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이봉주 선수
보수적인 도시 보스턴과 마라톤 우승자
배경 음악 : Gonna fly now, Rocky OST, Bill Conti
https://www.youtube.com/watch?v=MR6FXpaECY8
보스턴항도 입항한 후 자동차 하역을 금방 끝내고 당일치기로 출항하기에 짬을 내 보스턴 마라톤 결승지점 부근인 펜웨이파크에 가서 달렸다.
뛰는 사람뿐 아니라 그냥 산책하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등 뒤에는 KOREA라는 글자가 선명히 박힌 운동복을 입고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뛰니 내가 마치 국가대표라도 된 듯 가슴에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마주치는 외국인들도 미소지으며 엄지 척으로 응원해준다.
이렇게 람보처럼 열심히 뛰다가 내가 국제 대회에 나가 일 등이라도 하면 어떻게 감당할까 쓸데없는 걱정도 해본다.
출발지인 홉킨턴까지 가는 건 무리이고 한 5km 정도 뛰다가 부두로 걸어서 돌아갈 생각이다.
골프도 중독성이 있지만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하루라도 안 뛰면 나도 모르게 온몸이 근질근질해지는 걸 느낀다.
보스턴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우리 한국인에 익숙한 지명이다.
해방 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 선수가 우승했고 한국전쟁 나던 해에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삼 등까지 싹쓸이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1세기 들어 이봉주 선수가 또 우승해 우리나라와는 인연이 깊은 대회이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대회 때 마라톤에 관중이 열광하는 것을 보고 이듬해 미국 '애국자의 날'에 첫 대회가 열린 오랜 전통의 국제대회로 런던, 로테르담, 뉴욕 마라톤과 함께 세계 4대 마라톤 대회로 불린다.
보스턴에서 달리다 보니 학생 때 배운 보스턴 티 파티 사건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스턴 차 사건이라고 불리는 미국 독립 전쟁의 불씨가 된 사건 말이다.
1773년 미국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 본토에서 온 차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미국 독립 전쟁의 불씨가 된 사건 중 하나로 식민지인들의 본토에 대한 반발심이 '홍차 조례'에 의해 일거에 폭발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북미 대륙에서 프랑스, 인디언 연합군과의 7년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나 식민지는 늘어났으나 영국은 막대한 빚을 안게 되었다.
그래서 식민지에 많은 세금을 부과해 세수를 확보하려 했으나 식민지인들이 반발하여 대규모 폭력 사태가 일어나 보스턴 학살 사건이 발생하는 등 민심이 흉흉했다.
그래도 나라가 보유한 자금이 부족하여지자 영국 의회에서는 세수 확대 차원에서 홍차법을 제정하여 미국에도 적용하게 된다.
당시 홍차는 네덜란드 밀수업자들이 폭리를 취하여 영국의 동인도회사에서 직접 유통하여 영국 정부는 세수를 확보하고 영국민들과 식민지인들은 거품이 준 싼 가격에 홍차를 구매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홍차를 즐겨 마셨고 유럽에서 이민 온 미국인들도 자연스럽게 홍차를 많이 마셨는데 차가 워낙 비싸서 중산층이나 귀족들조차 찻물이 아예 안 나올 때까지 우려먹었다고 한다.
영국법을 통해 동인도회사가 직접 미국 식민지에 홍차를 납품하게 되었고 미국 식민지인들은 기존의 반값에 홍차를 살 수 있어 이 법안에 불만이 없었는데 홍차 밀수 상인들이 밥줄이 끊어지게 되어 분노하였다.
당시 영국에서 정책을 제정하고 실행할 때 각 식민지 총독과 협의하여 결정했는데 세수 확대 법안은 모두 영국 의회 단독으로 이루어졌고 직접세를 부과한다는 것은 식민지 자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식민지의 리더들도 열 받았다.
이때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6촌 형인 새뮤얼 애덤스가 '자유의 아들들'이라는 집단을 이끌고 행동에 나섰다.
'당신은 애국자답게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영국에 충성할 것인가?'를 내세웠다.
1773년 보스턴 항구에 나타난 백여 명의 '자유의 아들들'은 차가 실린 동인도회사 소유의 무역선 세 척에 올라가 차를 모두 바다에 버렸다.
그래서 영국 동인도회사의 경제적 손실은 어마어마했다.
열 받을 대로 받은 영국은 이듬해 함대를 파견해 보스턴항을 폐쇄하고 매사추세츠 자치정부를 해산했다.
그리고 자치 통치에서 직접 통치로 바꾸려는데 드디어 1775년 미국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당시의 영국이나 지금의 영국은 '영연방 왕국'으로 구성원들이 의회를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자치권을 행사하는 나라이다.
그때문에 미국인의 입장은 영국에서 독립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자기네들을 차별하지 말고 영연방 왕국의 일원으로서 자치권을 달라는 정도였다.
당시에는 미국인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식민지인들은 자신을 영국에서 온 버지니안, 필라델피안 등으로 여겼다.
본격적으로 독립하자는 의견이 불붙기 시작한 때는 전쟁 중에 발간된 토머스 페인의 '상식(Common sense)'이란 책이 많이 읽히고 난 후였다고 한다.
원주민을 몰아내고 아메리카를 차지한 유럽인들은 이제 본국의 지배마저 거부하고 나섰다.
"우리가 우리의 정부를 갖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우리의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독립뿐이다."
토머스 페인의 이러한 주장은 점차 여론화되어 상식이 되어 갔다.
전쟁 초기 상황은 그렇게 좋지 못하였다.
대영 제국의 함대는 위력적이었고 아메리카의 의용군은 대부분 오합지졸이었다.
워싱턴이 이끄는 미국 독립군은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영국군을 물리쳐 승리의 계기를 잡았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 함대는 미국군을 도와 영국 함대를 막아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워싱턴이 이끄는 독립군은 영국군을 물리치고 새로운 나라 미국이 탄생하였다.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은 1787년 13개 주를 연방으로 하고 삼권 분립을 강조하는 세계 최초의 성문 헌법을 제정하였다.
독립 선언서를 작성한 것은 제퍼슨이었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고 선언하여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미국에서 홍차 대신 커피를 더 많이 마시게 된 이유는 그냥 커피값이 찻값보다 싸서이다.
과거에 차는 인도에서 영국으로 싣고 온 걸 다시 미국으로 갖고 와 물류비가 많이 들었는데, 커피는 미국 코앞에 있는 쿠바와 브라질에서 대량 재배되어 운송비가 싼 데다 구하기 쉬워서였다고 한다.
2019년 여자 월드컵 준결승에서 만난 미국과 잉글랜드가 1:1 동점 상황에서 미국 팀의 주장 알렉스 모건이 역전 결승골을 넣은 뒤 차를 마시는 세레머니를 했다.
마침 이틀 뒤가 미국 독립 기념일이었고 당연히 미국인은 통쾌해했고 영국인은 분노했다.
영국에 대한 제3국의 반응은 '영국의 내로남불'이라고 냉담했다.
대체로 미국인들은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쳐도 반사적으로 미소짓고 의례적인 인사도 한다.
그러나 보스턴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그런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보스턴 하면 뭔가 보수적이고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는 새로운 도시 같은 느낌이 있다.
보스턴은 하버드대학 등 교육과 문화의 도시답게 주민들의 의식은 좋은 편이라 강력범죄도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적다.
미국에서 빌딩 숲을 이룬 다운타운 말고는 큰 도시에도 거주지역은 집이 드문드문 있어서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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