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캄보디아의 안타까운 현실

부에노(조운엽) 2018. 7. 22. 12:30






캄보디아의 안타까운 현실



캄보디아 봉제공장에서 만든 의류는 보통 금요일 오후 다섯 시까지 컨테이너에 선적해서 프놈펜 항이나 시아누크 빌 항구로 보내 컨테이너 화물선에 싣는다.

시간이 늦으면 세관 직원 오버타임 차지가 붙는다.

옷을 덜 만들었으면 밤새 작업을 해서 세관원 차지를 물고라도 다음날 오전까지 컨테이너에 실어 보내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할 수 없이 엄청 비싼 운임을 들여 비행기에 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다 날아가고 공장은 힘들게 된다.


이번 주 우리 공장 선적분이 사만오천 장이 되어 지난 주에 생산 계획 회의를 하니 미국으로 갈, 1반에서 작업하는 라운드 티가 간당간당했다.

지난 일요일 잔업을 해서 여유 있게 가자고 주장해서 천오백 장을 잡았다.

금요일 오후 세 시 반까지 완성 작업을 끝내고 포장된 상자를 원청 공장에 보내야 컨테이너에 무사히 실어 보내게 된다.

그런데 막상 금요일 마감 전까지 난리굿을 쳐서 겨우 처리했다.

만약 일요일 잔업을 안 했으면 더 힘들 뻔 했다.

선적을 다 못 했으면 원청 공장과 미주 바이어에게 클레임 물고 신용이 떨어져 다음 작업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일단 한숨 돌리고 다음 납품 때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어 당분간 잔업과 휴일 근무를 하지 않고 직원들과 좀 쉬며 가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객공 직원을 몇 년간 보내 관리하던 한국 스웨터 공장에서 SOS가 왔다.

우린 다 끝났는데 거긴 아직 작업을 다 못 마쳐 비행기로 보낼 형편이라며 라벨 작업을 해줄 수 없겠냐고 도움을 요청했다.

단 영 점 오 초의 망설임 없이 해줄 테니 다 가져오라고 했다.

천 장, 이천 장...

저녁 여덟 시까지는 여러 명이 달라붙어 일하다가 결국 우리 직원 네 명이 날밤 새워 거기서 요청한 삼천 장 넘게 작업을 끝냈다.

글쓴이도 잠깐 눈붙였다가 우리 직원이 라벨 단 옷을 개서 열두 장씩 묶어 아침 여섯 시 반까지 깔끔하게 정리했다.

덕분에 그 공장에서 스웨터에 붙일 면 치마 삼만 장과 편직한 스웨터 바지 봉제할 십칠만 만 장 오더를 확실히 받게 됐다. ^^


어제 토요일이라 모두 네 시에 끝내고 가기로 했는데 2반 카디건 작업이 납기 마치려 불량 고치고 하다가 시간을 까먹어 8월 10일까지 납품하기에 늘어져 여유가 없다.

그러면 다른 라인 하나를 깨서 봉제해 납기를 맞춰야 하는데 당연히 손해다.

미리 대비해야겠기에 반장 알린 씨와 상의했다.

지금 시간당 생산이 160장으로 잘 나오니까 납기 맞추려면 평일 일곱 시까지 잔업 해야 하고 미안하지만, 토요일도 2반만 여섯 시까지 일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일 있는 세 명 빼고 모두 승낙했다.

다른 반에서 세 명을 보충해서 2반만 잔업을 했다.


일요일은 다 쉬기로 했는데 재단 반장이 일하겠다고 한다.

재단이 항상 딸리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모처럼 일요일에 새벽 출근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여유를 부리며 인터넷에서 김형석 교수님의 수필을 보는데 마음에 딱 걸리는 글이 있었다.

"지금 아흔아홉 살인 김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60대 후반이나 70대 중반 사람들이 인생을 다시 출발해서 아흔 살까지는 일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50대 후반의 한 부부는 '사업은 힘들고 세금도 많이 나와서 이젠 접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김 교수님 말씀을 듣고 보니 용기가 생겼고, 직원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 '재단반 직원 한 명이 까나지야 공단에서 트럭 타고 출근하는데 오늘 트럭 운행을 하지 않아 혼자 알아서 출근하겠지,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얼른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6시 15분에 패스 앱 뚝뚝이를 잡아탔다.

웬걸, 까나지야 공단 가기 전에 직원 혼자 탈래탈래 걸어오는 게 보인다.


뚝뚝이를 세워 타라 하고 물었다.

"떠으 나?(어디 가요?)"

"떠으 롱짝 트워까(공장에 일하러 가요.)"

"다으 떠으? 층아이 나!(걸어가요? 엄청 먼데!)"

"엇 미은 로이(돈이 없어요.)"


우리 공장까지 거리가 얼만데 걸어가는 거야?

이게 바로 캄보디아의 현실이다.

글쓴이가 게으름 피울 때 직원 한 명과 그 가족이 더 힘들고 배고플 수 있다는...

지금 이 나이에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항상 사려 깊게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