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생원과 페스트
해피 라틴호가 파도가 잔잔한 오키나와를 지나 고베를 향해 씩씩하게 갈 때 주방에 쥐가 나타났다.
주방 식구들이 쥐를 잡는다고 쫓아다니다가 결국 잡지 못했다.
숨을 곳이 많고 사방이 트인 주방에서 잽싼 쥐를 맨손으로 어떻게 잡나.
아마 더반항에서 올라온 모양이다.
쥐는 선용품이나 주 부식 실을 때 들어오기도 하고 배를 부두에 묶어놓은 밧줄을 타고 올라오기도 한다.
그래서 부두에 묶은 굵은 로프에 둥근 함석판을 달아 쥐가 밧줄을 타고 배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캡틴이 1항사에게 고베 입항하기 전에 시간을 내서 갑판부원 전부 선내 소독과 쥐를 잡으라고 했다.
전 세계 어느 항구나 배가 검역 묘지에서 입항 수속할 때 배 안에서 쥐나 쥐똥이 보이면 수속이 안 된다.
소독하고 쥐를 없애야만 Quarantine이 통과되어 외부인이 배에 들어오고 본선 선원이 부두로 내려갈 수 있다.
배에 쥐가 없다고 확인되면 구서증서라고 하는 Deratting certificate가 나와 입항하여 하역할 수 있다.
쥐는 인간과 함께 안 사는 데가 없는 포유동물의 하나로, 전 세계에 쥐가 없는 곳이 없고 종류도 많다고 한다.
뉴질랜드와 남극에는 쥐가 없었으나 사람과 함께 물류가 들어가면서 쥐도 같이 살 게 됐다.
자축인묘 십이간지 중 첫 번째이다.
전래부터 내려오는 우스갯소리로 12간지의 순서를 정하는 경주에서 얍삽하게 소의 머리 위에 있다가 결승선에서 뛰어내려 일등을 차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교활한 인간을 조롱할 때 '쥐새끼 같은 놈'이라는 말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쥐를 의인화하여 서생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옛날 소설에 서생원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출연하여 화려한 조명 없이도 여러모로 상당히 똑똑한 모습을 보여준다.
쥐는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태어나서 6개월이 되면 새끼를 가질 수 있다.
암컷 한 마리가 일 년에 수백 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엄청난 번식력과 함께 새끼가 다 자랄 때까지 어미가 키워서 생존율도 높다.
쥐는 사람이 먹는 것은 거의 다 먹을 수 있으며 대부분의 쥐가 인간 주변에 산다.
잡식성이지만 쥐들이 좋아하는 먹이는 식물의 씨앗이다.
그렇기 때문에 쥐들은 인간이 기른 농작물이나 음식물을 훔쳐 먹고 산다.
닭장에서 닭과 병아리를 잡아먹고 달걀을 훔쳐 가기도 한다.
달걀을 쌔벼 가는 쥐는 두 마리가 같이 움직인다.
한 마리가 달걀을 꼭 껴안으면 다른 한 마리가 꼬리를 물고 쥐구멍으로 끌고 간다.
또한, 이빨을 지속해서 갈아줘야 하는 습성이 있어 가구 등 집안 물건을 갉아서 피해를 준다.
종종 전선까지 물어뜯어 정전이나 화재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미군 군함에서 쥐가 전선을 갉아서 합선되어 불이 나 다 타 버린 재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인류는 예전부터 쥐를 잡아 왔으며 개나 고양이를 길들여 쥐를 잡게 했다.
대항해시대에는 양식을 훔쳐먹고 오염시키는 쥐를 잡으라고 배에 고양이를 태우는 관습이 있었다.
영국 해군에는 20세기까지 이 규정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쥐들은 각종 질병을 옮기기도 한다.
유행성 출혈열 등의 전염병이 쥐를 통해 옮겨진다.
페스트가 14세기에 중세 유럽에서 발병하여 일억여 명이 죽었다.
살이 썩으면서 검은색으로 변해 흑사병이라고도 불렀다.
페스트는 인류 역사상 인명 피해가 가장 많았던 유행성 전염병이다.
천연두는 감염성 질병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질병으로 페스트를 능가한다.
1차 대전이 끝날 때쯤 스페인 독감으로 전 세계에서 약 오천만 명 이상이 돌아가신 재앙이 있었다.
전쟁 동안 죽은 이보다 더 많았다.
스페인에서 시작한 독감이 아니었지만, 전쟁 중 각국 언론이 보도 통제할 때 스페인 언론이 이 사태를 알리면서 억울하게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
이 좋은 세상에서 아직도 독감, 감기 특효약은 없고 다만 증상을 완화할 뿐이다.
