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조 출연한 허장강, 허준호 선수
홍콩과 마카오
음악 : 홍콩 아가씨, 금사향 https://www.youtube.com/watch?v=AQwmX_PlbSY
"김 마담,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 홍콩 간 배만 돌아오면 그까짓 다이아 반지가 문제야?"
보고 즐길 것이 그리 많지 않았던 어렸을 때 장안에 나돌던 허장강 아저씨의 고전 유머 대사이다.
'우심뽀하~'라고 줄여서 말하던 기억도 난다.
그러면 여중 사친이 '돌뽀하!'라고 소리쳤던가...
그리고 머리가 좀 더 큰 뒤에 영화 별들의 고향에 나오는 동굴 버전이 있었다.
"미스 킴스킴스킴스...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까까~~~"
그런 홍콩에 정말 화물선을 타고 가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사이다병이 둥둥 떠다니는 인천의 한 성냥공장 뒤쪽의 대한통운 부두에서 고철을 한배 가득 싣고 홍콩에 간단다.
젊은 마도로스는 내색은 하지 않으면서도 혼자 얼마나 가슴이 설렜는지 모른다.
중학생 때 장래 희망 난에 파일로트라고 적어서 담임 선생님이 관심을 가지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고딩 시절 꿈이 현실적으로 변해 외항선 타고 돈 벌면서 세계여행하는 것이 간절한 희망이었는데 어렸을 때나 머리 크고 노래 부르던 홍콩에 정말 배 타고 가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무선통신과 동기 중에 졸업 후 제일 먼저 방송국 엔지니어로 취직한 남희가 월급 십몇만 원 받으며 우리 배고파 부대의 술값을 혼자 감당하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
동기들은 얻어먹을 때마다 '나미야, 홍콩 간 배만 돌아오면 이까짓 술값이 문제야? 매일 칼질하게 해 줄게.'라며 잔을 부딪쳤었다.
그런데 배 타고 돈 백 너머 받으면서 외국 여행이 자유스럽지 못한 시절 아무나 갈 수 없는 홍콩엘 간다니...
친구들이 부러워하며 빈정거리던 전화 목소리가 귀에 맴돈다.
"야~ 씨발 샌님아, 은여비 니가 정말 홍콩 가냐?"
당시 서울대를 나와 UN 개발기구의 원조로 단기 항해사 교육을 받고 항해사를 거쳐 선장을 하던 신춘문예 출신 작가가 있었다.
또, 지방 국립 법대를 나와 고시 공부하다가 묵고살기 바빠 통신사 면허를 따 국장이 된 분도 있던 시절이었다.
홍콩에 도착하여 입항 수속 마치고, 부리나케 상륙하는 발걸음이 안 봐도 아마 놀이공원에 간 시골 아이만큼이나 바빴으리라.
좋으면 '홍콩 가네~'라고 말하던 때, 삐까번쩍한 홍콩에 씩씩하게 혼자 나가 시내 구경을 하면서 형형색색의 이층 버스도 처음 타 보고 칭찬하면 춤춘다는 돌고래 쇼도 구경했다.
그리고 당시 선데이 서울 같은 잡지에서나 보던 토플리스 바에 가서 진짜로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서빙하는 늘씬한 홍콩 아가씨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아~ 정말 꿈이여, 생시여?"
홍콩은 싱가포르와 비슷하게 아시아의 금융, 물류의 중심지로서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꼽힌다.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 일찍부터 개방되어 많은 외국 기업의 아시아 거점 도시 역할을 했다.
1997년 영국이 백 년 조차가 끝나 돌려주어 중국 땅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특별행정구로서 중국 본토와 분리되어 별도의 도시국가처럼 돌아간다.
국경도 분리되어 왕래하는데 비자와 비슷한 통행증이 필요하고 출입국 심사처럼 까다롭다.
홍콩은 국방과 외교 말고 정치, 경제, 교육 등 대부분이 중국과 분리되어 있고 스포츠에도 국가 대표팀이 따로 있다.
일부 국제기구에는 중국과 별도의 회원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다.
그래서 대다수의 나라는 홍콩이 독립국이 아니지만, 중국과는 다른 별개의 준 국가로 대한다.
홍콩이라는 이름은 향을 실어나르는 항구라서 향항이라고 했다.
아편전쟁 때 영국인들이 처음 홍콩에 와서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헝껑' 비슷하게 말해 영국인들 귀에 Hongkong으로 들려 그렇게 굳어졌다고 한다.
