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세계 역사를 바꾼 노래와 노예선

부에노(조운엽) 2021. 1. 31. 06:43

 

 

세계 역사를 바꾼 노래와 노예선

음악 : Amazing Grace https://www.youtube.com/watch?v=eKKvt8W0zXg

히브리 노예의 합창 https://www.youtube.com/watch?v=OqWWpXfO7ts

존 뉴턴은 노예를 싣고 다니는 배의 선장이었다.

그가 탄 배가 폭풍우를 만나 침몰할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에 그는 하나님에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대충 믿었기에 마음에서 우러난 기도를 한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노예가 몸으로 구멍 난 배를 막아 믿기지 않게 침몰하지 않고 무사히 귀항한다.

그는 이날을 재탄생일로 여겼다.

그 후 노예선 선장을 계속하지만, 노예의 처우를 많이 개선했다고 한다.

특히 의회에서 노예선의 비참한 현실을 증언해 영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는데 공헌을 했다.

존 뉴턴은 하선하여 서른 살에 신학 공부를 시작해 1755년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일생을 뒤돌아보며 1779년 Amazing Grace를 만들었다.

노예무역의 과거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쓴 존 뉴턴의 혼이 담긴 곡이다.

이러한 존 뉴턴에게 감화받은 의원 윌리엄 윌버포스의 노력으로 영국에서 노예제가 없어졌다.

그리고 그 영향이 전 세계에 퍼졌으니 어찌 보면 세계사를 바꾼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북미 체로키 인디언도 이 노래를 즐겨 불렀고, 흑인 운동과 베트남 반전 운동 현장에도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때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처음 오바마가 이 아이디어를 꺼냈을 때 부인 미셸 여사와 자렛 백악관 선임고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고 한다.

미셸은 '도대체 그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면박을 주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고집을 아는 자렛은 곤란해했다.

장례식장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선창하자, 성가대와 추모객은 모두 열광적으로 합창했다.

비극의 장례식장을 큰 감동의 무대로 만들려 한 오바마 대통령의 영감이 제대로 들어맞았다.

노예무역은 그 역사를 정확히 알기 힘들 정도로 오래되었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이고 전쟁에서 진 나라 백성은 노예가 됐다.

노예는 남의 소유물이 되어 물건처럼 사고 팔리며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사람을 말한다.

노예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있었는데 고대 함무라비 법전과 성경에도 노예가 언급되었고,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제국 그리고 우리 고조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중세 말 흑사병의 유행으로 유럽 도시 국가들이 인구가 반 이하로 줄자 유럽 노예 시장의 주 공급처는 아프리카 서부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해서 결국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서양 바다를 다니며 노예무역이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이 주도한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강제 이주당한 인구는 천만 명 이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다.

이는 백인우월주의 등으로 백인이 쓴 역사에서 정당화되었다.

노예제도는 남북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노예무역은 대항해시대에 활발했다.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인들과 교역을 했고 이때 처음으로 노예무역에 손을 댔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총을 얻기 위해서 포로나 납치한 사람을 노예로 팔았다.

수요가 느니 유럽인들은 총기로 무장한 용병을 고용해 아프리카 부족들을 위협하고 납치하여 노예선에 실었다.

노예를 태운 배가 바다 너머로 홀연히 사라지니 아프리카인들 사이에서는 백인들이 식인종이라 우리를 잡아 먹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그들이 신고 있는 검은 가죽 신발은 우리들 피부로 만든 것이라고 믿었다.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가 늘면서 노예무역은 더 커진다.

16세기부터 3세기 동안 천만 명 이상의 노예가 팔려 갔는데 노예선에 실려 가면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많이 죽었다고 한다.

묶여서 포개진 채로 한 달 정도를 그냥 항해하는 것이다.

가끔 인도적인 선장이 부하 선원을 시켜 입에 물을 부어주고 먹을 것 조금 넣어주고 끝이었다.

대소변도 묶여있는 그 자리에서 그냥 보게 했다.

아래로 갈수록 위쪽의 배설물을 뒤집어쓰므로 위에 있는 게 그나마 좋은 환경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위생환경이 개 같았고 잘 먹지도 못했으니 죽지 못해 사는 형편이었다.

어떤 배에서는 실은 노예 중에서 반 정도만 살아 대서양을 건넜으며, 그래도 노예상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였다고 한다.

유럽인들이 그렇게도 미친 듯이 노예장사를 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설탕 농장이라고 한다.

