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우리 선배와 또래들이 해낸 리비아 대수로 공사

부에노(조운엽) 2020. 8. 5. 06:39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서 직접 만든 송수관을 나르는 동아건설 차량

 

 

우리 선배와 또래들이 해낸 리비아 대수로 공사 

 

 

브레가항은 낮에는 섭씨 50도가 넘나드는 사막의 열기로 더워서 숨이 턱턱 막혔다.

선적 중에 혹시나 생길지도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해 비료를 싣는 것을 지켜보는 갑판부 선원들은 수건을 둘러쓰고 얼음을 넣은 주전자를 달고 지냈다.

모두 작업복이 땀에 절어 소금기가 보였다.

선실도 외부 철판이 작열하는 태양열에 달아올라 선내 에어컨이 돌아가도 후덥지근하다.

통신실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고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낡은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작업복을 입고 머리는 길며 구릿빛으로 탄 젊은이들이 한국 사람이 탄 배가 브레가항에 들어왔다고 차를 타고 놀러 왔다.

동아건설에서 일하는 건설 근로자였다.

반갑게 맞이하고 마실 것을 내놓았다.

이국에서 배까지 찾아와 만나는 대한 동포는 늘 새롭고 반갑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선물로 검은 돌을 내놓는다.

사하라 사막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나무 화석을 종종 줍는단다.

한눈에 봐도 신기하고 탐이 난다.

어떻게 사막에서 나무가 단단한 돌처럼 되어 윤이 나지?

옛날에는 이 모래더미에 숲이 무성했단 말이지.

세월이 얼마나 지나서 나무가 이처럼 화석이 되었는가?

석유도 이렇게 만들어지나.

 

미련을 남기고 떠나는 이들에 꼬불쳐놓은 위스키를 꺼내 서너 병 안겨줬다.

모두 입꼬리가 귀에 걸려 좋아한다.

그들은 회사에서 한국 부식을 보내주어 잘 먹지만 아랍국가에서는 술이 없어서 힘들단다.

어쩌다 식빵에 곰팡이를 피워 누룽지로 막걸리를 담아 먹기도 하는데 너무 더워서 술이 익기 전에 식초가 되려 해 시금털털한 것도 감지덕지하고 몰래 마신다고 한다.

시큐러티에게 걸리지 않게 옷 안에 숨겨 여민다.

따라 나가 경비에게 담배 한 갑을 주며 수고 많다고 인사하는 사이 손님들은 무사히 배에서 내려갔다.

아랍의 건설 노동자에 비하면 우리 마도로스가 훨 낫다.

우리는 화물 따라 오만 항구 드나들며 맛있는 현지 음식도 먹어보고 예쁜 아가씨들과 농담 따먹기 하며 맥주도 마실 수 있는데 말이지...

 

아주 오래 전 사하라는 열대 우림 지대에 늪과 맹그로브 천지였다고 한다.

중생대 지층에서는 공룡 화석이 발견된다.

그리고 한때는 바다였다는 것을 알리는 조개 화석도 발견된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사막에서 찾은 나무 화석이 내 눈앞에 놓여있다니...

 

북아프리카 사하라사막에 있는 나라 리비아는 국토의 90%가 사막이다.

그 사하라 사막에 만 년도 더 된 거대한 지하 호수가 발견되었다.

그 양은 35조 톤으로 나일강이 200년간 흘려보내는 수량과 비슷하다고 한다.

리비아 대빵 카다피는 오일마니로 이 호수의 물을 끌어올려 사막을 농토로 바꾸어 아프리카의 식량난을 해결하겠다는 야심을 가졌다.

계획된 면적만 해도 남한의 15배가 넘는 땅이다.

하루 650만 톤의 물을 공급할 오천여km의 대수로를 만드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 공사였다.

 

전 세계의 유명 건설사들이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였다.

최종적으로 1단계 수주를 맡게 된 기업은 놀랍게도 한국의 동아건설이었다.

1단계는 동남부 지역에 1,874km의 수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대형 수주를 따내서 좋았지만, 작업 환경 조건은 정말 최악이었다.

공사 현장은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사하라 사막 한복판이었고 모래폭풍이 불면 순식간에 지형이 바뀌는 곳이다.

리비아 자체에서 확보할 수 있는 자재는 고작 골재, 시멘트, 물뿐이었기에 나머지는 다른 나라에서 조달하거나 직접 만들어야 했다.

 

악조건 중 악조건이었지만, 동아건설은 1984년에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에는 천만 명이 넘는 인력과 오백만 대 이상의 중장비가 동원되었다.

1단계 공사에만 25만여 개의 송수관이 필요했다.

하지만 리비아에서 구할 수 없었기에 직접 만들었다.

매설 작업 또한 험난했다.

일부 구간은 사암이어서 그걸 다 깨부숴야만 했다.

한국의 이름 없는 작은 건설회사에서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했던 험난한 공사를 예정 기간보다 1년 4개월이나 앞당겨 끝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1차 공사 통수식에서 메마른 사막에 물이 콸콸 쏟아지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그곳에 모이거나 뉴스를 보던 리비아 국민들은 모두 열광했다.

우여곡절 끝에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도 동아건설이 하게 되었다.

2단계 공사 1,730km도 1996년에 시작되어 8년 만에 잘 끝냈다.

1, 2단계 대수로 공사가 완성된 것을 보고 카다피는 이 공사가 세계에서 8번째로 나온 불가사의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지금도 동아건설이 리비아 사막 한복판에 만든 대수로 공사는 토목 건설 신화와 전설로 남아있다.

대수로 공사 이전 리비아에 경작 가능한 농지 면적은 전 국토의 1.4%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풍부한 농업용수가 대수로로 공급되어 한반도 면적 8배 이상의 농지가 사막에 조성되었다.

우리 선배와 또래들이 해낸 이 어찌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