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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 대의 삶과 천만 시대 y Gonna fly now, 영화 로키 OST

부에노(조운엽) 2017. 3. 22. 10:00






육십 대의 삶과 천만 시대




신경욱 씨는 올해 예순세 살이 되었다.

신 씨는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 이십 년 가까이 살고 있다.

사 년 전에 다니던 식품 공장에서 정년퇴직하고 서울 송파구에 편의점을 차렸다.


“요즘 아내와 둘이서 밥을 먹으면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는 겁니다.”


그는 1954년 부산에서 오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인 셈이다.

그가 태어나기 불과 육 년 전 대한민국이 건국했다.

신 씨의 개인사는 대한민국의 성장사와 상당 부분 겹쳐 진행됐다. 

열아홉 살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서 그는 영등포의 한 공장에 취직했다.

1974년의 이야기다.
   
“저는 어려서부터 옆집 누구 형, 건넛집 누구 누나가 서울 올라가서 돈 잘 벌어서 용돈도 보낸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서울에 올라가 공장에 취직해서 돈 벌어야겠다 생각했지요.”
   
신 씨가 고등학교 졸업할 당시만 하더라도 대학진학률은 25%에 그쳤다.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면,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던 시절이었다.

2015년의 대학진학률은 70.8%.

그 시절 대부분의 청년은 고등학교를 마치면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오 남매 중 대학을 간 사람은 막내 한 명뿐이었다.
   
“먼저 공장에 취직했던 누나, 대학에 진학한 동생 셋이서 함께 살다 스물여섯 살에 결혼했습니다. 직장 동료의 소개로 만난 두 살 어린 간호사였죠.”

1975년 당시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27.4세, 여자 23.3세다.

신 씨와 부인 김경옥 씨는 이듬해 첫아들을 낳고 삼 년 뒤 딸을 낳았다.
   
“아내가 육 남매 집에서 자라 아이들 여럿 있는 일에 익숙해 한 명 더 낳을까 했는데 당시에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에 동참했죠.”
   
칠팔십 년대는 흔히 격동의 시대로 불린다.

하지만 신경욱 씨에게는 그저 열심히 살았던 시기로 기억된다.
   
“일 끝나고 술 마시면서 나라님 욕하고 시위하는 학생들 두고 옳으니 그르니 말다툼은 했습니다. 최루탄 연기도 많이 마셨지만 직접 나선 적은 거의 없네요. 딱 한 번 지나가던 시위대를 격려해준 적은 있지만, 시위며 민주화며 그런 것들은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집안의 유일한 대학생인 막내는 1970년대 유신 반대 집회에 열심히 참석했다고 한다.

“대학에 진학했던 동생은 선배들과 어울려 다니더니 집회도 나가고 야학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그랬습니다. 한번은 경찰서에 잡혀간 적이 있어서 제가 부모님 몰래 데리고 오기도 했어요.”
   
그런 동생을 보면서 신 씨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솔직히 제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학교 다니면서 돈만 축내는 동생이 얄밉기도 했어요. 그러나 가끔은 신문 읽고 주변 동료들 얘기 들어보면 옳은 일 하는 것 같게도 느껴졌죠.”
   
그가 서른네 살 되던 해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최대의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88서울올림픽이다.

중국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이 서울올림픽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는 성실한 직장인으로 대한민국의 성공과 함께 성장했다.

1989년 외국여행 자유화 조치가 발표되었다.

대한민국은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경제적으로 절정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창 아이를 기르던 1990년대 초반 신 씨는 가족과 국내 여행을 자주 다녔다.

“한 달에 한 번은 아이들 데리고 지리산에 가고 설악산도 가고 그랬어요. 아이들이 중학교 들어가고 나서는 좀 뜸해졌습니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처음에는 공장이 문을 닫는다고 그랬어요. 몇 달 월급 안 받고 온 가족이 허리띠 졸라맸습니다. 아이들 학원도 끊고 먹을 거 입을 거 줄여가며 산 덕분에 공장도 되살아났습니다. 못 받은 월급이야 아쉬웠지만, 회사를 그만두지 않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이었지요.”
   
신 씨가 마흔여덟 살 되던 해 대한민국은 2002 한·일 월드컵을 개최했다.

한국 팀은 열심히 뛰어 월드컵 4강까지 진출했다.

