그랬는데... 뭔 선수들을 치실까...... 미운 정 고운 정 든 학교 동기 안 보면 보고 싶은 것, 거기다 같이 외국이면 만나고 싶은 것 당연한 거지... 뭔 결혼... 뭔 속옷 색깔... 04-30
saci 혹시 그 넘의 뽀뽀에 너무 기대하고 갔다가...... 바람 빠져오는 내용이 그 다음이 아닌지... 대학친구 빠리 가는 길에 만난 적 있었지요... 손가락 떨면서 공중전화 누르면서... 그때 확인한 것은... 그 전에 더 다가가지 않은 이유를 서로 인정했던 것 같은데. 04-30
saci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부에노님이 이렇게 우리 가슴에 바람 잔뜩 넣으시고...... 김 빼시는 게 아닌지... 더더욱 뒤가 궁금해서...... 진도 빨리 나가지... 언제 그 독일 선주배는 독일에 도착하나... 04-30
David 이야기가 이제 중반으로 접어 들고 있네요. 다음 편에는 나미씨~ 기대~~~ 남자들 대체로 팬티에 관심이 별로 없죠(?). ^^ 전 고상한 예술에만 관심 ^^; 영감님이야 팬티가 없어서, 관심이 많으신 거고. (없으니...) 18금. ㅋㅋㅋ 04-30
saci 하하하...... 왜 없겠어요? 있는데... 빨래하기 싫어서 아님 하나라도 줄일라고...... 아이 배야... David님... 고상한 예술에만 관심... 옙... 잘 믿을 게요...... David님... 따라다니면 배가 너무 아파서...... 04-30
Moroti y Hunghu 아~ 아 아직도 삼 개월 씩이나~ 빨리 남희씨 만나는 꼴을~ ㄲ D 님 근디 영감임 빤스(?) 없다는여 ~ 아~ 아 이 석두 알았슴다, 18금(대 사전에서 찾아봐야지)~~영감임 오사께 잘 마셨슴다~ 꾸뻑~ 좋은 쉼 되세여. 화팅~ 아, 기상 나팔(?) 소리도 잘 들었슴다. 04-30
RailArt박우물 한국의 트럼펫 전설이 되신 김인배 선생님을 통해서 실제 이 트럼펫 음악을 들었을 때의 감동이 되살아나네요. 넓은 세상을 향하여 부에노님의 Sailing~~~~~~ 04-30
momo0506 '밤 하늘의 트럼펫' 옛 생각 많이 납니다. 예사롭지 않을 두 분의 해후가 기대됩니다. 어설픈 색 감별 시도하다 하이킥에 졸도는 안 하실지. ㅋ. 04-30
이반코 전 부에노님의 글을 읽고 나면 항상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어떻게 아주 오래 전 일들을 대화 하나 하나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지... 생뚱맞지만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고집"이라는 작품이 떠오릅니다.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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