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과 바다
가을 전어 그리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어디로 가야 하니?
갈 데가 없는 배의 다음 항구는 어디지.
어디에 가야 지친 마음을 쉴 수 있을까...
숯 먼지에 지친 선원들의 원성이 쌍시옷과 함께 튀어나온다.
1층 화물 당직실에서 마스크를 쓴 1항사가 툴툴댄다.
"젠장 숯 두 번만 실었다가는 배고 폐고 다 아작 나겠네."
갑판장이 대꾸한다.
"이럴 땐 가을 전어를 구워 막걸리 한 병 마시면 대길인데..."
전어 이야기가 나오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갑판부원들에게 피로도 풀어줄 겸 입을 열었다.
"저기, 아직 밥때도 멀었고 먼 친척 한 분이 전어로 떼돈 번 이야기 하나 할게요."
"조 국장 또 뻥치려고 그러지. 암튼 재미없으면 맥주 한 박스 내소."
1항사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린다.
"저희 먼 친척 중에 이름이 외자인데 '국'인지 '명'인지 암튼 뭐 한 건 할 거 없나 하고 늘 머리를 굴리며 사는 분이 계세요."
가을 전어 굽는 고소한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이 있는데 니들이 전어 맛을 알아?
산 놈은 회나 무침으로 먹고 전어밤젓과 함께 전어 소금구이해서 머리와 통째로 먹으면 밥안주로도 기가 막힌다.
전어는 해수 온도가 내려가면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보기가 힘들어진다.
우리의 미식가 조명 님이 모처럼 뭐 한 건 할 거 없나 살피다가 대천에서 전어 축제를 한다기에 세상 님에 연락해서 바닷가 아는 횟집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모두 이 앞바다에서 잡은 자연산이라고 둘러대는데 정확한 건 알 수 없고 암튼 바다내음과 함께 묵는 전어회가 비릿한 게 입에서 살살 녹았다.
시원한 대천 막걸리에 회를 먹다가 구운 놈도 젓가락을 대 보고, 곁들여 나온 각종 해산물에 정신이 팔려 세상 님의 재미있고 맛깔나는 이야기도 건성으로 들으며 예쁜 입만 오물대고 있었다.
횟집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으로 북적댔는데 동창인 주인이 마침 손이 좀 한가해졌는지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조명 님 자리로 와서 반색했다.
'니하오! 조 따거~.' 하며 인사를 닦고, 같이 막걸릿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거나 동창들 근황에 관해 말하다가 전어 이야기가 나왔다.
하긴 모처럼 외출해서 대천까지 전어를 먹으러 왔는데 당연히 오늘의 주인공은 전어지.
올해는 자연산이 풍어라 전어 양식장이 다 망하게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에 세부 형님과 손잡고 63빌딩도 해묵은 조명 님 눈이 갑자기 반짝했다.
횟집 친구 이야기에 장단 맞춰가면서 전어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들었다.
맛있게 먹고 나오는 길에 횟집 친구가 이야기하던 근처 바닷가에 있는 전어 양식장에 찾아갔다.
양식장 주인을 만나보니 완전 사색이었다.
전어를 kg 당 만 원은 받아야 사료비, 인건비와 각종 경비 제하고 남을까 말까 하는데 자연산 전어가 엄청 잡히니 양식 전어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며 한숨을 푸욱 쉬고 오소리라도 잡으려는 듯 애꿎은 담배만 퍽퍽 피워댔다.
전어 출하 시기가 지나서 많이 먹기만 하고 크지도 않아 하루 사료비만 몇백만 원이 날아간다나.
그렇다고 산 놈을 굶겨 죽일 순 없고, 출하할 게 40t은 족히 될 건데 킬로에 오천 원이라도 사 갈 사람만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팔겠다고 한다.
조명 님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콜!'했다.
순박해 보이는 양식장 주인은 큰 눈을 껌뻑이더니 담배꽁초를 발로 밟아 끄고 손뼉을 치며 오케이했다.
조명 님은 양식장 주인이 받을 금액 2억을 세상 님의 어음 한 장을 빌려 그 자리에서 써주었다.
주인이 '웬 어음이냐'고 묻자, '한 달짜리니 걱정하지 말라' 하고 양식장 전어를 인수했다.
그리곤 집에 들러 필요한 것을 챙겨 양식장으로 다시 내려왔다.
