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에서 연인과 함께 있고 싶은 한 카페
나눔
대학시절 남자친구와 대학로 광장에 앉아 거리 공연을 볼 때였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불우이웃 돕기 모금함을 들고 광장 주변을 돌다가 우리 앞에 멈춰 섰습니다.
도와 달라는 무언의 눈빛.
착한 남자친구는 선뜻 오천 원을 꺼내 모금함에 넣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찰나,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남자친구 손을 잡아끌고는 아주머니에게 '죄송해요.' 하며 냉큼 천 원으로 바꿔 내 버렸습니다.
'못됐다!'고 말하는 듯한 아주머니의 눈초리와 무안한 듯 나를 바라보는 남자친구….
사실 오천 원,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 돈으로 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죠.
그런데 그보다 이상하게 길거리, 지하철 등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에게 나는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합니다.
'과연 저 돈이 어디에 쓰일까?' 하는 의문도 들고, 언젠가 방송에서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구걸한 돈을 갈취하는 사람은 정작 따로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어쩔 때는 저 정도면 일을 해도 될 텐데 하는 냉소적인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핑계도 많고 참 못됐지요.
지난 달 퇴근길이었습니다.
왜 그런 날 있잖아요.
기대했던 사람에게 실망하고, 동시에 나에게 실망한 날.
와르르 무너진 마음으로 지하철을 기다리며 이어폰을 끼고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내 옆에 앉은 아가씨한테 흰 종이를 꺼내 보여 주었습니다.
마치 얼음땡 놀이에서 '얼음' 상태가 된 듯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아가씨 역시 꼼짝하지 않았지요.
한참 그렇게 둘은 '얼음'처럼 굳은 채로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그 할아버지가 이번엔 내 앞에 섰습니다.
아가씨에게 했던 것처럼 흰 종이를 펼쳐 보였죠.
꼬깃꼬깃한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100원이라도.”
다시 할아버지를 얼음처럼 굳게 하긴 싫었습니다.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아, 만 원 몇 장과 150원이 있었습니다.
100원이라도 했지만 100원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만 원은….
그냥 지갑을 닫을까, 잠깐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누군가에게 실망한 것처럼 할아버지에게 실망을 주기는 싫었습니다.
100원 만큼의 기대라도 실망은 100원 만큼이 아닐 테니.
그래서 만 원 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한참을 내게 머리 숙이셨습니다.
할아버지를 돕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기분 때문이었는데.
내 몫이 아닌 인사를 받는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내일 사천에 갑니다.
밥하러 갑니다.
모두가 들뜨고 기쁠 때 더 외롭고 추운 사람들과 또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하고 축하 노래도 불러 주는 작은 산타들의 배를 든든히 해 주러 갑니다.
내 밥 차려 먹기도 귀찮아 엄마 안 계신 날이면 종일 쫄쫄 굶는 내가 밥 하러 간다니 다들 의아해합니다.
그런데 자꾸 그런 마음이 듭니다.
나누어야 하는 부담감이요.
사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며 모른 체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걸음 떼려고요.
다음에도.
그렇게 한 발 한 발 떼다 보면 내 옷을 입은 듯 무언가 나누는 일도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내 안의 인색함이 넉넉함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100원 만큼의 기대 가지고요.
하하.
글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이소정 기자
그 카페의 이 층 테라스와 잔잔한 태평양 바다
난 바람 넌 눈물, 백미현 & 신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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