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캄보디아에서 봉제업으로 살아남기

부에노(조운엽) 2018. 10. 9. 07:32






만만치 않은 캄보디아 봉제업



봉제업에서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한 공장 사장이 몇 년 고생하면서 겨우 공장 유지하고 밥만 먹고 살다가 좋은 오더를 만나 순식간에 그동안 진 빚 다 갚고 제법 남게 됐단다.

직원들 급료를 주고 난 후에 부인에게 십만 불을 주며 동안 고생이 많았으니 이걸로 당신 마음대로 쓰라고 했다던가.


봉제업은 경험과 능력이 있으면 적은 자금이나 맨손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공단 주변에 관련 업체가 아주 많아 모든 것을 다 임대나 외상으로 할 수 있어 잘 운영하면 먹고 사는 것뿐 아니라 돈도 벌 수 있지만, 오더가 시원찮거나 관리가 잘 안 되면 한순간에 빚더미에 앉아 어찌할 수 없어 야반도주하기도 한다.

그만큼 투기성이 많다는 이야기도 된다.


작년과 올 초에 프놈펜에서 새로 문 연 한국 공장 여러 곳이 닫았다.

캄보디아에서 봉제 경력과 관리 능력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분이 관리하던 공장이 적자에 허덕이다 팔렸다.

프놈펜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큰 공장에서 십 년 넘게 관리직으로 일하다가 작년에 자기 공장을 차려 야심 차게 운영하던 분이 얼마 전에 유명을 달리했다. 

봉제업계에서는 하도 변수가 많아 큰 회사에서 오래 근무했다면 누구나 능력을 인정하는 편이다.

그런 분이 개인 사정과 자금난에 끔찍한 일이 생겼다.

또,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공장 한 곳이 직원 급료도 못 주고 밤새 안녕했다.

다 식사나 술 한잔하고 우리 객공 직원이 나가 일해서 종종 보던 분들인데 남의 일 같지 않게 안타까운 일이다.


캄보디아에서 국내 의류업체로는 최대 규모의 봉제 라인을 가동하던 부동의 글로벌 의류 업체 빅 3 중 하나인 한솔섬유가 지난달에 전격적으로 철수를 시작했다.


이제 생산성보다 인건비가 많이 오른 캄보디아 봉제 시장은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그랬듯이 쇠퇴기에 접어드는 모양이다.

그런데 세상일이 무 자르듯이 딱 구분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다 틈새시장이 있고 또 어디나 살아남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 캄보디아 최대 명절 중 하나인 프춤번(추석)으로 일주일 넘게 휴무이다.

엊그제 아침부터 일부 직원들 급료를 나눠주다가 오후에 몇 명 남겨놓고 돈이 떨어졌다.

그날 낮에 자금이 들어오기로 예상한 한 곳에서 틀어져 이미 예견된 참사였다.

점심도 못 먹고 급히 융통해서 오후 늦게 처리하고 나니 진이 다 빠진 것 같았다.

많은 봉제 공장 선배들이 직원 급료 주고 나니 종종 집에 쌀 살 돈도 남아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바로 그 짝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앞이 안 보이는 절망만 있으면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바로 희망이다.

직원들과 안정적으로 먹고살 희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공임이 싸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거 같아 다른 공장에서 못 하겠다는 작업을 신설 공장인 우리에게 주면서 다음에 할 좋은 오더를 몇십만 장 주겠다는 A 원청 회사에서 공임도 잘라먹고 이유가 어쨌든 오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지난 두어 달 죽을 쒔다.

여기서 좋은 오더란 공임이 좋고 수량이 많은 작업이다.

공임이 약하면 직원 급료에 기타 경비 쓰고 난 후에 적자 보지 않으면 다행이다.

봉제는 단순 숙련 작업을 팀워크로 하는 일이라 같은 작업을 계속하면 저절로 생산량이 늘어나고, 오더가 시원찮아 소량 위주면 공임이 세더라도 라인 바꾸다가 다 까먹는다.

저임금 국가에서 잔업을 계속해 수량 빼기를 해야 하는데 뒤 오더가 변변치 않고 원단이 늦게 들어오거나 하면 직원들 일찍 퇴근시키고 라인이 놀게 되어 망하는 지름길이다.

그 A 원청 회사도 지금 자금난에 허덕인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들었다.


그런 일이 두어 달 지속하니 말은 못 하고 이러다 나도 망하는 거 아닌가 속앓이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명절 휴무 지나고 후속 오더가 만만치 않게 기다리고 있다.

전에 공임도 괜찮고 시간당 이백 장 이상 뺐던 롱 라운드 티 60만 장과 미국 월마트 30만 장짜리 오더를 B 원청 회사가 반씩 나눠 하자고 진작 이야기가 되어 있다.

게다가 그 원청 회사 사장이 삼사 일 전에 찾아와서 십만 장 오더가 또 들어 왔으니 그것도 같이하잔다.

그리고 휴무 전날까지 작업했던 스웨터 바지 봉제, 후속 오더 14만 장을 11월에 우리보고 다 해달라고 한다.

세 공장에서 같이 작업했었는데 그나마 우리 공장이 품질과 납기 상황이 괜찮았던 모양이다.


그동안 경험상 준다는 오더를 다 믿을 순 없지만, 다른 큰 변수가 없이 계획된 후속 오더를 몇 달 계속해서 작업하면 상황이 많이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꿰맨 옷을 다림질하고 포장해서 원청 회사에 보내주던 중국 완성 공장에서 제품을 일부 빼돌려 컨테이너가 미국으로 출발하기도 전에 프놈펜 러시아 마켓에 깔려 또 난리가 났다.

나름 수습은 하고 있는데 이놈의 봉제업이 도대체 바람 잘 날이 없어 하얗게 세던 영감 머리카락이 이제 노랗게 은행 나뭇잎 색처럼 변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