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수록 정이 가는 가수 김정미 님
사이키델릭의 여제 김정미 님과 보디가드, 잊어야 한다면
"히히~~~ 아저씨, 정미 누나 노래 좀 녹음시켜주세요."
"어, 학생 왔냐? 용돈 생긴 모양이지."
"네. 엄마가 주셨어요."
"에잇 트랙 테이프 카트리지네."
"네, 아빠가 사오셨는데 이 뽕짝 지우고 좀 해주세요."
70년 대에 듣던 8트랙 테이프 카트리지
70년대에 LP 판과 함께 음악을 듣던 8트랙 카트리지.
LP 판은 한 면 노래가 끝나면 손으로 다시 돌려줘야 하지만 8트랙은 마냥 돌아갔다.
음질도 더 나은 것 같았다.
그런 걸 청계천 7가에 가면 해적 LP판과 함께 팔았다.
몇백 원만 주면 녹음도 해주었다.
추억의 LP 판
당시 경제 사정이야 말 안 해도 상당히 어려울 때였다.
불과 몇년 전 국민학교 다닐 때는 점심 도시락을 못 싸와서 미국에서 원조해준 옥수수 죽으로 점심을 때우는 학생들이 거의 절반 가까이 됐다.
6학년 때 옥수수 빵으로 바뀌었지만...
그리고 용돈 몇백 원만 생기면 청계천 7가로 뛰어가서 듣고 싶은 음악을 녹음해 오고, LP 판을 사는 것이 큰 행복이었다.
주로 산 것이 Led Zeppelin, Deep Purple, Melanie Safca 그리고 B.T.O. 등이었다.
그렇게 모은 것이 백여 장은 넘었다.
당시 평화시장의 책가게 다음 블록에서 LP 해적판을 팔았다.
가수 김정미 님과 한 동네 살면서 그녀의 팬이 되어 그녀의 노래를 녹음해서 듣는 것도 큰 낙이었다.
용돈이 거의 없는 학생 입장에서 정품을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저 그렇게 불법 녹음해서 듣는 것만 해도 엄청 감사한 일이었다.
당시 집에 TV는 말할 것도 없고, 전축, 라디오도 없는 친구들이 제법 많았으니 말이다.
그때 정미 누나 운전기사 겸 경호를 하던 해병대 출신 아저씨 에피소드 하나.
정미 누나가 용산 근처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아저씨와 업소를 나오는데 술 취한 젊은 애가 시비를 걸었단다.
기사 아저씨가 정미 누나는 차에 타라하고 그 젊은이를 조 팼단다.
그랬더니 그 젊은 애 패거리 대여섯 명이 우르르 달려들더란다.
아무리 해병대 출신이라지만 젊은이들 여러 명을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일 아닌가?
그런데 이 작달막한 아저씨는 여러 사람에게 맞으면서 한 놈만 노리고 혼자서 그 젊은 애들을 차례차례 눕혔다고 한다.
귀신도 잡는 해병대원들의 빡센 훈련 모습
알고 보니 그 젊은애들이 용산 짱짱이 파 깡패들이었다.
두목과 행동대장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현장에 왔더니 그 기사 아저씨가 혼자 웃통을 벗고 씩씩 대며 자기 똘마니들을 무릎 꿇혀 앉히고 '내가 해병대 이백 몇십 긴데 요 조막만한 놈들이 우리 정미 씨를 건드려.'라고 말하고 있더란다.
실제론 자기가 제일 키가 작으면서... ^^
짱짱이 파 두목도 마침 용고를 나온 해병대 출신이라 바로 그 자리에서 넙죽 인사하며 '아이고, 선배님. 죄송합니다. 저 한 참 후임인 짱짱이라고 합니다. 동생들 교육을 잘못 시켜서 죄송합니다.'라고 백배사죄를 하더라나...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해병대 출신들의 선후배 의식과 의리는 아무도 못 말린다.
그 후로 밤업소에서 건달들이 김정미 님과 기사 아저씨는 절대 안 건드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
잊어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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