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나는 오늘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한 사람을 위해 철원에서 서울에 있는 건국대병원까지 출퇴근합니다.
언젠가 한창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여름,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철원에 래프팅하러 갔습니다.
당시 래프팅 강사로 일했던 그와 고객이었던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서울과 철원을 오가며 3년 동안 사랑을 키워오던 우리는 한평생 동반자로 같은 길을 가기로 생각했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일했던 내가 철원으로 직장을 옮긴 뒤 양가 부모님은 상견례를 했고, 가을쯤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하루하루를 너무도 바쁘게 지냈지만, 행복한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일을 끝낸 뒤면 항상 피곤해하는 그를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저 달콤한 미래만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복도 잠시, 불행은 우리 모르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많이 아파 보였습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말미암은 그저 가벼운 몸살이라며 병원에 안 가겠다던 그를 무작정 병원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검사 결과가 나온 날, 그가 암에 걸렸다는 참으로 기막힌 말을 들었습니다.
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완치할 수 있다고 해서 서둘러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수술 결과는 좋았습니다.
그 뒤에도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았지만, 다시 예전의 평범했던 시간으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그런데 평소 지병을 앓고 계시던 예비 시아버님이 갑자기 쓰러져서 자리에 누우셨고, 9월에 끝내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 사이 친정 엄마도 자궁근종과 고막천공 때문에 수술을 네 번이나 받았습니다.
이렇게 우환이 계속되더니 결국은 그에게 다시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수술 받은 지 8개월째.
그는 암이 재발해 폐와 간 그리고 후 복막 림프절까지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병원에서는 이대로 두면 생명까지 위험하니 하루빨리 항암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말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오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른 병원을 찾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허리에 통증이 심해졌고 각혈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항암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구토와 헛구역질, 근육통 등 여러 부작용에 시달렸습니다.
병마와 싸우느라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그를 보며 나와 가족들 역시 무척 괴로웠습니다.
하루가 그리고 몇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7차 항암 치료를 마친 지금, 결과는 너무도 냉정하고 무섭습니다.
“완치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한 가지 희망이라면 환자 나이가 27세로 젊으니 고용량 약품으로 항암 치료를 한 뒤 자가 골수이식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성공할 확률이 20~30% 정도라 골수이식한 뒤 재발하면 최악의 상황까지도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이미 7차 항암 치료로 빚을 많이 져서 골수이식 비용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가능성도 적다니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했습니다.
'정말 하느님이 계신다면 내가 살아갈 날을 반으로 나눠 그와 같이하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내 나이 이제 스물여섯입니다.
언니와 친구들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은 모두 결혼도, 혼인신고도 안 했으면서 왜 그렇게 사느냐고, 그냥 포기하고 네 인생 찾아서 가라고, 힘들게 살지 말고 냉정하게 돌아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만약 내가 그의 손을 놓는다면 그가 생명의 끈을 놓아버릴지도 모르기에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나는 그 옆에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 이 모든 상황을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정해영 님
유리창엔 비, 햇빛촌
낮부터 내린 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이슬만 뿌려 놓고서
밤이 되면 더욱 커지는 시계 소리처럼
내 마음을 흔들고 있네
이 밤 빗줄기는 언제나 숨겨 놓은 내 맘에
비를 내리네
떠오는 아주 많은 시간들 속을
헤매던 내 맘은 비에 젖는데
이젠 젖은 우산을 펼 수는 없는 것
낮부터 내린 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슬픔만 뿌리고 있네
이 밤 마음속엔 언제나 남아 있던 기억을
빗줄기처럼 떠오는 기억 스민 순간 사이로
내 마음은 어두운 비를 뿌려요
이젠 젖은 우산을 펼 수는 없는 것
낮부터 내린 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슬픔만 뿌려 놓고서
밤이 되면 유리창에 내 슬픈 기억들을
이슬로 흩어놓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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