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
초겨울 비에 젖어 드는 함부르크항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근무 시간에 사적인 거 잘하고 담배니, 커피니 화장실 자주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대체로 퇴근이 늦은 우리나라 노동 문화와 달리 독일 사람들은 근무 시간에 잡담을 거의 하지 않고 업무에 집중하며 정시에 칼퇴근한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독일인은 규칙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게 몸에 밴 민족이다.
그래서 여러 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나라이다.
독일 제품은 잘 고장 나지 않지만, 반면에 한 번 고장 나면 수리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독일 음식은 맥주와 소시지가 유명하고 음식이 대부분 짠 편이다.
모두 식사하러 가고 둘만 남았다.
이 순간 ‘HAPPY LATIN’ 호의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도, 크레인 작동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함부르크의 어스름한 초저녁.
고요한 정적 속에 부드럽게 남희를 안으며 속삭였다.
“보고 싶었어.”
부드럽고 향기가 나는 긴 머리가 내 볼을 간지럽히며 마주 안는 남희.
가는 허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 다른 손으로 긴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고 목덜미를 간질이다가 피아노 치듯이 가볍게 등을 타고 서서히 내려갔다.
움찔하고 몸을 떨며 고개를 드는 그녀의 예쁜 입술에 자연스레 입을 포갠다.
긴 입맞춤이었다.
마치 그동안의 기나긴 기다림을 상쇄하기라도 할 듯이.
콩닥대는 남희 가슴의 고동 이상이나 눈을 감고 있던 내 심장도 쿵쿵 뛰었다.
누가 연인들의 키스를 감미롭다 못해 황홀하다고 했는가?
통신실 전화가 울리자 긴 숨을 몰아쉬고 남희가 가볍게 밀치며 속삭였다.
“아~ 숨 막혀... 아직도 키스는 서툴구나.”
“응, 키스는 잘 안 해봤어. 빨리 밥 먹으라는 전환가 보다.”
내 잠긴 목소리에 남희가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뭘 잘하는데? 말하는 것하고는... 전에 로테르담에서 나한테 옷 입고 있는 여자 처음 안아봤다고 그랬지?”
피식 웃으면서 남희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나미 배고프겠다. 강산도 식후경이라잖아.”
“와우~ 오늘은 전부 한국 음식이네!”
하역 중이라 당직 선원들과 당직이 아닌 선원들은 상륙을 나가려고 모두 서둘러 식사하고 뒤늦게 온 사관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희의 감탄에 내가 반문했다.
“숙소에서는 한국 음식 좀 해 먹어?”
“응, 밑반찬이 좀 있긴 한데 잘 안 해 먹어. 뭐, 밖에서 사 먹거나 살찔까 봐 간단히 때우지.”
“시장할 텐데 얼른 먹자.”
매콤한 아귀찜과 김치찌개 맛을 보고 또 감탄하는 귀여운 남희.
“우와, 우와~ 넘 맛있다. 아귀찜도 맛있지만 김치찌개가 왜 이렇게 맛있는데? 콩나물도 아삭하니 맛있고 음식이 전부 입에서 살살 녹아. 정말 오랜만에 먹어본다.”
음식 먹으면서 밥맛 없게 젓가락으로 깔짝깔짝하면서 먹는 사람이 있지만 남희는 음식을 먹을 때 온몸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이다.
얼마나 칭찬하고 감동하면서 먹는지 듣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주방에서 이 소리를 듣는 조리장 영감님은 또 얼마나 기쁠까?
그런 것 보면 남희가 보통 영리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본인의 먹는 즐거움도 만끽하면서 돈 안 들이고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재주가 뛰어나니까 말이다.
“조리장 영감님이 김치찌개 만드는 것 보니까 돼지고기를 마늘, 소금, 후춧가루 넣고 볶다가 어느 정도 익으면 김치를 넣고 또 볶더라고. 그리고 물 붓고 끓을 때 두부, 양파, 대파 넣고 간을 맞추던데.”
내 말에 남희가 또 칭찬했다.
“그렇구나. 돼지고기와 김치를 볶으니 김치찌개가 정말 예술이다. 이렇게 맛있는 찌개는 생전 처음 먹어본다.”
주방 정리하느라 냉장고 문 여닫는 소리가 그치더니 조리장이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나타났다.
“맛있게 드세요, 특파원 아가씨.”
남희가 음식이 다 맛있다고,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만드시냐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칭찬을 거듭하자 영감님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고개를 주억이며 많이 드시라 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조용한 사관 식당에 우리가 음식 먹는 후루룩 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제 깐에는 소리 안 나게 먹는다고 조심하는데도, 뜨거운 것은...
뜨거운 음식 잘못 먹는 사람은 여자 복이 없다고 유빈 누나에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건만. 쩝~.
냅킨으로 입을 닦다 보니 남희의 하얀 허벅지가 눈에 띄었다.
가만히 오른손으로 매끈한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순간 남희의 왼손도 내 가랑이 속으로 쏙 들어왔다.
밥 먹다 말고 마주 보고 폭소를 터뜨리는 두 젊은 연인.
학생 때도 언제나 앞서갔던 남희가 역시 졸업하고 나서도 한 수 위였다.
둘 만의 오붓한 식사를 마치자 싸롱이 커피 마실 거냐고 물었다.
남희가 괜찮다며 고맙다고 말하고 내가 싸롱에 치워도 된다고 말하면서 식당에서 나가려고 고갯짓을 했다.
테이블 위에 팁을 조금 놓아두었다.
올라가면서 남희가 속삭인다.
“나, 내일 일찍 가야 해. 전에 이야기한 대로 취재 있거든. 아까 점심 먹고 오후 시간이 비어서 지사장님께 화장실 간다고 하고 여길 온 거야. 호호호~ 나 잘했지?”
“하하하~ 전에는 라면 사 온다 하고 집에서 슬리퍼 신고 나오더니만, 그래~ 시간이 별로 없구나. 그럼 나가서 개선문에 나오는 잉그리드 버그만처럼 칼바도스를 우아하게 털어 넣든지 맛있는 독일 맥주라도 한잔하자.”
다시 오지 않을 11월의 함부르크에 차가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수은등이 켜진 항구를 더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것 같았다.
둘이 같이 상륙을 나가려다가 내리는 비를 보고 멈칫하며 남희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도 내리는 비를 쳐다보며 잠시 망설이는 듯이 보였다.
‘HAPPY LATIN’ 호의 갑판에서는 자동차와 중장비 선적을 멈추고 비옷을 입은 선원들과 현지 인부들이 서둘러 선창 뚜껑을 덮고 있었다.
부두 넘어 함부르크 시내 건물에는 각종 조명과 광고판들이 현란하게 빛을 발해 음울한 북유럽의 어둠을 환상적으로 보이게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남희가 팔짱을 끼면서 속삭였다.
“자기야, 일단 나가서 내일 첫 비행기 예약해 보고 안 되면 밤차 타고 가야 해.”
방에서 우산을 갖고 현문으로 나오면서 남희에 바바리를 걸쳐주었다.
“춥진 않아?”
내가 묻자, 대답은 안 하고 볼에 가볍게 입술을 대는 남희.
순간 배 아래에 딱정벌레 한 대가 끼익 소리와 함께 서더니 아까 그 독일 청년이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남희가 깜짝 놀라서 말한다.
“아니, 저 애는 왜 안 가고 또 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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