페스트라는 대역병이 순식간에 유럽 전역에 퍼질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의학 지식과 청결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때 유럽은 위층에서 길거리로 요강을 비워 길 가면서 우산을 쓰고 똥오줌 폭탄을 조심해야 했다.
길거리에 대소변이 널려 있는 등 위생 관념이 개판이라 똥 더미에서 들끓는 쥐들이 허술한 집안으로 쉽게 들락날락했다.
그 때문에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사람을 물어 페스트를 옮겼다.
게다가 당시 유럽인들은 고양이를 악마의 동물이라 여겨 보는 대로 잡아 죽였다.
덕분에 쥐들은 천적 없이 잘 번식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흑사병이 엄청나게 확산하였다고 한다.
그때는 현미경이 없었으며 질병의 원인이 세균과 박테리아라는 것을 아예 몰랐다.
심지어 인류가 손 씻기를 생활화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였다.
이전에는 의사가 환자나 시신의 피와 고름이 묻은 더러운 손을 잘 씻지도 않고 산모의 출산을 돕거나 다른 환자를 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감염자와 접촉하면 병이 옮겨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지에서는 감염지에서 온 사람을 40일간 격리해 전염을 방지하려 했다.
영어로 검역을 뜻하는 Quarantine이란 단어가 이 40일간의 구금 제도에서 나온 말이다.
몽골군이 흑사병에 걸린 시체를 투석기로 유럽의 성벽 너머로 날려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런 전법은 십자군 전쟁이나 그 이전 유럽에서도 있었다.
몽골 또한 제국으로 커진 원나라 집권기에 페스트가 유행하여 나라를 말아먹어 결국 명나라가 들어서게 됐다.
흑사병이 아시아에 퍼지면서 이때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홍건적과 왜구 등 도적 떼가 되어 고려까지 습격했다.
그 여파로 애꿎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생기는 등 페스트로 큰 변화를 겪었다.
병의 진행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치사율이 높아 급성 페스트는 단 여섯 시간 만에 감염되어 죽기도 했단다.
페스트가 한창 기세를 떨칠 때 장례를 치르러 온 신부, 친구와 시체 나른 사람까지 여러 명이 그다음 날 죽었다는 엽기적인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데 감염된 쥐를 사냥한 고양이가 알게 모르게 쥐보다 더 위험한 매개체이다.
서기 이천 년 이시대에서도 미국에서 길고양이에게 물려 흑사병에 걸린 적이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역학 조사 결과 사살된 고양이의 사체에서 페스트균이 검출되었다.
환자는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치료해 가까스로 살았고 검은색으로 변한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내야만 했다.
쥐는 해롭기만 한 것은 아니며 유전자 연구, 약물 실험 등 각종 동물 실험에 쓰인다.
기르기 쉽고, 번식이 빠르며, 가격이 싼 덕에 실험동물로 선호한다.
이렇게 실험하면서 많은 쥐가 죽는다.
그래서 연구진들은 인류 삶의 향상을 위해 죽은 쥐를 위해 주기적으로 위령제를 해준다고 한다.
지뢰 제거에 쥐를 쓰기도 한다.
쥐는 가벼워서 지뢰를 밟아도 터지지 않고 냄새로 지뢰를 찾아내면 먹이를 주는 훈련을 시킨다.
또, 인명구조로도 쓰인다.
예전에 선원들이 오랫동안 바다에 떠있다가 먹을 것이 떨어지면 쥐를 잡아먹었다.
그런데 먹어보니 맛도 괜찮고 괴혈병에도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채소나 과일뿐만 아니라 신선한 고기를 먹어도 비타민이 몸에 들어가 괴혈병이 예방된다.
곤충을 먹는 것과 비슷하게 혐오 식품 취급을 받는데 의외로 세계 여러 곳에서 쥐 고기를 즐겨 먹는다.
고대 로마에서는 귀족들이 겨울잠을 자는 통통한 동면 쥐를 겨울철의 별미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먹을 게 부족한 몽골 같은 유목민들에게도 훌륭한 일용할 양식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쪄서 말린 쥐를 먹으며, 태국, 베트남과 라오스 시골에서도 굽거나 요리해 먹는다.
글쓴이도 뻬루에서 '꾸이'라고 하는 쥐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있다.
생김새도 귀엽고 집에서 풀 먹여 키워 중닭 만 한데 뻬루 브랜디 삐스꼬 술안주로 괜찮았다.
맛이 닭이나 비둘기 고기와 비슷해서 쥐 고기를 닭, 비둘기로 속여서 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쥐 고기는 쇠고기보다 영양가가 더 많은 식품으로 깨끗한 환경에서 키워서 곤충 등과 함께 앞으로 인류의 대체 식량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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