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레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김도향

부에노(조운엽) 2017. 5. 12. 10:24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대학 졸업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것은.

직장이 있으니 책을 대출 받고 반납하는 것이 내 시간대와 맞지 않았다.

친구네 집에 가면 과천 도서관에서, 정독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있었다.

혜택을 받고 사는 그들을 부러워했지만, 내가 빌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봄방학이라서 들린 혜주네 집에서 책 이야기를 하다가 야간에 책을 대출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주말에 가도 된단다.

정독 도서관으로 갔다.

주차도 되고 1시간은 무료 주차다.

주민등록증을 내고 도서대출증을 신청했다.

내게 이미 도서대출증이 있다고 한다.

아파트에 이동도서관이 오는데, 대출증을 만들고 몇 번 빌린 적이 있다.

책도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 더 이상 이용하지 않았었다.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다시 발급받았다.

 

책을 빌린다는 게 나를 흥분시켰다.

티나 모도티의 전기와 DSLR 길라잡이, 여행보다 오래 남는 사진 찍기라는 사진 잡지 2권을 빌렸다.

소설을 빌리려고 했는데, 사진 섹션에 갔다가 3권을 다 빌려버렸다.

 

며칠 전 DSLR카메라를 구입했다.

사진에 애착이 많고, 사진기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은 내가 카메라를 선택한 방식이 이상할 것이다.

남편 신용카드의 포인트가 많이 쌓였다.

남편이나 나나 별로 잘 사는 집에서 자라지도 않았고, 돈도 많이 벌지 못하면서, 말하자면 알뜰과는 거리가 멀다.

신용카드 포인트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카드 청구서와 함께 날아오는 그 숱한 안내서들을 읽지 않았다.

그 동안의 포인트들은 그냥 소멸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포인트몰을 보니 카메라도 있다.

디지틀 카메라뿐 아니라 DSLR도 있다.

가벼워서 내게 좋을 지도 모른다고 승환이가 말했던 올림푸스 E-410이 거기 있었다.

그래서 샀다.

거기 있었기 때문에 샀다.

포인트를 이제는 그냥 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샀다.

내 포인트로는 필라델피아 치즈케익과 작은 믹서를 샀다.

그 동안 버린 포인트는 얼마나 될까...

 

낮에 혜주네 집에서 딸 희원이랑 씨름하는 것을 보았다.

늦은 결혼으로 얻은 외동딸 희원이가 이제 고2가 된다.

맺힌데 없이 무르고 태평한 딸아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루 종일 달달 볶았다.

내가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드만,

예의 없다고 밥 먹는 딸아이를 구박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더니 드디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쿨한 친구다.

자식에게는 쿨할 수 없나 보구나.

"그만해. 너를 보니 내가 보인다. 밥 먹는 시간만이라도 내버려두지. 내 아들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진심으로 내가 보였다.

아들에게 내가 준 상처가 보였다.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재현하는 것 같은 그들 모녀를 보니 내가 엄마로서 어떻게 아이를 대하는 게 좋을지 보이는 것도 같았다.

 

현명한 엄마가 되는 것이 힘들다.

나름 좋은 선생님노릇은 흉내라도 낼 수 있다.

선생보다 엄마 노릇이 백 배는 힘들다.

혜주와 희원이를 보면서 엄마 노릇 좀 제대로 해보자고 생각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에게 또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창피해서 입에 올리기도 싫다.

자식에 대해 바보 같이 구는 것은,

도서관에서 이제야 책을 빌려보게 된 것, 신용카드 포인트를 쓰지 않아 소멸되게 만든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진정 바라기는 5년이나 10년 후에...

다시, '난 참 바보 같은 엄마였군요'라고 말하지 않게 되기를...

 

희원이, 귀가 밝아 지 엄마가 자기에 대해 내게 하는 얘기를 다 알아 듣고, 마음이 여려 엄마의 태도가 불만이어도 눈물을 흘릴지언정 감히 대들지는 못하는...

꼭 우리 아들 같은...

 

 

 

글과 사진 : angel57 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김도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