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페루 피우라에서 유빈 누나와의 만남

부에노(조운엽) 2019. 9. 4. 07:46




아주 작은 삐우라 관문 빠이따항




뻬루 삐우라에서 유빈 누나와의 만남





배를 처음 탈 때 요코하마에서 승선하기에 비행기 타러 김포공항으로 갔다.

김포에서 교직에 있는 국민학교 동창 준우가 공항에 마중 나왔다.

공항 가기 전에 승선하러 출국한다고 전화하고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코 달려왔다.

내 손에 달러 한 뭉치 쥐여주면서 ‘잔돈으로 바꿨다. 가서 힘들면 전화해라.’라고 말하며 수업이 있다고 조용히 사라졌다.

남희는 옆에서 자길 잊지 말라며 무슨 신파극인지 내 손을 잡고 눈물을 찔끔 짜고...

내 돌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게 그동안 그녀가 내게 해왔던 것이 여기 와서 갑자기 눈물 짜는 것과 매치가 되지 않았었다.


준우와 나는 연락하면 서로 두말없이 만나 쓴 소주라도 한잔 나누었다.

준우가 중학교 1학년 땐가 동대문 옆에 새로 생긴 이대부속병원 벤치에 앉아서 내게 묻던 말이 기억난다.

“은여바, 너는 어떤 게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니?”

어려서부터 조숙하고 생각이 많았던 준우가 묻는 말에 맹한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땅히 할 말을 못 찾고 그를 쳐다보니 먼 하늘을 응시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은여바, 나는 몇십 년을 연락 없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어려운 부탁을 하더라도 군말 없이 들어 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해.”

아직 우리는 서로 간에 어려운 부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노잣돈을 다 챙겨주다니...

그런 준우 누나에게 배 타면서 편지 한 통을 보냈었다.


보고 싶은 유빈 누나께 


준우는 가는 데마다 엽서를 보내든지 가끔 연락하고 지내요.

우리가 동숭동에서 인연을 맺어 끈끈한 정을 이어온 지 제법 되네요.

그렇게 오누이 같은 정을 나누다가, 제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갔을 때 전화해서 소식을 전했었지요.

저는 모처럼 듣는 누나의 한국 여인 목소리가 너무 반가워 목이 메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때 그 얘기를 배에서 했더니 우리 선원들이 열광했지요.

시공을 떠난 기가 막힌 인연이라고...

오늘 이탈리아 사보나항 부두에 핀 아름다운 코스모스 사진을 찍으면서 누나와 동숭동에서 만남을 돌이켜봤어요.

고저 어린 시절 옛 생각에 목이 칵 메어 뜨거운 것이 눈 앞을 가린다요.


누나, 조금 있으면 우리 배가 이탈리아에서 차와 중장비를 싣고 누나 사는 삐우라에 가요.

이제 제가 돈을 버니 만나면 정말 맛있는 걸 대접해드려야지...

마치 누나도 좋아하는 동기 남희 대하듯이...


'HAPPY LATIN' 호는 긴 항해의 여운을 스크루의 물거품으로 남기고 삐우라의 빠이따항을 향해 선수를 140도로 돌렸다.

삐우라가 가까워지니 유빈 누나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목소리도 작고 아담하고 귀여운 여인 유빈 누나.

정이 많은 누나를 약한 여자라 불러도 될까?


뻬루와 칠레 중부까지 그 긴 해안지역이 다 사막이다.

안데스산맥의 눈 녹은 회색빛 물이 흐르는 강변으로 오래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농사짓고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삐우라는 에콰도르 국경에서 300여km가 채 떨어지지 않았는데 바다가 깨끗하고 하늘이 맑아 공기도 좋은 편이다.

누나가 이곳에 정붙이고 사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유빈 누나와 처음 뵙는 매형이 부두 게이트까지 나와서 발을 동동거리며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역만리 머나먼 지구 반대편에서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이렇게 큰 배를 타고 턱 하니 나타나는 동생 준우 어릴 적 친구를 보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남이 보든지 말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여대생 때 만났던 중3 소년이 다 컸는데 얼싸안고 눈물에 콧물이 범벅이 되어 말을 못 하고 흐느끼기만 한다.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 교민이 거의 살지 않는 뻬루 변방에서 아는 대한국민을 만나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누나 집에 가서 맛있는 찬초 숯불구이에 저녁을 먹으면서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음 날 가까운 바닷가인 꼴란에 갔다.

세비체에 꾸스께냐 맥주를 마시며 또 지난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바닷가에 발을 담가봤다.

