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허술하다면, 나는 완벽한 살인자가 될 수 있다
매일매일 죽은 자의 몸을 본다.
병사, 혹은 자연사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사전적 의미로는 사고·재난·자살 등 때문인 뜻밖의 죽음, 변사다.
지금까지 다룬 시신이 7,500여 구.
그중엔 최진실, 최진영, 정다빈, 박용하 같은 유명 연예인, 그리고 서래마을 영아들이 포함돼 있다.
한길로 박사가 있는 서울 법의학연구소는 국내 최초의 민간 법의학 전문기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의로 일하다 2004년 독립해 나와 설립했다.
영화 '용서는 없다.'에서 설경구가 열연한 법의학자의 모델이 한 박사다.
국과수 들어가기 전엔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 부교수였다.
시체를 만지고 싶어 교수를 그만두었다.
교수 월급보다 3분의 1 적은 국과수 평연구원으로 옮길 때 주위에서 미쳤다고 했다.
3년 동안 미친 듯이 부검한 뒤 국과수도 떠났다.
'오로지 부검에만 매달려야 하고 사건 현장엔 나가지도 못하니 제대로 된 법의학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민간으로 돌아온 한 박사의 실험에 법의학계 시선이 쏠렸다.
하루 두세 건은 기본에 이삼일 휴가도 갈 수 없을 만큼 일감이 몰려드니 주위에선 성공이라고 했다.
경찰은 현장에 전문 법의관이 동행, 사인 규명과 수사 방향에 결정적 단서를 주니 한 박사만 찾았다.
국과수의 부검 건수도 줄었다.
국과수 출신 동료가 명백한 자살 건은 1차로 걸러주니 시신이 무턱대고 국과수까지 오는 일이 사라졌다.
성과였다.
한 박사의 생각은 달랐다.
문제투성이 검시제도는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으니 실패란다.
그는 느닷없이 드라마 '대물'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했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 우리나라 검시제도가 딱 그런 꼴이다."
현장에 다녀오시는 길인가 보다.
"구로 야산에서 젊은이가 목을 맸다. 얼마 전 친구가 목을 맨 장소에서 똑같이. 친구 따라갔나 했는데 아니더라. 인터넷 도박빚 때문이었다."
오늘 하루에만 4건이라니 놀랍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일어나는 변사사건이 수만 건이다. 자살률은 계속 늘어날 거다. 젊은 세대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너무 약하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금방 포기한다. 이를 악물고 뚫고 가려는 의지가 없다. 부모들 탓이다."
대학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유가 가장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선 국과수에서만 부검할 수 있다. 지금은 고려대 안암병원에 국과수 분소가 설치돼 있지만, 내가 교수로 있을 땐 없었다. 한마디로 부검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교수인 내가 경험이 없으니 교과서 이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게 없었다.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교수라는 타이틀에 묶일 이유가 없었다."
국과수는 또 왜 그만두셨나.
"매일 시신만 봤다. 이 사람이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었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현장을 보면 타살인지, 자살인지 1차로 짐작할 수 있는데, 인력이 절대 부족하니 나갈 시간이 없었다. 우리의 눈이 돼주어야 할 담당 경찰관은 사진 몇 장 달랑 던져주고, 우리 질문엔 제대로 답도 못했다."
변사사건을 처리하는 검시제도가 엉성하다는 비판과 상통한다.
"서울과 경인지역 담당하는 국과수에서 실제로 일하는 법의관이 10명 안팎이다. 그들이 1년에 3천 건의 부검을 한다. 서울보다 작은 뉴욕에만 법의관이 40명이다. 그들은 현장 다 나가고, 부검 오더(order) 치고, 법정에서 증언도 한다."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명백한 사인이 없으면 반드시 부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변사사건에는 사인 불명이 많다. 미국과 유럽은 그 사인을 국가가 반드시 규명하게 돼 있다. 우리는 아니다. '부검이 사람을 두 번 죽인다.'는 유교적 의식이 강한 데다, 담당 경찰이나 검사가 부검에 적극적이지 않다. '가족이 부검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 그만이다. 사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많은 이들이 화장되거나 매장된다."
억울한 죽음이 많다는 얘기인가.
"내가 농담 삼아 경찰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우리 검시 시스템이라면 나는 완벽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고. 어떤 집에서 시신이 발견됐다고 하자. 가족이 돈을 노리고 짜 한 사람에게 청산가리를 먹여서 죽인 건데, 겉으로 봐선 흔적이 없고 가족이 입을 모아 '평소 심장병을 앓아왔다.'고 말하면 경찰은 믿을 수밖에 없다. 가족이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시신은 병원 응급실이나 장례식장으로 옮겨지고 검안서 한 장, 사망진단서 한 장 받으면 끝이다. 살인사건이 그냥 가는 거다."
억울한 죽음을 구제한 적 있으시겠다.
"3년 전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가 남편을 죽인 사건이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아내는 전날 밤 만취해 들어온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목욕탕에 엎어진 채 숨져 있었다고 했다. 평소 혈압에 당뇨가 있었고 술을 많이 마신 탓인 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경찰은 그런가 보다 했다. 내가 도착한 뒤 상황이 바뀌었다. 시신을 목욕탕 밖으로 꺼내 뒤집었는데 얼굴에 울혈과 눈꺼풀 밑에 점상 출혈이 보였다. 목이 졸리면 생기는 특징이다. 부검을 지시했다. 숙취로 죽은 거면 혈액에서 알코올이 나와야 한다. 대신 과량의 수면제가 나왔다."
그런 죽음이 흔한 건 아니잖나.