한국은 88서울올림픽 때보다 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신 씨는 역시 쉰네 살 중년이 된 대한민국의 성공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신 씨는 지금도 외환위기를 잘 버틴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자기희생을 한 덕분에 평생직장을 얻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희생 정신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제 딸만 해도 대학에 졸업해서 취업한 첫 직장을 2년 만에 그만두더군요. 그러고는 직장을 두 번 더 옮겼는데 아직도 결혼을 안 하고 정착을 못 하는 것 같아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2016년 여름 그는 아들이 큰마음 먹고 준 돈으로 처음 미국 여행을 열흘간 다녀왔다.

“삼 년 전에는 아내 친구들 계 모임에서 모은 돈으로 중국에 다녀왔어요. 그러고 보니 2년에 한 번은 외국여행을 하네요.”

통계청의 2015년 사회 조사에 따르면 외국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육십 대는 38%가 넘는다.
   
신 씨의 부인 김경옥 씨는 매일 집 근처 주민센터에서 진행하는 요가 수업을 듣는다.

신 씨는 친구들과 거의 매주 주말마다 가까운 아차산이나 멀리 도봉산에 오른다.

“늘 함께 등반하는 친구들과 산에서 내려와서 마시는 막걸리가 요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들과 함께 이번 삼월부터 악기를 배우기로 했다.

“평생 기타를 연주해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지난주부터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나중에 저희끼리 밴드 하나 만들어 보려고요.”


통계청 자료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육십 세 이상 유권자는 천만 명을 넘어섰다.

유권자 수는 20대 총선을 기준으로 사천이백만 명이다.

육십 대는 살면서 대한민국의 성장사를 직접 보고 경험한 세대다.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한 대한민국이 이룬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체험으로 아는 세대다.

육십 대는 대한민국 성장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긍정 마인드이다.

그러므로 육십 대 이상 세대는 보수·우파적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1980년대의 육십 대와는 전혀 다른 세대다.

조정현 한국노년인권협회 회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예전에는 예순 살에 은퇴하고, 은퇴하고 나면 뒷방 늙은이로 쓸쓸하게 지내다 죽는 게 당연해 보였어요. 하지만 요즘 누가 예순 살을 할아버지라고 하나요. 오히려 삼사십 대에는 열심히 일만 하다가 육십 대에 들어서 비로소 자기계발도 하고 공부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키워나가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온라인 매체 시니어신문 부국장을 하는 손해수 씨가 그런 사람이다.

올해 예순네 살인 손 씨는 이십 년 넘게 직장 생활하며 집, 직장에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은퇴하고 나서 손 씨의 삶은 바뀌었다.

“요즘 가족들이 저더러 개구리 대장이라고 불러요.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요.”
   
주어진 일정을 충실하게 소화하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을 찾아가며 살기 시작했다.

“저는 이런 삶을 의식적인 삶이라고 표현해요. 그전에는 무의식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 즐거운 일을 찾기 시작하면서 더 건강해지고 젊어진 기분이 들어요.”

요즘 손 씨가 빠져 있는 활동 중 하나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래픽이나 영상을 편집하는 일이다.

“새로 배우기 시작한 일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밤을 새울 때도 있어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3월 3일 유권자 의식조사를 할 때 육십 대와 칠십 대를 구분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시사점이 많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여론조사 업체에도 육십 대와 칠십 대의 여론을 별도로 조사할 것을 권유했다.

육십 세 이상 유권자가 늘어나는 데다가 육십 대와 칠십 대 사이에서도 세대 차이가 존재한다는 판단에서다.
   
밖에서는 흔히 육십 대 유권자를 답이 정해져 있는 유권자로 보지만 육십 대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변화의 폭이 작은 것은 이삼십 대 등 젊은 세대들이다.

최근 여론조사 추이나 투표 결과를 보면 이삼십 대는 일관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보여왔다.
   
육십 대의 유연함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한 SNS 덕분이기도 하다.

한국 인터넷진흥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육십 대의 72%가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를 이용하고 28.4%가 블로그나 카카오 스토리 같은 SNS를 개설해 쓴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는 육십 대가 SNS와 같은 IT 기기에 익숙해지고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정보의 다양성은 자연히 유연한 정치적 선택을 이끈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육십 대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육십 대는 TV와 신문이 보도하는 것만 보고 믿는 세대가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보고 틀린 것을 바로잡을 줄 아는 세대입니다. 그 세대가 밖으로 나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겁니다.”
마지막에 누가 육십 대의 표심을 얻느냐.’가 이번 대선의 승자를 가늠하는 열쇠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