18세기 설탕 플랜테이션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프랑스 경우 국가 일 년 예산의 반 이상을 차지하였다고 한다.

또한 대항해시대 당시 유럽과 교역한 전국시대 일본에서는 수출할 상품이 마땅히 없어 같은 일본인들을 유럽인들에게 노예로 팔고 조총과 화약 등을 받았다.

팔려 간 일본인 노예 중에 임진왜란 때 잡혀간 조선인 포로들도 있었다.

조선인이 서양 상인들게 팔려 갔다는 것은 검증된 역사이다.

루벤스가 그린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적'에 한복을 입은 동양인이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말도 있다.

그는 임진왜란 후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 포로였다.

노예로 팔려서 이탈리아에 처음 온 조선인이라고 한다.

그의 후손이 이탈리아에서 코레아라는 성을 가지고 살고 있단다.

노예무역하면 유럽인뿐만 아니라 무슬렘이 국제적인 노예무역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같은 무슬림을 노예로 쓰는 것을 금했기에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납치해 온 노예들이 천만이 넘는다고 추정된다.

플랜테이션 농장에서의 일꾼으로 노예를 끌고 간 유럽이나 아메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아랍 국가들은 주로 노예 군인이나 성노예로 쓰기 위해 끌고 갔다.

이 때문에 대서양 노예무역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비가 2대1이라고 하나, 아랍 쪽 노예무역에서는 그 반대라고 한다.

아랍 노예무역의 희생자 중에는 흑인보다는 의외로 백인이 더 많았다고 한다.

중세 초 유럽의 전쟁 포로 중 기독교인이 아닌 포로는 이슬람 국가로 수출하였다.

북유럽의 노르만인들 역시 해적질하면서 사로잡은 노예들을 대부분 이슬람 국가에 수출했다.

잔지바르 술탄국도 노예무역으로 유명했다.

이 나라는 탄자니아 앞바다 잔지바르섬과 맞은편 육지의 다레스살람을 근거지로 해서 아프리카 내륙으로 가 흑인들을 잡아다가 아랍 상인들에게 팔았다.

이슬람계 바르바리 해적은 중세 초부터 해적 행위와 약탈로 유명했고 지중해 지역의 기독교 신자들을 납치해서 노예로 팔았다.

바르바리 해적 전성기에는 바티칸을 공격해서 교황이 한밤중에 혼자 말 타고 토껴서 겨우 살았다고 한다.

해적들 난리판에 교황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또한 오스만의 직간접 지배지였던 러시아, 헝가리, 세르비아 등의 동유럽 지역과 신장 위구르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팔려 갔다.

동아시아는 벼농사를 지어 인구가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굳이 노예를 수입할 필요가 없었다.

노예무역은 그런 동아시아를 제외한 전 세계의 정치, 사회, 역사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노예제가 인도주의로나 생산성 등 효율성에 문제가 있는 제도였다.

결국 19세기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이미 노예 매매를 금지한 영국을 시작으로 서구 열강들은 노예무역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흑인 노예무역이 없어지면서 저임금 노동력이 필요했던 서구 열강들은 중국인, 인도인 노동자들을 식민지로 데려가 명목상 계약노동자, 실질적으로는 노예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착취했다.

나중에 이 인도인, 중국인 노동자의 후손들이 인교, 화교가 되어 자신들이 팔려 갔던 현지의 경제를 장악하게 된다.

현대에도 무임금에 노예처럼 부려먹고 인권을 유린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도 만만치 않다.

섬 노예, 염전 노예, 가두리 양식장 노예, 지적장애인 축사 노예, 사창가, 술집에 팔아넘기는 인신매매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세계의 노예무역은 현대 문화에도 않은 영향을 끼쳤다.

강제로 비인도적인 이주를 당한 아프리카인의 후손들은 우리가 듣는 블루스, 로큰롤, 재즈, 힙합, 레게 등 음악을 만들어 사실상 현대 음악의 밑걸음이 되었다.

하루하루 살아남기 힘든 가운데 그나마 버티게 해준 애환이 담긴 음악이 이제는 전 세계가 공유하게 됐다.

'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공 하나가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다니  (0) 2021.02.02
보물섬과 보물선  (0) 2021.02.02
해적선  (0) 2021.01.31
사르가소해 무풍지대  (0) 2021.01.29
유령선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0) 2021.01.25