"부검은 유가족을 위해서라도 해야 한다. 사인이 명확하지 않으면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특히 가장이 아내와 어린 자녀만 두고 죽었을 때 개인적으로 유족을 만나 설득한다. 제발 냉정해지라고."
진짜 문제는 부검의가 되려는 의사들이 없다는 것 아닌가.
"의사 자격증만 있으면 할 수 있다. 국가가 연봉 1억 준다 하고 모집해봐라. 200명 모아서 6개월 '빡세게' 훈련한 뒤 현장에 보내면 된다. 그런 의지가 없으니 사인을 모르는 채 매장되는 국민이 허다하다. 얼마 전 뉴스에서 5년간 한강 다리에서 투신한 사람이 2,400여 명인데 그 중 익사한 숫자가 80여 명이라고 하더라.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1년간 검안한 한강 시체만 해도 50구는 넘을 거다. 대부분 '사인 미상'으로 처리하니 통계에 잡히지 않는 거다."
유명 연예인들 사건을 접하면 기분이 어떤가.
"내겐 다 똑같은 '일'일 뿐이다. 자식 또래의 청소년들을 마주할 때가 가장 안타깝다."
연예인의 죽음이 일으킬 사회적 파장 때문에 신경은 쓰이겠다.
"물론이다. 사인이 명확해도 타살의혹, 음모설이 무한대로 확산한다. 정다빈 때가 가장 심했다. 그래서 최진실 씨 때는 검·경과 상의해 검안, 부검, 브리핑까지 시간 끌지 않고 속전속결 했다. 음모설보다 더 심각한 것은 베르테르 효과다. 유명인 한 사람이 자살하면 그달에 일어나는 자살 유형이 똑같다. 샤워기에 압박붕대, 자동차 안에 연탄가스로 자살하는 것 등을 따라 한다. 매스컴이 연예인들 죽음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도 베르테르 효과를 부추긴다."
황장엽 씨 사건은 맡지 않았나?
"경찰에서 연락이 왔지만 가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니 내가 뭘 본다고 해서 해결될 일 아니잖나. 처음부터 국가기관이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욕조에서 그렇게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다."
부검 원 없이 해봤다는 국과수 시절 얘기를 들려달라. 의문의 시체를 매일 마주하고 해부하고 봉합하는 일을 어떻게 견디나.
"새색시한테 시어머니가 고등어를 주면서 '자반으로 해서 구워라.' 하면 처음엔 '이걸 어떡해?' 하면서 벌벌 떤다. 고등어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야 하는데 무서운 거지. 주부 5년 차, 10년 차 돼봐라. 칼로 탁탁탁 쳐서 순식간에 자반으로 만들고 구워낸다."
국과수 부검실은 떠도는 혼령 때문에 냉기가 가득하다는 말도 있더라.
"냉장고 때문이겠지. 부검을 참관하러 온 외부인들에게 장난삼아 '점심으로 곱창전골 먹으러 갑시다.' 하면 비명이 나온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다. 자정이 다 되도록 부검한 뒤 컴컴한 부검실 복도를 지나 주차장으로 걸어나간다. 복도 양옆에는 장기 표본들이 죽 걸려 있는데 아무 느낌이 없다. 부검하다 배고프면 그 자리에서 샌드위치도 먹고 밥도 먹고 그런다."
부검의들이 가장 꺼리는 게 에이즈나 결핵을 앓았던 시체라던데.
"그런 줄 알고 부검하면 다행이게? 대개는 모르고 한다."
일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시나.
"독주를 많이 마시느냐 묻고 싶은 거지? 난 맥주 한잔이 주량이다. 술 많이 먹는 회식자리는 가지 않는다. 동료도 모두 평범하고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애 둘 키우는 엄마도 있고. 일이 정말 좋아서 온 사람들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사'라는 직업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훨씬 더 궂은 생활 아닌가.
"내 동창들은 하루 70~80명씩 비슷비슷한 증세의 환자를 보면서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이 약 드세요.' '안녕히 가세요.'를 반복하며 살 거다. 내가 만나는 '환자'들은 똑같은 이야기가 없다. 별의별 인생이 다 있다. 일반 의사를 했다면 응급실에 있었을 거다. 생사를 다투는 숨 가쁜 상황이 훨씬 적성에 맞다."
직업 때문에 얻은 습관은 없으신가.
"공포영화가 재미없고 시시하다. '말도 안 돼.' '거짓말이야.' 하며 내내 혀를 차서 집사람이 타박한다. 물건을 하나 살 때 굉장히 꼼꼼히 살피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앞, 옆, 뒷면을 모두 관찰하는 것도 버릇이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땐 꼭 물 쪽을 한번 내려다본다."
삶과 죽음의 문제, 영적인 세계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
"성당에 다니다 관뒀다. 착하게 살면 천당 가고 나쁘게 살면 지옥 간다는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게 우리 삶이더라. 상상할 수 없이 처참한 죽음이 많다. 꼭 저렇게 살아야 했을까, 돈과 명성이 행복한 삶과 무관하다는 걸 그 주검들 보며 뼈저리게 느낀다. 요즘엔 단순하게 생각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 '오늘 하루 후회 없이 살았다.' 하며 잠들자, 이런 식으로…. 내일 아침엔 내가 세상에 없을 수도 있지 않나. 오늘 하루가 내겐 가장 소중하다."
글 : 김윤덕 기자
못 잊어
김소월 작시 김학송 작곡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을 날 있으리라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을 날 있으리라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을 날 있으리라
아 잊을 날 있으리라
잊을 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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