며칠 동안 고기밥은 주지 않고 밥만 먹으면 양식장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어가 물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떼 지어 거슬러 올라가면서 입질을 하고, 밀물 때는 양식장 위쪽의 수문이 열려 바닷물이 들어오고 썰물 때는 자동으로 위문이 닫히고 양식장 아래쪽에 있는 배수문 위로 넘치는 해수가 저절로 빠져서 양식장 물이 순환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조명 님은 사료를 자기가 산 전어에게는 안 주고 썰물 때 바다로 몇 포대씩 흘려보냈다.
그러면서 추석에 쓸 고기 배를 두 척 빌리고 어부를 수배했다.
때가 때인지라 한국인 어부는 당연히 구하기 힘들었고, 명절에 하릴없이 쉬어야 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일당 거금 백 불에 섭외했다.
추석날 이른 새벽, 썰물 끝날 때 양식장 배수구 흙벽을 포크레인으로 재껴버리며 남아 있는 사료를 모두 배수구에 쏟아버리고 키우던 전어를 다 풀어줬다.
그리곤 일당 선원들과 배를 타고 앞바다로 쏜살같이 나가 밀물을 기다렸다.
잠시 후 밀물이 거침없이 밀려드는 바다를 보니 아니 이럴 수가...
사료를 먹으려고 밀려오는 자연산 전어와 떠내려오는 양식장 전어들로 물 반 고기 반 온 바다가 하얗게 변해 전어 배 두 척에서 그물로 잡은 것이 무려 100t이 넘었다.
양식장에서 풀어준 것이 약 40t인데 며칠 동안 사료 맛을 들인 대천 앞바다의 전어와 냄새를 맡은 연평도 조기들까지 모두 조명 님 양식장 수문 근처로 몰린 것이다.
추석 명절이라 출어하는 배나 불법조업을 단속하는 공무원도 없어, 모두 자연산으로 둔갑한 전어를 kg에 이만 원씩 빵빵하게 받았다.
조기와 잡어는 자연산 가격으로 실하게 받은 건 물론이고...
남의 어음으로 한 달짜리 2억을 끊어주고 일주일여 만에 경비 제하고 현금을 20억 넘게 챙긴 것이다.
물론 세상 님에게는 그때 전어 먹은 것으로 입 싸악~ 닦았다.
역시 우리의 조국, 아니 조명 님.
숨도 안 쉬고 듣던 선원들이 이야기를 마치자 감탄 소리가 절로 나왔다.
"햐~ 2억 어음 주고 20억 현찰을?"
여기서 우리의 1항사가 빠지면 안 되지.
"역시 조 국장님은 뻥의 대가셔. 재미있게 들었으니 내 맥주 한 박스 내리다."
선원들의 환호성이 터지고 오 뽀르또항의 숯가루는 여전히 우리 콧구멍을 꺼멓게 만든다.
나이 들어 만 날 누워서 놀면 뭐 하니.
이렇게 농담이라도 하면서 웃고 즐기다 가는 거지.
쿠바 아바나에 종종 놀러 다니며 뭐 없나 찾던 헤밍웨이는 선착장 선술집에서 촉을 숨기고 술 마시다가 운명의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를 만난다.
푸엔테스는 정확히 53일 동안 아무것도 못 잡다가 큼직한 고기 6마리를 잡아서 오던 길에 상어를 만나 모두 잃고 돌아온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무용담처럼 짧게 말해준 것뿐이었다.
그걸 듣고 헤밍웨이가 그 이야기를 소설로 써도 되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이 술값만 내주면 O.K라 했다.
그에게 주워들은 이야기를 글로 써서 '노인과 바다'가 나왔다고 한다.
헤밍웨이 특유의 간결한 묘사, 바다에 대한 동경과 '그래도 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명구가 떴다.
그런데 이 소설이 대박이 나자 헤밍웨이가 나중에 찾아와서 자신의 성의라면서 2만 달러를 주었다고 한다.
당시 기준으로도 엄청난 거금이었으나 푸엔테스는 이미 술을 얻어먹었기에 거절했지만, 헤밍웨이가 자기는 그 몇십 배를 벌었으니 받아도 된다고 말했단다.
그렇게 또 한 역사가 아바나의 선창가 선술집에서 먹고 마시며 즐기다가 나왔다.
Cancao do mar(바다의 노래), Dulce Pon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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