백만 불짜리 야경이라는 애칭이 있듯이 나폴리, 파리, 프라하 등과 함께 아름다운 밤 경치로 손꼽힌다.
그리고 밤 8시부터 15분 동안 빅토리아만의 마천루에서 쏘는 레이저 쇼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장관이다.
밤에 입출항할 때 갯내음 가득한 부산 야경도 죽여주지만, 날이 밝으면 산복도로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로 꿈이 깬다.
홍콩에선 주말만 되면 거리에 나와 있는 수많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젊은 여성을 볼 수 있다.
꽃 파는 여인들이 아니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인 여성들이 가정부로 많이 일하는데, 홍콩법상 가정부 방과 휴가를 따로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주말이면 휴가를 받아 비좁은 집에서 나온다.
땅과 집이 좁은 홍콩 형편으로 이들이 돈 안 들이고 놀 곳이 길거리밖에 없기 때문에 끼리끼리 어울려 놀다가 종이 박스 깔고 노숙하기도 한다.
홍콩의 숨기고 싶은 민낯인데 그나마 춥지 않고 치안이 좋은 나라라 다행이다.
지금도 개선되지 않고 여전히 가정부에 대한 열악한 대우와 박대는 현재 진행형이다.
같은 황색인종이면서 잘 사는 한국, 일본과 그렇지 않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지의 국민과 입출국 절차부터 모든 대우가 너무 다르다.
홍콩 경제는 그런대로 잘 돌아가 서민들 주머니 사정은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제법 번다는 사람 집에 가도 집이 워낙 좁아 이런 데서 어떻게 사나 싶다.
실내공간이 좁은 건 대부분이 비탈인 홍콩의 지형 탓이 크다.
그나마 얼마 없는 평지에 아파트와 상가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홍콩의 집값이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고 한다.
그러니 임대료 또한 무척 비싸다.
홍콩의 빈부격차와 비정상적으로 비싼 집값에 많은 저소득층이 반 평도 되지 않는 비좁은 공간에서 쪼그리고 사는 것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한다.
닭장 아파트라고 말하듯이 정말 비좁아 우리나라 고시촌의 쪽방 비슷한 데서 여러 식구가 먹고산다.
주거 문제 말고는 어느 정도 외식하고 즐기며 외국 여행도 휴가 때마다 가는 게 홍콩의 서민층들이다.
홍콩 사람은 중고등학교만 나와도 영어를 잘 하기에 취직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더 대우받기 위해 많은 젊은이가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한단다.
홍콩에서 서쪽 바다 건너 30km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에 마카오가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는 홍콩과 마찬가지로 199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하여 특별행정구가 됐다.
옆 동네 홍콩보다 300여 년이나 빠른 16세기에 포르투갈령 마카오가 되었으며 대중국 수출입 무역의 거점이었다.
수백 년 전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지은 남유럽풍 건축물과 동서가 어우러진 문화가 남아있고 관광산업이 발달해 있다.
작은 땅과 인구를 가진 지역이지만, 세계 최대 카지노 도시로 라스베가스보다 움직이는 돈이 더 많다고 한다.
오히려 라스베가스 자본이 마카오에 들어와 주변에 투자하고 있단다.
인구가 적은 포르투갈 정부가 마카오에서 손 뗄 때 합법적인 주민에게 혈통과 상관없이 포르투갈 국적을 주었다.
유럽연합인 포르투갈의 여권이 있으면 유럽 어디서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으니 엄청난 특혜이다.
인구가 몇십만에 불과한 마카오와 달리 홍콩은 인구가 700만 명이 넘어서 영국 안의 스코틀랜드보다 인구가 많다.
영국 정부는 그게 부담스러워 홍콩인에게 국적을 주지 않고 무책임하다고 욕먹는 쪽을 감수했다.
마카오는 카지노, 관광업과 함께 제조업, 금융업도 잘 되어 있다.
경제발전과 함께 다양한 산업이 발달하여 1인당 국민소득이 팔만 불이 넘어 세계 3위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일부 연예인이나 프로 운동선수 그리고 어깨에 힘 좀 주는 사람이 마카오 카지노 직원 급료와 비싼 전기요금을 보태주고 있다고 한다.
카지노에서 정신줄 놓고 도박하다가 도박 빚지고 인생 종쳐 폐인이 된 이가 한둘이 아니다.
예전에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한때 잘 나가던 이가 도박에 빠져 알거지가 되어 마카오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삐대다가 객사한 안타까운 한국인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이가 도박에 빠져 망가지는 것은 아무리 변명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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