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섬 이야기 다섯 번째, 사이판과 괌

부에노(조운엽) 2020. 11. 20. 06:21

 

 

괌 일몰

섬 이야기 다섯 번째, 사이판과 괌

신혼 여행, 가족 여행, 효도 여행 등으로 많이 가는 사이판과 괌은 투명하다시피 한 바다와 강렬한 태양을 즐기며 아름다운 비치와 우거진 숲 등 섬 전체가 관광지이다.

사이판과 괌은 대부분의 주민이 관광업으로 먹고살고, 현지인들 성격이 대체로 밝고 친절한 편이다.

눈이 마주치면 타이, 캄보디아에서처럼 먼저 미소 지으며 인사한다.

사이판은 서태평양에 있는 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며, 제도 연방의 수도이다.

200km 남쪽에 괌이 있다.

기원전 2000년경에 북마리아나제도에 차모로족이 정착하였다.

외부와 별 교류 없이 살다가 17세기에 스페인 식민지가 되면서 유럽에 알려졌다.

스페인 사람들의 사료에는 이미 강력한 권력을 가진 족장이 있는 계급사회였으며, 계급이 높은 이들을 위한 라떼스톤이라는 큰 돌로 만든 건축 문화가 있었다.

미국, 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지면서 괌은 미국이 먹고, 사이판 등 북마리아나제도는 독일이 지배하였다.

돈 될 것이 나오지 않는 섬이라 태평양에서 중간 기착지 이상의 역할은 못 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점령하여 군사기지화 되었다.

일본 민간 기업이 사이판과 북마리아나제도에 사탕수수밭을 만들었다.

3.1 운동 후에 한국인들도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일본 기업은 소작농들에게 '이제 조선총독부가 3.1 운동 때문에 조선인들을 더욱 가혹하게 대할 것이니 사이판에 오면 잘 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라고 꼬드겨 사탕수수밭 인부로 데려왔다.

1917년 호남에서 이백여 명이 왔으며, 이들이 한인 1세대이다.

개인회사에서 주도한 것이니 강제노역은 아니었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 일본은 미국 땅인 괌까지 점령하여 이 지역을 태평양 전초기지로 삼았다.

이후 미군이 탈환하여 다시 미국이 지배하였고 1970년대에는 사이판과 북마리아나 제도 연방이 독립을 포기함에 따라 미국의 자치령이 되었다.

사이판은 바다와 정글이 아름답고 주변 산호초와 암초들이 방파제 역할을 해서 파도가 세지 않고 열대어가 많이 보이는 훌륭한 휴양지이다.

일본 경제가 되살아난 1970년대부터 일본인이 이곳에 호텔과 리조트, 쇼핑몰을 지어 본격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일본 직항기가 취항하고 사이판에 온 일본 관광객들은 삼십여 년간 지배했던 곳에 일장기를 휘날리며 좋아서 난리판이었다고 한다.

36년간 식민지였던 조선, 아니 한국에 올 때 일본인들 속마음도 비슷할까?

우리나라와 다른 아시아 국민들도 먹고살 만해지면서 사이판과 괌으로 많이 놀러 갔다.

사이판 북쪽 높은 절벽 갈라진 틈에 일본군 최후 사령부가 동굴처럼 만들어져 있다.

근처에는 사이판 전투에서 패한 일본군이 미군의 항복 권고에도 불구하고 뛰어내려 자살한 절벽이 있다.

자살 절벽보다 좀 더 낮은 곳에는 민간인들이 뛰어내린 반자이 또는 만세 절벽이라고 불리는 절벽이 있다.

당시 일본군은 민간인들에게 '미군에게 포로로 잡히면 눈알을 빼고, 귀를 자르며 끔찍하게 고문한다.'라고 세뇌 교육을 시켰다.

그래서 민간인들이 자의로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일본군이 민간인들에게 자살을 강요하며 떠민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근처에 미군, 일본인 위령탑, 한국인 위령탑이 따로 있다.

미국 본토에 무관세로 수출이 되어 리바이스, 갭 등 세계 유명 의류 제조업체의 봉제공장이 많이 들어왔다.

