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 27살 때 모습
Marilyn Monroe는 미국의 헐리우드, 브로드웨이 등에서 활동했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사망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헐리우드의 가장 매력적인 배우로 손꼽힌다.
1926년 L.A.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불행하기 그지없어서 아버지 마틴은 가정을 버렸고, 어머니 글레디스는 우울증 환자였다.
결국, 일곱 살 때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수용되면서 양부모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지만, 여전히 보육원과 고아원을 전전해야 하는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1942년 지미 도허티라는 청년과 현실 도피에 가까운 첫 결혼을 하였지만, 4년 만에 파경을 맞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서 페인트를 칠하다가 우연히 사진기자의 눈에 띄어 모델이 된 후 자연스럽게 헐리우드로 진출하게 되었다.
20세기 폭스사의 전속 배우가 된 그녀는 '스타 만들기'의 표적이 되어 이름을 마릴린 먼로로 바꾸고, 금발로 염색한 후 스크린에 데뷔하였다.
'이브의 모든 것'에서 단역으로 주목을 받은 마릴린 먼로는 '나이아가라'를 통해 스타덤에 오르게 되고 이후 10년간 20세기 폭스사를 먹여 살리는 헐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로 군림한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 '돌아오지 않는 강', '7년만의 외출',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의 작품에서 아름다운 금발의 관능미로 남자를 유혹하는 전형적인 백치미녀로 출연한 그녀는 평탄하지 못한 사생활 탓에 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이 무렵 마릴린은 유명한 과학자 아인슈타인과도 교제했다.
또한, 미국 공산당 당원들을 많이 알아서 FBI에 친소련 인사로 분류되어 FBI 국장인 에드거 후버에게 그녀의 일상에 대해 보고가 들어갈 만큼 정치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했다.
1962년 향년 37세로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고, 사인이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염문설, KCIA와 관계있던 짱짱이 님 등과 밀회설이 파다했던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의혹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당시 마릴린 먼로는 이미 한 번 이혼했던 야구계의 전설 조 디마지오와 재결합을 앞둔 시점이었다.
한편, 사후에 그녀 묏자리의 윗자리가 한 여성에 의해 경매 매물로 나왔는데 450만 달러(약 50억 원)에 낙찰되었다고 하니 그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Time in a bottle, Jim Cro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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