이곳은 공기가 맑고 하늘도 높은 데다가 날씨가 더워 반소매에 반바지 차림이었는데 일요일에 해수욕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발바닥에 뭔가 딱딱한 게 느껴져 주워보니 조개였다.

수영하던 아이들과 누나도 신이 나서 조개를 주워 담았다.

잠깐 온 식구가 한 끼는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조개를 주웠다. 

남미 사는 영감님 누군가가 말했다지, 고기를 식구들 먹을 만큼만 잡으면 그만 잡고 가족과 논다고...  


할 말이 아직도 남았는지 바닷가를 누나와 같이 걷다가 인적 없는 모래사장에 물개 몇 마리가 일광욕하는 게 보였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너무 가까이 갔다가 서로 불편한 일을 겪을지 몰라 한참 구경만 하고 발길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에 누나의 현지인 친구 농장을 방문했다.

약 1ha 정도 크기의 작은 농장이라는데 망고, 바나나, 빠빠야, 구아바 등 오만 과일과 고구마보다 맛있다는 유까 등 먹을거리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누나도 빈 땅 곳곳에 배추, 열무, 상추, 파, 깨 등을 심어 일용할 고국 양식으로 충당한단다.

인심이 넉넉한 친구라서 잘 익은 제철 과일을 얼마든지 따가라 하고 더 못 줘서 안달이란다.

이민 가서 현지인과 이렇게 잘 지내니 누나는 성공한 이민자 중 한 사람인가 보다.

농장에 와보니 문득 누나가 내 편지에 답장한 것이 생각났다.


사랑하는 동생 은여바.

이곳 삐우라는 무더운 긴 여름이 가고 있어.

시장에 주황색 감이 얼굴을 내밀었더라고.

이곳에선 생각하지도 않았던 과일이라 미친 듯이 볼사(비닐봉지)에 주워 담는 내 모습에 헛웃음이 다 나왔지.

한국에선 아무것도 아닌 일에 머나먼 뻬루에선 감동해서 목이 메고 짠하게 눈물을 찔끔 짜고...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지니 보고 싶은 사람도 많아지네.

가깝게는 엄마, 아빠부터 오빠, 언니, 준우 그리고 이렇게 편지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허물없이 친한 사람들이 전부 보고 싶어진다.

한국에서도 유난히 가을을 타서 가을에는 노래 한 곡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스산한 가을밤 노래를 듣다 보면 어느새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상한 느낌...

세상의 번민과 고독을 나 혼자만 다 안고 가듯이 그렇게 심한 가을 몸살을 앓았었지.

그래서 누나는 가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

떨어지는 낙엽이며 보이는 것마다 다 마음이 너무 쓸쓸하고 허전해서...

그나마 삐우라의 가을은 한국처럼 그렇게 쓸쓸하지 않아서 견딜 만 해.


문득 전에 해발 4,000m가 넘는 와라스 여행 가서 가져왔던 코스모스 씨앗이 생각나서 정신없이 찾아보니 어디에 뒀는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네.

유난히 코스모스를 좋아해서 항상 그리움으로만 간직하고 살았는데 이제 서늘한 날씨가 되니 갑자기 코스모스 병을 앓았어.

우리 집에 놀러 온 KOICA 단원 아가씨가 우연히 그 말을 듣고 한국 코스모스 씨를 가져왔어.

엄청 더운 이곳에서 한국의 코스모스가 힘차게 뿌리를 내리고 있지.

삐우라의 짧은 가을은 한국 코스모스로 채우고 싶어.


이틀 동안 산타 로사 데 리마 연휴가 지나고 거리는 다시 활기를 띠고 있어.

오늘은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열무 씨앗을 뿌리러 친구 밭에 갈 거야.

열무가 파란 잎이 돋아나면 내 그리운 사람들과 같이 맛있는 열무김치 비빔밥을 해 먹는 상상을 해.

은여비 우리 집에 오면 활짝 웃는 맛있는 찬치또를 구워줄게.

그날이 빨리 오길 기다리면서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오는 미소에 입을 못 다물고 열무 씨앗을 뿌렸단다.


삐우라에서 준우 누나가 김치찌개를 끓여준 것이 감히 말해서 신의 경지였다.

한국에선 널려있는 김치가 외국 살다 보면 없는 재료가 많아 늘 맛이 2%가 부족하다.

유빈 누나는 김치 안 넣고 생배추로만 김치찌개 보다 더 맛있고 담백하게 끓이는 재주꾼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