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바다거북이
거북이에게 구조된 선원
사람 사는 곳에는 희비애락이 있다.
살며 사랑하고, 웃으며 친하게 지내다 사소한 일로 싸우고...
선박 안에서의 생활은 모르는 사람이 생각할 때는 넓은 바다와 같이 마음도 유유자적할 거 같지만, 실제로 일엽편주 좁은 배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같은 항해를 계속하면 그렇지도 않다.
인내의 연속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배나 화물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 상선에서 한 항차 짐을 풀어주기 위해서 항해하는 거리는 대략 보름이 걸린다.
그동안 보이는 거라곤 망망대해의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밖에 없다.
사랑하는 가족이 보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배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도 한 걸음을 나갈 수 있나?
항해하면서 배 밑의 바닷물을 오래 쳐다보면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간혹 그렇게 뛰어내려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선원도 있지만...
적도 대서양을 지나 포르투갈로 항해하는 배 가까이 큰 거북이가 헤엄쳐 가는 게 보인다.
대양 항해 중에 간혹 이렇게 큰 거북이나 고래, 물개를 만나면 반갑다.
오래전에 한 선원이 항해 중에 바다에 떨어진 이야기가 있다.
글쓴이가 국적 동남아 원목선을 타고 남지나해를 항해할 때였다.
동남아시아 바다는 고국이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언제 항해해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대만을 지나 바시채널을 통과하여 필리핀 영해를 지나는 석양 무렵에 멀리 필리핀이 아스라이 보인다.
마른번개가 치고 정글 곳곳에 연기 나는 것도 보였다.
아, 저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고 쳐다보다가 갑자기 통신실 송수신기에서 국제 조난 신호 주파수인 500KHz로 긴급 신호가 요란하게 울린다.
동시에 무선 전화 VHF 채널 16번에서도 국제 음성 긴급 신호인 'PANPAN PANPAN PANPAN'이 울려 퍼진다.
'이크, 사고구나' 하고 통신기 앞에 앉아서 모르스 부호를 받아 적으니 한국 국적선에서 조난 사고가 났다.
VHF에서 들리는 떨리는 영어 목소리도 틀림없는 한국 사람이다.
국적선사 통폐합 때 없어진 진흥해운 소속의 원목선에서 선원 한 명이 바다에 떨어져 행방불명인데 인근을 지나는 선박은 구조에 협조해달라는 전문이다.
조난 위치를 전보용지에 적어서 브리지에 올라가니 벌써 VHF로 위치를 파악하고 해도를 보고 있다.
본선에서 좀 떨어진 위치였다.
VHF에서는 조난선과 인근을 지나는 선박들이 긴박하게 교신 중이었다.
본선 선장도 그쪽으로 가서 조난자를 수색하는데 협조하겠다고 전화를 한다.
본사에도 인명 구조를 위해 항로를 변경한다고 긴급 타전했다.
그런데 어두워진 이 넓은 한바다에서 조난 선원을 어떻게 찾는담.
항해 중에 배에서 바다로 선원이 떨어지면 스크루의 거대한 물거품에 휩쓸려 들어가 순간적으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배의 진로를 돌려서 조난 위치로 가려 해도 시간이 꽤 걸린다.
큰 배일수록 회전반경이 더 커지는 것은 당근이지.
선원이 바다에 떨어진 해역 근방에 다가가자 크고 작은 배 예닐곱 척이 캄캄한 바다에서 불을 환하게 켜고 수색 작업을 하는데 장관이다.
조난자 생각에 가슴이 꽉 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
"꼭 구조되어야 할 텐데..."
나중에 합류한 배들과 함께 십여 척의 선박들이 밤을 새워 수색했으나 성과 없이 진흥해운 배만 남아서 더 수색하기로 하고 다른 배들은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다.
짧은 항해 중에 'Voice of America'의 한국어 방송에 기쁜 소식이 나온다.
남지나 해역에서 조난된 한국 선원이 거북이 등에 업힌 채로 기적적으로 사흘 만에 구조되었단다.
급히 선장에게 보고하고 선내 방송으로 이 사실을 알리자 여기저기서 '우와!' 하는 함성과 함께 손뼉 치는 소리가 들린다.
선원들에게 바다에서 조난은 남의 일이 아니지...
물 위에 떠 있던 거북이가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려면 머리부터 처박아야 하는데 조난한 선원이 거북이 목을 꽉 잡고 며칠을 버티다 구조된 모양이다.
나중에 해기지에 나온 그 선원의 해맑은 모습과 인터뷰 기사를 보니 '노출된 피부에만 화상을 입고 별 탈 없이 구조되어 정말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화상만 치료하면 다시 넓은 바다로 나가고 싶다'는 거였다.
이번엔 슬픈 거북이 수프 이야기 한 토막.
어느 부부가 배를 타고 한바다를 가다가 배가 고장 나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었다.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던 중 부인은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부인이 기력을 잃어가자 남편이 거북이 수프를 끓여, 먹으라고 떠먹여 주었다.
아내는 남편이 주는 거북이 수프를 먹고 점차 기력을 되찾으면서 구조선에 구조되었으나 남편은 얼마 못 가서 숨졌다.
훗날 시력도 되찾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온 아내는 사랑했던 남편을 추억하면서 남편이 해주었던 거북이 수프가 먹고 싶어 수소문해 잘한다는 바닷가 언덕에 있는 음식점에 찾아갔다.
그녀는 거북이 수프를 한 입 먹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갑자기 통곡하면서 절벽 아래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덩치가 큰 거북은 예나 지금이나 좋은 먹거리이고 박제해서 제법 비싸게 팔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자라 요리는 종종 먹을 수 있지만 거의 접하기 힘든 바다거북 요리를 정글의 법칙에서 바다거북 통구이를 병만족에게 먹으라고 주었더니 닭고기 비슷한 맛이 나고 일단 맛있다고 했다.
대항해시대에서도 바다에서 잡은 거북은 선원들에게 훌륭한 식량이 되었다.
쿠바 대통령 카스트로가 바다거북 수프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송아지 머리 고기로 바다거북 수프 비슷하게 만든 'Mock turtle soup'라는 요리도 있다고 한다.
일부 육지 거북은 너무 잡아먹어서 멸종 위기라고 한다.
바다에서 끓여 먹은 거북이 수프와 식당에서 먹는 맛은 분명 다를 수 있다.
여기서 거북이 수프를 먹다가 정신나간 사람같이 울부짖으며 바다에 뛰어든 아내 이야기를 현명하신 회원님들께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두 고인께 삼가 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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