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에버그린 컨테이너선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단 대만 에버그린
시작은 미약했다.
그러나 채 이십 년도 되지 않아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가 되었다.
대만의 에버그린 마린 이야기다.
일본 강점기 태평양전쟁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본 선박회사 견습 선원으로 배와 인연을 맺은 한 대만인이 있었다.
실습을 마치고 대만 해운회사에서 말단 선원으로 시작한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일등항해사가 되었다.
이십여 년의 선상 생활 후 낡은 잡화선 한 척을 사 자기 이름을 딴 창룽해운(에버그린 마린)을 만들었다.
일 년 뒤인 1969년 중동 원양 항로를 개척했고, 1975년 동아시아와 미국 동부 컨테이너 정기 항로를 운항하면서 컨테이너 해운사로 컸다.
1985년에는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선단을 가진 해운회사가 됐다.
해피 라틴호는 대만 옆을 지나 오키나와 쪽으로 선수 45도로 항해하고 있다.
이제 이틀 정도 항해하면 하역지인 고베항에 들어간다.
대만이 가까우니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녹색의 에버그린 배가 종종 보인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진 서울호나 한진 인천호는 에버그린 중고선을 사서 운항하던 컨테이너선이다.
컨테이너선은 컨테이너만 전용으로 실어나르는 선박으로, 그 크기는 적재할 수 있는 20피트 컨테이너 개수, TEU로 말한다.
20ft짜리 컨테이너 만 개를 실을 수 있으면 10,000TEU라고 한다.
컨테이너선은 1956년 씨 랜드사가 미국 동남부 항로에 취항한 것이 처음이었다.
1960년대에 1,000TEU급이 나온 후로 지금은 20,000TEU급 이상의 컨테이너선으로 점점 커지고 있다.
컨테이너선이 이렇게 커지는 이유는 컨테이너를 많이 실을수록 비용이 적게 들어 더 벌기 때문이다.
컨테이너선은 최근 세계 메이저 선사들이 통합하여 서비스하고 있다.
희한하게 덴마크, 스위스 선사가 선복량 1, 2위를 다투고 있고 중국, 프랑스, 독일, 일본 선사가 뒤따르고 있다.
대부분 합병하여 다국적 대형선사가 거대 선복량을 가지고 있고, 그 뒤를 대만의 에버그린과 현대의 HMM이 잇고 있다.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과 선복량을 계산하면 해운선사들이 컨테이너 선박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운임 폭락 또는 폭등 등에 대비할 수 있다.
선복량이 많으면 운임이 하락하기 시작하고, 물동량이 많아지고 선복량이 부족하면 당근 운임이 오르게 된다.
이런 걸 미리 잘 예측하여 배를 발주하거나 팔고 용선을 잘하는 선사들이 게임의 고수이다.
그리스 선사들이 이런 걸 잘한다고 해운계에 소문났었는데, 컨테이너선보다는 벌크선에 집중하는지 컨테이너 선복량 상위권에는 오르지 않았다.
그리스의 화물선 선복량은 부동의 세계 1위이고 그 뒤를 일본, 중국, 독일, 한국 등이 뒤따르고 있다.
한진해운은 한때 세계 컨테이너 선복량 5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었는데 파산하고 사라져 많은 해운인이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경제 최강국 미국, 영국 선사 이름이 순위에 들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된다.
미국의 씨 랜드는 트럭 운전사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닌 말콤 맥린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컨테이너에 화물을 넣어 빠르고 원활하게 운송할 수 있어 해운업에 큰 혁명을 일으켰다.
1956년 맥린은 58대의 알루미늄 컨테이너 트레일러를 갑판에 싣고 항해한 세계 최초의 컨테이너선을 운항했다.
씨 랜드사는 1970년 전후 약 십여 년간 월 1,200개의 컨테이너를 인도차이나반도에 수송하여 매년 수억 달러를 벌어들여 해운계 전설로 남았다.
1999년 덴마크 머스크 라인에 팔려 Maersk Sea Land가 되었다가 2006년 아예 Sea Land라는 이름까지 없어졌다.
선명을 미국 대통령 이름으로 짓는 전통을 가진 American President Line은 1930년대에 창업하여 2차 대전 때 몸집을 불린 후 세계 최대 선박회사 중 하나가 되었다.
APL은 잘 나가다가 1998년 자사 선박 APL CHINA호가 알류샨 열도 남쪽에서 저기압 폭풍을 만나 수백 개의 컨테이너가 바다에 떨어져 5천만 달러 이상의 화물 손해 배상 소송이 일어났다.
이는 역사상 가장 큰 해상 화물 손실 중 하나일 것이다.
2000년 들어 APL이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결국 2016년 프랑스 CMA-CGM사에 합병되었다.
까만 외판에 하얀 글씨로 선명하게 쓰여 있는 APL의 웅장한 배들이 세계를 누비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바다에서 사라졌다.
마도로스가 아니어도 항구 근처 사시는 분은 'APL', 'MAERSK LINE'이나 'EVERGREEN'이라고 쓰여 있는 큰 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17세기부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함께 근대사에 중요한 기업이었으며, 19세기 대영제국에 한 역할을 했다.
이 회사가 있었기에 영국은 그 광활한 인도를 지배하고 동남아시아와 중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
경쟁자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프랑스 동인도 회사와의 싸움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승자이기도 하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정부 규제를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피하기로 소문난 회사였다.
특히 자사 보유 선박이 거의 없는 거로 유명했다.
이는 전시에 선박을 국가에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피하고자 대부분의 선박을 타인 명의로 돌려놓거나 빌려서 썼다.
어째 전통적인 영국 젠틀맨 이미지와는 좀 다르네.
역설적으로 선박 미소유 정책은 회사의 수지타산에 타격을 주었다.
해운업자 및 선박 소유주들이 짜고 용선료를 올려 무역선 척당 순이익이 크게 줄었다.
영국은 지금도 세금 등 문제로 자국기를 다는 선박보다 용선을 선호하고, 해운 선물 시장이나 해양 산업 인프라가 고도로 발달해있다.
일본은 성진국일 뿐 아니라 일억이 넘는 인구에 탄탄한 내수를 바탕으로 물동량이 어마어마한 해운 최강국 중 하나이다.
전 해안 도시가 국제항구화되어 있다시피 하고 선박 보유 수도 우리나라의 세 배 이상이다.
우리나라 역시 통일이 되어 인구가 일억 가까이 되면 주변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이 될 것이다.
주변 나라에 통박 잘 굴리며 정치하는 인간들이 우리나라 통일을 은근히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글쓴이도 젊었을 때 화물선 용선 사업이나 써금써금한 배 한 척 사서 굴리는 것을 노래 불렀으나 막걸리 마시며 청춘사업하느라 바빠 애석하게 기회를 잡지 못했다.
내가 만약 젊었을 때 청춘사업보다 낡은 배 한 척이라도 사서 굴렸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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