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장미꽃이 피었으면
나는 여자가 좋다.
이 나이에 여자한테 추파를 던지며 실실거리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나도 남자지만 냄새나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다는 얘기다.
조물주가 그리 만들었고 누구나 아름다운 걸 좋아한다.
여자들이 꽃다발보다 돈다발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아름다운 꽃을 좋아하는 여자에게 선물하는 낭만이 우리에게 있다.
나는 젊었을 때 머리를 길렀다.
심한 곱슬머리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 길렀다.
하루는 거지 같은 내 꼴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나를 이발소로 끌고 갔다.
아버지는 이발사에게 중머리처럼 바리캉으로 빡빡 밀어버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리고 볼일을 보러 나가셨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에 둘러쳐진 이발 가운을 벗어버리고 잽싸게 밖으로 도망쳤다.
아버지는 그새 저만치 걸어가고 계셨다.
아버지 별명이 ‘점동이’였다.
남자의 소중한 거기에 점이 하나 있어서 붙은 별명으로 아버지는 그 별명을 평생의 치욕으로 여기시며 싫어하셨다.
나는 멀어져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잔뜩 들이마시고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점동이, 개새끼!”
내 평생에 이만한 한과 설움, 분노를 담은 사자후는 없었다.
그리고 보름쯤 친구 집을 전전하며 집에 안 들어갔다.
그깟 머리카락 때문에 패륜을 마다치 않던 이십 대 초반의 내가 지금은 희끗희끗해지는 백발로 인해 마누라에게 붙잡혀 꽃피는 봄날 한기가 도는 욕실에서 염색약을 뒤집어쓰고 있다.
수북한 고수머리가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시절, 내 꿈은 나이 들어 이 풍성한 머리카락이 흰 눈처럼 백발로 변하면, 멋지게 길러 볼 생각이었다.
외국의 멋있는 중년 사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멋진 백발이었다.
검은 머리가 흰머리로 변하기까지 나의 지성과 감성과 명성이 쇼펜하우어처럼, 쉬바이처처럼 고귀해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인데, 운명은 언제나 그렇듯이 나의 기대를 처절하게 짓밟아놓았다.
영락없는 대머리가 된 것이다.
옆머리, 뒷머리에는 숱이 좀 남았는데 유독 이마에서 정수리까지 머리가 다 빠졌다.
그래서 한쪽 옆머리를 미역처럼 길러 텅 빈 이마를 가렸다.
내 머리는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한 때부터 아내가 깎아주고 있다.
벌써 삼십 년도 넘었다.
아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간 어느 날 간만에 이발소에 갔다.
옆머리만 살짝 쳐달라 부탁하고 잠깐 눈 감고 있다가 뜨니 소중하게 기른 미역머리가 사라졌다.
전 재산이 이십구만 원이라는 모 전 대통령 스타일로 만들어놓았다.
대머리는 유전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대머리가 아니었다.
형제가 육 남매로 내가 맏이다.
밑으로 남동생이 넷, 여동생이 하나다.
모두 대머리가 아니다.
나만 대머리다.
그러고 보니 술도 나만 마신다.
다들 한 덩치 하는데 나만 유독 키가 난쟁이 똥자루마냥 작고 왜소하다.
아무래도 돌연변이인가 싶다.
돌연변이로 태어나서 돌연변이답게 사는 모양이다.
내가 대머리가 된 데에는 집안에서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아내와 아들의 주장은 내가 유전적으로 우리 집의 돌연변이이기 때문이란다.
또, 하나는 신혼 초부터 아내와 미친 듯이 싸워 머리카락이 자주 뽑히다 보니 대머리가 된 것이란다.
내가 아내를 때려 아내가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고, 반대로 아내가 나를 구타해서 내가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다.
나는 만주사변은 아니더라도 웬만한 전쟁에 공중전, 우주전까지 치른 격전의 용사라고 생각한다.
일제치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해방 후에는 동란을 겪었고, 베트남 전쟁은 종군기자로 취재했다.
2차 대전, 육이오, 베트남 전쟁까지 우리 세대가 겪을 수 있는 전쟁이란 전쟁은 모두 겪어봤으나 아내와의 전쟁만큼 살 떨리는 긴장과 두려움으로 내 의식을 지배한 전쟁은 단연코 없었다.
젊어서는 내가 이겼다.
집사람 몸무게가 작게 나갈 때는 겨우 삼십팔 킬로그램이었다.
살이 배긴다며 딱딱한 방바닥에 오래 앉아있지를 못했다.
그처럼 가녀리고 잘 웃고 순진해서 내가 하는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잘도 속아주던 여인이 어느 날부턴가 육십 킬로를 훌쩍 넘는 미들급으로 체중 증량에 성공했다.
바짝 마른 라이트급의 나보다 두 체급이나 위다.
가뜩이나 우리의 싸움은 내가 고주망태가 된 이후에 벌어진다.
맨정신에도 어찌해볼 수 없는 아내의 묵직한 체구를 술에 취해 다리가 저절로 호랑 나비춤을 추고 있는 상태에서 감당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내는 잔인하게도 나의 풍성한 머릿결을 양손으로 볏짚 꼬듯 쥐어 잡고 좌우로 흔들어댔다.
그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감히 손을 못 대던 나의 자랑인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방바닥에 수북이 쌓였었다.
그게 미안해서인지 아내는 한 달에 한 번씩 내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정성껏 다듬고 염색해준다.
나는 아직 지적으로 모자란 인간이므로 동경하던 철학자들처럼 백발을 자랑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나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인격체가 되기 전까지는 깜장 물을 머리에 덧칠해야 할 것 같다.
아내도 사십여 년이 훌쩍 넘는 기나긴 전쟁을 거치면서 나에 대한 전우애가 잔뜩 쌓였을 테니 전우의 머리카락에 위장크림을 덧발라주는 수고쯤은 마다치 않을 것으로 믿는다.
뒷머리 염색이 잘 들었나 궁금해서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대머리를 돌려본다.
주름진 얼굴에 흑발은 자연스럽지가 않다면서 아내는 흑갈색 염색약을 고집했다.
그 때깔이 꼭 시골의 퇴비 같다.
이 퇴비를 거름 삼아 머리 꼭대기에서 인생의 마지막 장미꽃이 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 : 작가 김욱
Rose garden, Lynn And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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