봉제는 칠팔십 년대 대한민국 경제의 효자산업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인력난과 임금상승에 노사갈등까지 겹치면서 봉제공장이 외국으로 많이 떠났다.

사이판에도 우리나라 봉제공장이 들어갔다.

이어 중남미와 동남아에 진출했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뒤 중국으로 봉제공장이 많이 옮겨갔다.

이후 지구촌 곳곳에 한국 봉제공장이 생겼다.

심지어 러시아, 에티오피아와 개성에도 우리나라 봉제 공장이 들어갔다.

어찌 됐든 어디선가 옷을 만들어 누구나 입어야 하니 말이다.

그러다 2005년에 WTO 의류 협정의 만료와 쿼터제 폐지로 값싼 중국산 옷이 미국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사이판의 의류 제조업은 채산성이 맞지 않아 죄다 떠났다.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다가 망해서 손가방 하나 달랑 들고 묵고살려고 사이판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이판의 봉제공장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다가 공장장까지 올라갔을 때 사이판에 오더가 넘쳐 하청을 주면서 떼돈을 벌었다고 한다.

사이판이 내리막일 때 정리하고 캄보디아로 왔다.

프놈펜에 스무 개 라인 공장 두 개를 만들어 운영하다가 나중에 들어온 한국 봉제 대기업이 팔라고 해서 목돈 400만 불을 챙겼다.

당시 어렵게 살던 처가와 여동생 등을 도와주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프놈펜 변두리에 20개 라인 공장을 또 차려 여러 사람 먹여 살렸다.

글쓴이도 그때쯤 그분과 인연이 되어 캄보디아에 와서 일 년 남짓 같이 지냈다.

그 후 캄보디아 말을 배워 도꾸다이로 십여 년 동안 영감이 마냥 청춘인 줄 착각하고 꽃밭 속에서 정신 못 차리고 살고 있다.

고생만 하고 돈 잘 안 되는 제조업 사장님들은 참 대단하시다고 생각한다.

스무 개 라인을 운영하려면 직원이 천 명 훨씬 넘는다.

딸린 식솔 서너 명과 함께 수천 명을 먹여 살리니 어찌 대단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작 본인은 어려울 땐 빚 내고 탈탈 털어 직원 급료 주고, 쌀 살 돈도 없어 손가락 빨 때도 있으니 말이다.

사이판 아래에 있는 괌도 미국 자치령이다.

괌도 사이판과 비슷한 시기에 원주민이 살기 시작했다.

16세기에 세계 일주 항해하던 마젤란이 이곳에 도착하면서 유럽에 알려졌다.

그 후 삼백 년 이상 스페인 식민지였다가 19세기에 미국, 스페인 전쟁 후 미국령이 되었다.

괌은 미국이 1900년에 차지한 이래 태평양에서 미국의 군사 기지로, 일반인에게는 관광 휴양지로 알려졌다.

사이판과 마찬가지로 국가원수는 미국 대통령이지만 본국은 국방과 외교, 이민 정책만 챙기고 나머지는 괌 주민에게 자치를 허용하고 있다.

괌이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이라고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온다.

한국, 대만 관광객도 많은 편이다.

괌 경찰은 미국 본토 경찰과 같이 실탄 든 총 차고 미국 경찰처럼 범법행위에 강력히 대응한다.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봐주는 불법행위가 괌에서는 현행범으로 체포, 구속될 수 있다.

한국인 판사 가족이 괌에 놀러 왔다가 아이를 잠시 차에 두고 마트에 갔는데 아동보호법 위반으로 체포, 구금된 적도 있다.

괌은 하와이와 함께 미군의 태평양 전략 거점으로 해군, 해병대와 공군이 들어와 있다.

우리나라에 전쟁이 터지면 주일 미군과 함께 괌 주둔 미군이 몇 시간 안에 한반도 방어에 투입할 수 있다.

사이판이나 괌은 인구만큼이나 교역량이 적어 큰 배가 들어갈 일은 없고, 작은 잡화선이나 냉동 화물선이 종종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