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젠 님이 보내주어 유빈 님 집 정원에서 잘 자라고 있는 코스모스
사랑하는 모든이들께
이곳 삐우라는 긴 여름이 가고 있습니다.
시장에는 주황색의 감이 얼굴을 내밀었더군요.
감 이곳에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과일인데 두서너 해 전에 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감을 보고 마치 노다지를 발견한 듯이 정신없이 비닐봉투에 주워담던 내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한국에선 아무 일도 아닌 것들이 이곳에서는 항상 새로운 일이 되고 그렇게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마음이 짠했지요.
이제 막 초 가을인지라 모양이 그다지 좋아보이질 않아서 그냥 눈으로만 감상하고 지나쳤지만 다음 장에는 꼭 한 봉지 사들고 올겁니다.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지니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깝게는 가족부터 이렇게 넷 상에서 만나서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막역한 사람들이 전부 보고 싶어집니다.
한국에서도 유난히 가을을 타서 가을에는 노래 한곡도 제대로 들을수 없었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스산한 가을날 유행가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
세상의 고독을 나 혼자만 다 감싸안듯이 그렇게 심한 가을 몸살을 앓았었지요.
그래서 전 가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쓸쓸하고 허전해서...
그나마 이곳의 가을은 한국처럼 그렇게 쓸쓸하지 않아서 견딜만합니다.
문득 전에 와라스 여행 때 가져왔던 코스모스 씨앗이 생각이 나서 정신없이 뒤져보니 어디로 가버렸는지 흔적을 찿을수가 없습니다.
유난히 코스모스를 좋아해서 그 꽃을 이곳에서 볼 수가 없어서 항상 그리움으로만 간직하고 살았는데 우연히 와라스에서 그렇게도 그립던 코스모스를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정신없이 씨앗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지요.
이곳 삐우라에서 한번 코스모스 동산을 만들어 보겠다고...
그래놓고선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습니다.
이제 서늘한 날이 되고보니 갑자기 코스모스가 그리워집니다.
이틀동안의 세마나 산타 휴일이 지나고 거리는 다시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열무 씨앗을 뿌리러 밭에 갑니다.
하얀 은쟁반에 모시수건은 없더라도 이 열무를 심어서 파란 잎이 돋아나면 내 그리운 사람들과 같이 맛있는 열무김치 비빔밥이라도 해먹고 싶네요.
우리의 영원한 예술인 우물님, 그리고 내게 항상 미소를 머금게 해주시는 우리의 부에노 영감님 ㅎㅎㅎ.
또 먼 유럽에서 항상 힘을 실어주시는 나의 동기 saci 님.
올해나 내년에는 꼭 한번쯤 얼굴을 뵙고 싶습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유럽에 갔을때 saci 님을 찿아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무궁무진하니까요.
아쉬움은 가슴 깊이 접어두고 또 다른 기회를 기다리겠습니다.
님들이 페루에 오시는날 나는 활짝 웃고 있는 찬치또(돼지)도, saci님이 그리도 먹고 싶어 하는 따뜻한 두부도 만들어 놓고 기다릴테니까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하면서 열무 씨앗을 뿌립니다.
모두 모두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하시길 멀리 페루 삐우라에서 기도합니다.
(사족 : 이 글을 알젠의 봄 님이 보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번개 모임 때 코스모스 씨앗을 한국에서 가져다 드렸답니다. 그리하야 엄청 더운 삐우라에서 한국의 코스모스가 힘차게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유빈 님 집 앞에서 본 노을
유빈 님이 좋아하시는 Isad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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